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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어느 한 중상위권 대학 입학처장의 토로 "숫자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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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 시쳇말로 그는 수도권 한 '중위권' 대학의 입학처장이다. 대학에 서열이 없다고 말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중상위권 대학 입학처장'이라고 설명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게 현실이다. 이상과 현실은 한참이나 멀다.


그는 아침 8시30분 사무실에 출근한다. 주요 조간신문과 경제지를 챙긴다. 대학과 관련된 뉴스를 꼼꼼히 체크한다. 어제(6일) 오후 5시에는 수시모집 원서마감이 끝났다. 그는 경쟁률 숫자부터 챙긴다. '미운 숫자'를 바라본다. 5시 정각이 되자 휴대폰이 계속 울린다. 총장이다. 오늘만 일곱 번째 걸려오는 총장 전화다.

총장은 "경쟁률 집계됐나요?"라고 묻는다. 지난해 보다 무려 일곱 계단이나 떨어졌다. 지난해 20대 경쟁률에서 올해 10대 단위 경쟁률로 추락했다. "6군데로 수시원서 접수 제한이 있었으니…"라며 총장은 애써 위로한다. 힘없는 총장의 목소리가 그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가 올해 수시모집에서 한 학생당 최대 6군데만 원서를 낼 수 있도록 제한했다. 학부모 의 비용절감을 위한 정책이다. 대학으로서는 경쟁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경쟁률이 추락했으니 입학처장으로서는 마음이 무겁다.

여기에다 교과부가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발표하면서 파급효과는 더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 단위 경쟁률을 기록했으니 '선방했노라!' 마음을 삭혀 본다.

근처 비슷한 규모의 한 대학 입학과 관계자의 전화가 걸려온다. "(경쟁률이)그쪽은 어때요?"라고 그에게 묻는다. 그가 되레 묻고 싶은 질문이다. 그쪽 사정도 마찬가진가 보다. 지난해 보다 많이 떨어졌다는 것. 짧은 통화, 긴 침묵 속에 서로의 처지를 말없이 나눈다. '중위권 대학'의 슬픔이다.


취업률 지수도 '미운 숫자' 중 하나이다. 주요 대학 평가지표로 꼽히면서 얼마 전 취업률을 조작한 대학이 적발됐다. 조작에 나선 배경 중 하나가 교과부의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포함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에게는 '이해되는 불법'이다. 그렇다고 조작까지 하면서 버텨야 하는 것인지 그는 현실이 안타깝다.


여기에다 2020년에 이르면 국내 대학 100여 곳이 문을 닫게 될 것이란 전망도 그에게 '미운 숫자'다. 현재 60만 명대의 고3 인구가 조만간 50만 명대, 그리고 2020년에는 40만 명대까지 떨어진다. 고3 숫자보다 대학 입학정원이 더 많은 웃지 못 할 현실이 펼쳐지는 것이다. 입학 정원을 줄이고, 학생이 없는 학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입학처장이 되고부터 그는 밤 12시 전에 집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입학처 관련 회의에 교무회의, 처장회의, 그리고 비상대책회의까지. 그동안 자신의 대학의 서열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경쟁력 있는 '대표 학과'를 적극 홍보하고, 개별학과 별로 일일이 소개하는 홍보 광고도 게재했다.


저명한 강사를 섭외해 특강을 하기도 하고, 장학금 지급을 늘리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했다. 입학과 관련된 박람회에 참석해 많은 사람들에게 대학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불안하다. '중상위권' 대학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오히려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올해 수시모집 경쟁률이 지난해 보다 떨어졌지만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면 그리 나쁘지 않다.


2013학년도 입시가 완전 마무리되는 내년 2월28일까지 지켜봐야 한다. 부실대학 퇴출, 재정지원 대학선정, 경쟁률 하락…어느 것 하나 녹녹치 않는 게 현실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 술과 담배를 하지 못하는 그는 마음으로 삭힌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삭힐 마음의 공간이 남아 있으니.


연말이 가까워지면 숫자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아직은 삭힐 마음의 공간이라도 있지만 올해가 끝나는 시점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미운 숫자' 하나하나가 '숫자 스트레스'로 가슴에 박혀 삭힐 마음의 공간이라도 남아 있을까. 그렇게 그의 하루는 저물고 있다.




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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