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국기업성장史]<29>'조방앞' 지명에 남은 조선방직…그곳 女工들이 釜山을 일으켰다

시계아이콘05분 25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한적한 부산포구 화려한 변신
개항과 함께 일본인 몰려들어
항만·철도 갖춰 회사들 번창
조선방직·조선중공업 '투톱'
1930년대 공황위기 극복했지만
기업규모 양극화 심해지고
수출부진 겹쳐 급속한 몰락


[한국기업성장史]<29>'조방앞' 지명에 남은 조선방직…그곳 女工들이 釜山을 일으켰다 조선방직에서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
AD

인천은 우리 근대사의 자궁이었다. 개항(1883) 이래 서구로 통하는 유일한 관문이었으며, 난생 처음 보는 이양선(異洋船), 기차를 비롯한 예기치 않은 서구 문명의 맹아였다. 해방 직후 정크무역에서부터 마카오무역에 이르기까지, 우리 근대사를 가장 뜨겁게 달군 현장이었다. 또 그와 같이 근대사와 궤적을 같이 하며 팽창해온 항도이기도 했다.

이런 인천에 비해 다소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듯이 보이나, 우리 근대사를 언급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항도가 또한 부산이다.


부산 하면 우선 다음 두 가지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어떻게 수도 경성에 이어 제2의 도시로 그토록 빨리 성장할 수 있었는지, 과연 어떻게 해방 전후 전국 최대 공업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사실 일본에 의해 1876년 강제 개항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부산은 한낱 보잘 것이 없는 개의 어귀에 불과했다. 이웃하고 있는 동래부는 알아도 부산포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한성, 평양, 개경, 전주, 나주, 경주, 상주, 진주, 함흥, 안주와 같은 큰 고을 축에는 끼지도 못하는 그저 흰 갈매기들만이 한가롭게 날던 이름 없는 포구였을 따름이다.


그러던 부산 포구에 개항과 동시에 일본인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모르긴 해도 자국에서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해협을 건너온 일본인들이 날로 증가하면서 개항된 지 30년만인 1906년에는 전체 인구가 7만 명(일본인 약 1만6000명)이 넘는 항도로 팽창해 있었다. 가구 수만 보더라도 수도인 경성이 6만4582호, 인천이 1만3504호, 부산이 2만492호로, 이때 이미 경성에 이어 어느새 전국 제2의 도시로 성큼 부상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건 부산이 경성과 인천보다 기업이나 공장이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이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통계에 의하면 해가 거듭될수록 그 폭이 커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기업성장史]<29>'조방앞' 지명에 남은 조선방직…그곳 女工들이 釜山을 일으켰다 조선방직 포스터

개항 이후 일본(민간)인들이 대한해협을 건너 부산으로 들어왔던 것은 사업 기회를 찾아서였다. 비록 불법적이고 투기적인 이윤을 노렸다고 하더라도 부산이 상대적으로 경성이나 인천에 비해 기업가적 성향이 강한 곳이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부산이라는 항도가 일본인들에게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조건이 유리하고 기회가 많았으며 그로 인해 일본인들의 이민이 부산으로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부산이 기업가적 성향이 강한 항도로 팽창한데에는 단순히 일본과 거리가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한 이점 말고도 항만과 철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부산만은 원래 섬으로 둘러싸여 파고가 낮고 수심이 깊어 천혜의 포구였다. 그러나 해안과 산이 가까워서 항만 부지가 많지 않았다. 때문에 개항 이후 곧바로 개펄을 메워 매립지를 늘려나갔다.


큰 선박이 정박하려면 잔교가 필요했는데 부산은 개항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906년 10월에 이미 폭 10m, 길이 180m의 제1잔교가 건설됐다. 잔교에 철도마저 들어왔기 때문에 선박→제1잔교→경부선→경의선→압록강 철교를 따라 멀리 만주까지 곧바로 연결된 셈이었다.


하지만 대한해협을 건너오는 선박과 화물이 날로 폭주했다. 결국 1912년에는 제1잔교에 이어 제2잔교가 건설됐다. 제1잔교는 여객선이, 제2잔교는 화물선이 정박하는 전용 부두로 정착 됐다.


이처럼 부산항이 정비돼 가자 항로 또한 늘어났다. 그때까지 부정기 항로였던 부산~시모노세키 사이에 1905년부터 정기선인 관부연락선이 취항하기 시작했다. 좀 더 훗날이긴 하지만 1937년에는 부산에서 외국의 22개 항구에 국제 항로가 연결됐으며, 이 국제 항로를 16개 해운회사가 취항했다.


한편 철도 부설 또한 종횡으로 뻗어나갔다. 1905년 경성~부산의 경부선에 이어 삼량진~마산 사이에 기차가 달리기 시작했고 1923년에는 마산~진주 사이에 철도가 연결됐다. 이보다 한 해 앞서 송정(광주)~순천 사이에 철도가 개통되면서 1923년에는 진주~순천 사이의 불편은 있었으나, 부산에서 호남 내륙까지 철도로 수송할 수 있게 됐다.


부산에는 자연스레 시장이 발달하고 상거래가 증가했다. 상거래의 수요에 따른 기업과 공장들도 잇따라 들어섰다.


부산에 맨 처음 창업된 제조업 기업은 1903년 자본금 1만7500원(지금 돈 약 21억원) 규모의 일한정미(精米)소였다. 일한정미소는 이듬해 일조정미소로 회사명을 변경하고 자본금을 5만원(지금 돈 약 60억원)으로 대폭 확대했다.


부산전등(電燈)이 이미 1901년에 창립됐지만 제조업이 아닌 상업회사였다. 부산수산 또한 영업 목적이 어류 잡매와 제조로 돼 있었으나 주업종은 제조가 아닌 수산업이었다. 1904년 한국대염(臺鹽)이 창립됐으나 역시 제조업이 아닌 중개판매를 하다 1911년에야 제염 제조를 본격화했다. 부산연초(煙草)는 1907년에 창립됐지만 연초의 중개판매만 하다 1909년에야 비로소 연초 제조를 시작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1904년부터 1907년까지는 제조업 회사가 전연 창립되지 않았다. 그러다 1908년부터 다시금 부산제분(주), 서산주조(주) 등 제조업 기업들이 속속 창업되기 시작했다.


특히 부산전등은 일본인 기업이긴 했어도 자본금이 10만원(지금 돈 약 120억원)에 이르는 초기 부산에선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대기업이었다. 20세기 들어 전력은 자본을 움직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사회간접자본이라는 점에서 일찍이 부산에 이러한 전력회사가 들어섰다는 것은 그 의미가 자못 큰 것이었다. 그처럼 빨리 대규모 전력회사가 부산에 독자적으로 설립됐다는 것은 단순히 인구수나 일본인 거주지 등의 이유 말고도 회사와 공장 등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전력수요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부산에 세워진 식민지 초기의 제조업 기업들은 공업보다는 대부분 대일 수출을 위한 상업 중심이었다. 더욱이 한국인과 일본인이 공동으로 설립한 제조업 기업이 전국에 4개, 한국인이 단독으로 설립한 제조업 기업이 8개가 있었으나 부산에는 아직 한국인 제조업 기업이 하나도 없었다. 부산전등과 같은 대기업에서부터 영세한 기업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다 일본인 기업이었다. 따라서 일본과의 경제적 연관이 그만큼 깊을 수밖에 없었으며 부산경제의 부침을 그러한 외부 충격이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외부 환경은 부산경제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제1차 세계대전마저 벌어지면서 1916년부터 전쟁특수가 본격화됐다. 그와 함께 제조업 기업들의 창업도 활발하게 줄을 이었다.


부산에 한국인 최초의 제조업 기업이 세워진 것도 바로 이 무렵이었다. 1916년 자본금 5만원 규모의 경남인쇄가 그것이었다.


1930년대는 바야흐로 '제조업 주식회사' 시대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깊어진 공황의 늪을 통과해가면서 부산의 제조업 기업들 역시 저마다 체질 개선을 요청받고 있었다. 그런 결과 1933년부터 자본금 10만 원 이상의 제조업 기업들 가운데 합명회사나 합자회사는 사라지고 오로지 주식회사만 존재하게 됐다.


공황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부산의 제조업 기업들은 영세하기 짝이 없는 합명회사나 합자회사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황기에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제조업 기업들은 주식회사 체제로 몸집을 불려나갔다. 공황기에 생존 경쟁이 보다 치열해지면서 몸집이 클수록 외부 충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1930년대 부산의 제조업 기업들은 공황이라는 위기를 통과해나가면서 그 대응책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새로운 성장 토대를 구축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태평양전쟁 이전까지는 정체가 아닌 내재적인 대응구조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공황기를 거치면서 부산의 제조업 기업들은 비단 체질 개선에만 머문 게 아니었다. 국내 수요의 한계를 넘기 위해 신상품 개발에 나서는 한편 마침내 해외시장에도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또한 기업 간의 정보, 원료, 유통 등을 비롯한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한 노력으로 중화학공업 단지 등 같은 업종끼리의 집적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무렵 부산의 수출입 대상 국가는 무려 97개국으로 급증하면서 이 같은 새로운 시장 개척과 함께 그에 따른 상품 개발이 공황기 부산에서 독자적으로 성장해 나갔다.


그러면서 공황기 이후에도 제조업 기업들의 창업 붐은 꾸준히 줄을 이었다. 1937년엔 자본금 10만원이 넘는 창업 기업만 해도 청수당정미(糖精米), 조선주물공업, 창교상점, 삼우상회, 부산제빙냉장, 조선법랑 등이 이름을 올리며 대열에 합류했다. 이처럼 창업 붐이 다시금 일면서 부산 공업이 왕성해져가자 당시 신문은 '장족발전의 부산 공업, 공장 550여 개'에 달한다는 기사를 내보낼 정도였다.


하지만 이 시기 뭐니 해도 부산의 제조업 기업들 가운데 조선방직㈜와 조선중공업㈜을 뛰어넘는 기업은 또 없었다. 초기 자본금 300만원(지금 돈 약 3600억원)으로 출범한 조선중공업은 최초로 철강으로 선박을 건조할 수 있었으며 이후 1950년대까지도 1000t급 이상의 대형 철선을 만들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전문 조선소였다.


한편 일본 재벌 미쓰이물산의 계열사로 일찍이 부산 범일동 일대에 터를 잡은 조선방직은 공장부지 8만평, 공장 건물 54동, 종업원 2000여 명의 당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또한 조선방직은 같은 해에 자본금을 1000만원(지금 돈 약 1조2000억원)으로 대폭 상향 증자하면서 '부산 제조업 기업시대'를 이끌었다.


더구나 부산경제는 1930년대 후반까지 전쟁특수가 연이어졌다. 1937년 상하이에서 분쟁이 일어나 중일전쟁이 본격화됐다. 동시에 부산의 공업기지 역할 또한 날로 비중이 높아갔다. 부산은 곧 전쟁특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공장생산이 급속히 증가한데 이어 이듬해 일본은 부산~베이징 직통 열차를 운행하기 시작해 일본-부산-중국으로 이어지는 3국 직통로를 열었다.


1939년부터 일본이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면서 부산 공업은 더욱더 전시물자 수요에 따른 급속한 생산 증대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같은 해에 부산의 공장 생산액은 전년 대비 32.4%가 급등했고, 공장 수 또한 전쟁 이전의 최고 수준인 408개를 넘은 421개로 늘어났다.


부산은 이렇듯 일본의 전쟁경제에 점점 더 깊숙이 편입돼 갔고 아울러 부산의 공업기지 역할이 그만큼 더 커져 갔다. 부산에선 전쟁특수로 인해 공업생산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증대돼 갔을 뿐더러 더불어 제조업 기업의 창업 또한 활발하게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빛이 밝으면 그늘 또한 짙은 법이다. 부산의 공업은 전쟁특수에 기대어 공장들마다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쪽에서는 예기치 않은 부작용도 불거져 나왔다. 미국과의 태평양전쟁이 진행되면서 그에 따른 시장 외적인 영향이 커져간 것이다. 무엇보다 기업 규모에 따른 양극화 현상이 심화돼 갔다.


뿐만 아니라 부산의 제조업 기업들은 양극화에 이은 동남아 수출시장의 상실, 경쟁의 왜곡 등 전체적인 시장 왜곡화를 다른 지역의 공업도시들보다 더 심하게 겪어야 했다. 그런 결과 1930년대 공황기에 구축됐던 자립적인 성장 구조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역적으로 보았을 때 식민지 시기 전체를 통해 일본으로의 의존성이 강화된 데다,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공황기에 구축됐던 성장 구조마저 잃어버리게 된 부산은, 결국 몰락의 수순을 밟을 수밖엔 없었다. 불야성을 이루던 공장들은 이윽고 기계가 멈춰 섰고, 기술자들이 떠나간 자리는 다시 메울 길이 없었다. 해방 이후 부산의 제조업 기업들은 '제조업의 공동화'로 다른 어느 지역의 공업도시들보다 더 큰 타격을 입어야만 했던 것이다.


결국 부산은 해방 직후 대한해협을 오가는 귀국선들로 잠시 떠들썩하다 말았다. 오래지 않아 귀국선들의 뱃고동 소리도 멈추면서 부산은 이내 알 수 없는 공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에 반해 인천 쪽이 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개항 초기 잠깐 동안 반짝이다 주도권을 부산에 내어주고 만 인천은 해방 직후 연이은 정크무역과 마카오무역으로 '무역의 시대'를 활짝 열어 보이면서 다시금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 것이었다.


박상하 작가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1606:40
     ⑥ 생존과 직결되는 복지 문제로 챙겨야…"진단체계 만들고 부처 간 연계 필요"
    ⑥ 생존과 직결되는 복지 문제로 챙겨야…"진단체계 만들고 부처 간 연계 필요"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606:30
    "케첩은 알아도 토마토는 본 적 없다"는 美…일본은 달걀 아닌 "회·초밥이 왔어요"⑤
    "케첩은 알아도 토마토는 본 적 없다"는 美…일본은 달걀 아닌 "회·초밥이 왔어요"⑤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406:30
     ④ 이동식 마트는 적자…지원 조례는 전국 4곳 뿐
    ④ 이동식 마트는 적자…지원 조례는 전국 4곳 뿐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306:30
    "창고에 쟁여놔야 마음이 편해요"…목숨 건 장보기 해결하는 이동식 마트 ③
    "창고에 쟁여놔야 마음이 편해요"…목숨 건 장보기 해결하는 이동식 마트 ③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206:40
    "새벽배송은 사치, 배달이라도 됐으면"…젊은 사람 떠나자 냉장고가 '텅' 비었다 ②
    "새벽배송은 사치, 배달이라도 됐으면"…젊은 사람 떠나자 냉장고가 '텅' 비었다 ②

    편집자주'장보기'를 어렵다고 느낀 적 있나요? 필요한 식품은 언제든 온·오프라인으로 살 수 있는 시대에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지만 대한민국에는 걸어서 갈 슈퍼도 없고, 배달조차 오지 않아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처럼 음식을 살 수 없는 이곳을 '식품사막'이라 부릅니다. 식품사막은 고령화, 지방소멸, 정보격차 등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장보기라는 일상의 불편함이 어떤

  • 25.12.1711:00
    ③'中 배제 新무역질서'…"동맹 경제력으로 中 견제"
    ③'中 배제 新무역질서'…"동맹 경제력으로 中 견제"

    미국 안보전략의 또 다른 축은 '경제안보'다. 중국을 배제하는 무역질서 재편을 핵심 의제로 내세우며 한국의 부담을 키울 거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이 무역관계 리밸런싱과 관세를 통한 재산업화를 내걸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들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의 여파가 한국에 전가되지 않도록 산업·기술 공급망 구조를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최근 공개한

  • 25.12.1706:10
    '상호주의' 기반 수출·통상 고도화…자본유출·환율상승 압박도
    '상호주의' 기반 수출·통상 고도화…자본유출·환율상승 압박도

    미국이 3년 만에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내놓으면서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을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맹국에도 예외 없이 계산서를 들이미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성향이 이번 NSS에도 고스란히 담기면서 수출 및 통상 셈법이 더욱 복잡해진 상황이다. 지정학 리스크 등 외부 제약 요인이 커질 경우 자본 유출과 환율 상승 등의 부작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중국을 상대로 한 미국의 태도 변화를 토대로 기회를 엿

  • 25.12.1611:28
    "美·中 관계 거래주의 기반, 틈새서 실리 챙겨야"
    "美·中 관계 거래주의 기반, 틈새서 실리 챙겨야"

    최근 공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National Security Strategy) 보고서에 담긴 동북아 외교·안보 전략을 두고 이재명 정부가 내년부터 본격화하겠다고 선언한 '한반도 평화·공존 프로세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언급이 빠지고 중국·러시아·일본에 대한 전통적 서술에 변화가 감지되면서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동북아 외교 안보와 미·중 관계가 '거래주의'를

  • 25.12.1510:00
    中·러 "환영" vs 유럽 "내정 간섭"…각국 엇갈린 반응
    中·러 "환영" vs 유럽 "내정 간섭"…각국 엇갈린 반응

    역대 미국 행정부들과 정 반대 기조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새 국가안보전략(NSS)에 각국이 엇갈리는 반응을 보인다. 전통적으로 견제 대상이었던 중국, 러시아는 예상 밖의 온건한 표현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오랜 동맹 유럽은 '문명의 소멸'이라는 미국의 경고에 "내정간섭"이라며 들끓고 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만 해도 NSS에서 중국을 '최대의 도전', 러시아를 '당장의 위협'이라고 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도

  • 25.12.1510:00
    中 추격·러 위협 여전한데… 美 해석만 달라졌다
    中 추격·러 위협 여전한데… 美 해석만 달라졌다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질서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 지난 5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NSS)이 공개됐다. 미국은 중·러와의 세계 패권 경쟁 대신 '힘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방침을 새 원칙으로 내세웠다. 33쪽에 달하는 이번 NSS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인 2022년 이후 3년 만에 나온 미국의 안보전략 지침서다. NSS는 미국 대통령이 의무적으로 작성·공개하는 최상위 안

  • 25.12.1510:17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눈에 띄게 달라졌다" 36억 투입해 '자동화·자원화' 확 달라진 도축장⑤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도축·가공 현장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경남권의 핵심 거점인 부경양돈협동조합 통합부경축산물공판장과 대전·충남권의 대전충남양돈농협 산하 포크빌축산물공판장은 시설 현대화를 통해 생산성과 위생, 환경 성과를 동시에 끌어올리며 국내 축산물 경쟁력 강화의 실증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수입 축산물과의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공판장의 역할이 단순

  • 25.12.1209:58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똥값의 역전'…70억 투입하자 악취 나던 분뇨가 돈이 됐다 ④

    정부가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FTA) 국내보완대책이 제주 축산 현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제주 한라산바이오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가축분뇨를 재생에너지와 비료로 전환하며 지역 축산업의 환경 기반을 바꾼 시설로 꼽힌다. 제주에서는 약 55만~60만마리의 돼지가 사육되며 하루 2500t 가까운 분뇨가 발생하는데, 한라산바이오는 이를 안정적으로 처리하고 자원화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분뇨가

  • 25.12.1108:51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멀쩡한 사과 보더니 "이건 썩은 거예요" 장담…진짜 잘라보니 '휘둥그레' 비결은?③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보완대책을 통해 설립된 '충주 거점 산지유통센터(APC)'는 단양과 제천, 음성, 괴산 등 충북 북부권에 위치한 농가 650곳에서 생산한 사과를 세척·선별·포장·출하하는 과실 전문 APC입니다. 생산단계부터 관리하고 사과 브랜드화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또 저온저장고와 선별기 등을 통해 비용을 줄여 농가엔 더 큰 수익을, 소비자들에겐 품질 좋은 사과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습니다.

  • 25.12.1010:18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고품질 韓 조사료 키워 사료비·수입의존도↓ ②

    59개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의 국내보완대책 가운데 하나가 '조사료생산기반확충 사업'이다. 조사료는 볏짚이나 목초 등 거친 섬유질 위주의 사료로, 이 사업을 통해 국산 조사료의 생산·유통·가공 기반을 갖춘 지역 단위 가공·유통센터가 확충되면서 국산 조사료 품질과 시장 신뢰도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 김제에 위치한 전주김제

  • 25.12.0909:11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1인당 3500만원까지 받는다"…'직접 지원'한다는 FTA국내보완책①

    올해 3분기 기준 한국은 22개의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를 통해 59개 국가와 FTA를 활용한 무역에 나서고 있다.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가 발효된 2004년 4월 이후 약 21년 5개월 만의 성과다. 정부는 현재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85% 수준인 FTA 네트워크를 글로벌 1위인 90%까지 더 넓고 촘촘하게 확충할 방침이다. FTA 네트워크 확대에 따라 한국의 수출 시장이 넓어진 만큼 수출액도 2004년 2538억달러에서 2024년 6836

  • 25.12.1810:59
    이재명 대통령 업무 스타일은…"똑부" "구축함" "밤잠 없어"
    이재명 대통령 업무 스타일은…"똑부" "구축함" "밤잠 없어"

    정부 부처 업무 보고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국방부 보훈부 방사청 등의 업무 보고가 진행된다. 업무 보고가 생중계되는 것에 대해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감시의 대상이 되겠다는 의미,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 보고가 이루어지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 참모들과 대통령과 같이 일했던 이들이 말하는 '이재명 업무 스타일'은 어떤 것인

  • 25.12.0607:30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한국인 참전자 사망 확인된 '국제의용군'…어떤 조직일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이현우 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한 한국인의 장례식이 최근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열린 가운데, 우리 정부도 해당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매체 등에서 우크라이나 측 국제의용군에 참여한 한국인이 존재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보도가 그간 이어져 왔지만,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확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2.0309:48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조응천 "국힘 이해 안 가, 민주당 분화 중"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조응천 전 국회의원(12월 1일) 소종섭 : 오늘은 조응천 전 국회의원 모시고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솔직 토크 진행하겠습니다. 조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조응천 : 지금 기득권 양당들이 매일매일 벌이는 저 기행들을 보면 무척 힘들어요. 지켜보는 것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