[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나왔어? 벌써? 반응은?" 6일 오후 6시 20분 명동 은행회관. 인터뷰를 하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얼굴이 상기됐다. 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 중 한 곳인 피치(Fitch)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긍정적)'에서 'AA-(안정적)'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다는 소식이 보도된 참이었다.
"설마 일본보다 등급을 올려줄까 의구심이 있었어요. 재정과 일자리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겁니다. 보이지 않지만 민간으로 가는 트리클다운(Trickle Downㆍ낙수) 효과'가 클 거에요." 박 장관이 말했다.
피치가 만든 훈훈한 분위기는 이내 가라앉았다. 대화는 다시 팍팍한 내수 경기를 살릴 대책, 가계부채와 부동산 위험에 어떻게 대응할지로 옮겨갔다. 박 장관은 여러 차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가 경착륙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인터뷰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 아파트 가격이 지역에 따라 급락했고, 집단대출 연체도 부각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가계부채 부실이 맞물려 악순환을 일으킬 위험이 있지 않나.
"걱정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거시지표만 본 탓에 놓치고 있는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미시 자료를 분석하고 스트레스 테스트 등 여러 경우의 수를 검토해봤다. 부동산ㆍ가계대출 문제는 비현실적인 가정이 복합적으로 한꺼번에 와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를 들어 부동산가격이 15% 급락한다는 가정은 비현실적이다."
박 장관은 그러나 정부가 가계부채와 부동산 문제에 팔짱을 낀 채 관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다음주 발표할 내용에) 일부 포함된다"고 말했다.
- 은행권의 직접 대출을 연계한 대책도 들어가나. 이를테면 새누리당이 '하우스푸어(집 가진 빈곤층)' 대책으로 검토 중인 '세일 앤드 리스백(sale&lease backㆍ정부나 은행이 원리금 상환이 어려운 하우스푸어의 집을 사들인 다음 같은 집을 다시 임대해주는)' 같은 것들 말이다.
"전혀 아니다. 제약이 있고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부 재정을 들이는 게 아니라 금융권이 자발적으로 하는 걸 말릴 생각은 없다. 요새 하우스푸어 말고도 푸어(poorㆍ가난한 사람들)가 정말 많지 않나. 다른 어려운 계층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어 연구가 필요하다. 대책을 내놓아도 어느 정도로 해야 할지 가늠하기 쉽지 않아 조심스럽다. 전체적으로 거래 자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 보겠다."
- 취ㆍ등록세 인하는 검토하지 않는 건가.
"법을 고쳐야 하는 부분인 데다 지방자치단체가 반대하고 있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약간 효과가 있겠지만 지난해에도 대세를 반전시키지는 못하지 않았나."
- 경기 방어를 위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하반기 재정투자 규모를 늘리겠다고 했다. 다음주 발표될 '8조5000억원+α'의 내용이 무엇인가.
"경제 활력을 북돋우는게 절실한 시점이다. 한꺼번에 돈을 쏟아붓거나 통화를 늘리는 것은 부작용이 있어 하지 않을 생각이다. 8조5000억원은 몸통이고 플러스 알파는 꼬리다. 몸통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다는 걸 이미 시사한 셈이다. 당장 투입 가능한 재원은 세계잉여금 1조6000억원과 한국은행에 예치한 5000억원을 합쳐 2조1000억원이다. 이 돈을 일부 활용한다. 투입할 플러스 알파의 총액은 이보다 약간 커질 것이다.
-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을 통한 재정투자도 포함되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밝힌 8조5000억원 투자 계획 안에 일부 들어가 있었다. 이번에도 그 때 만큼 크진 않아도 비슷한 내용이 포함된다. 당시엔 설비투자펀드(3조원)나 건설사 회생지원(2조원) 같은 내용이라 대개 일반국민들에겐 와닿지 않는 것들이었을텐데 이번엔 국민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내용이 될 것이다."
-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같은 대책은.
"포함이 될지 안될지 확실치 않다."
-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선 '경기부양'이라는 표현에 아주 조심스러웠다. 두 달만에 스스로 '중간 수준의 경기부양책을 내놓겠다'고 했다. 경기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뜻인가.
"그렇다. 나 같은 사람이 하반기 재정투자 규모가 당초 목표한 8조5000억원에 '+α'될 수 있다고 말하는 건 경제의 하방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국제기구나 투자은행(IB)들도 올해보단 내년을 좋게 본다. 올해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조치가 필요하다. 당초 3.3% 전망보다는 하방 위험이 높아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 경기 침체를 걱정하면서도 추경예산 편성에 반대하는 이유는 뭔가.
"한꺼번에 돈을 풀거나 통화를 늘리면 부작용과 후유증이 있다. 걱정되는 부문의 주름살이 가지 않게 하면서 쓸 묘수를 찾고 있다. 하지만 공짜점심은 없는 법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고민하려고 한다. 그래서 추경 편성은 안하려고 하는 것이다. 추경을 하자면 경제 외적인 정치적 관심 같은 게 투영돼 의사결정 과정을 좌우할 수 있다. 돈이 알뜰하게 쓰이지 않을 수도 있다. 국가부채를 늘리는 방향으로 갈수도 있다. 의사결정 과정이 길어지면 집행시기가 11월 중순 이후로 미뤄져 실기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추경 예산을 편성하면 새누리당이 아주 좋아할텐데.
"거기에 대한 고려가 있었으면 애초에 과감하게 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고려는 없다."
- 당정협의에서도 강력한 요구가 있지 않았나.
"당에 있는 사람들도 합리적인 사람이 많다. 입장차이는 있지만 좁혀 나가도록 조율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오래가는 상황이라면 여기서 실탄을 소진해선 안된다. 이번 경제상황은 전세계의 동반 흐름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한다 해도 본원적 제약이 있다.
오래갈 때 어떤 가치를 중시해야 할 것인가. 첫째, 지금같은 어려운 상황에선 공격보다 수비(안정성)가 더 필요하다. 둘째, 경제활력을 부추기는 가장 큰 방법은 민간부분이 잘 움직이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한시적 규제 완화를 대규모로 할 예정이다. 이달 말이나 다음달 초 발표할 것인데 정부의 규제 완화, 노사관계 안정 등에 주력할 생각이다. 지난 여름 산업생산 지표가 급격히 나빠진데에는 현대자동차의 파업도 영향을 미쳤다. 법과 질서를 확립하고 쓸데없는 규제를 줄여 기업과 개인의 경제활동이 잘 돌아가도록 인프라를 만들어 주는게 최우선이다. 정부지출은 민간투자보다 생산성이 낮아 추경은 최우선 수단이 아니라고 본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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