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누군가 말했다. “이번에도 여자 핸드볼은 가슴을 졸이게 하고, 눈물이 나게 할 거야.”
역시 그랬다. 지난 13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런던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은 다시 한 번 모든 이들에게 스포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안겼다.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여자 핸드볼이 4강에 오르리라 내다본 스포츠 관계자는 많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11위에 그쳤기 때문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고전하지만 올림픽에서는 잘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을 뿐이다.
여자 핸드볼은 런던대회 전까지 올림픽에 7회 연속 출전하며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의 놀라운 성적으로 올렸다. 메달을 따지 못한 2000년 시드니대회에서는 4위였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달랐다. 우승 한 차례(199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대회)와 3위 한 차례(2003년 크로아티아 대회)를 거뒀을 뿐이다.
16개국이 출전한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은 러시아, 스페인,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호주 등과 조별 리그 B조에 배치됐다. 선수들은 러시아에 24-39, 스페인에 26-29로 졌지만, 약체인 호주 등 하위권 팀을 모두 이겨 3승 2패, 조 3위로 16강에 올랐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프리카 예선 1위인 앙골라에 29-30으로 패했다. 16강전에서 탈락한 8개 나라는 순위 결정전을 치르지 않고 조별 리그에서 거둔 성적을 기준으로 순위를 가렸다.
불과 7개월여 뒤 열린 런던 올림픽에서의 한국은 달랐다. 조별 리그 B조 첫 경기에서 세계선수권대회 3위인 스페인을 31-27로 잡았다. 이 뿐만 아니다. 2차전에서는 세계선수권대회 4위인 덴마크를 25-24로 따돌렸다. 3차전에서는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국인 노르웨이와 27-27로 비겼다.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국인 프랑스에 21-24로 졌지만 B조에서 그나마 약체인 스웨덴(세계선수권대회 9위)을 32-28로 이겨 3승1무1패, 조 2위로 8강에 올랐다.
선수단은 8강전에서 세계선수권대회 6위인 러시아를 24-23으로 꺾으며 일찌감치 메달 이상의 값진 성과를 올렸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LA)대회 이후 8회 연속 4강 진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남자 축구는 자동 출전한 1988년 서울대회 이후 7회 연속, 통산 9차례 출전한 끝에 64년 만에 올림픽 메달의 꿈을 이뤘다.
1936년 베를린대회에서 11인제 실외 경기(남자, 우승국 독일)로 도입된 이후 올림픽에서 사라졌다가 1972년 뮌헨대회 때 7인제 실내경기(남자, 우승국 유고슬라비아)로 돌아온 핸드볼은 1976년 몬트리올대회에서 여자부가 세부 종목으로 추가됐다. 이후 여자부에서는 소련이 2회 연속(1976년~1980년), 한국이 2회 연속(1988년~1992년), 덴마크가 3회 연속(1996년~2004년), 노르웨이가 2회 연속(2008년~2012년) 우승하며 올림픽 무대를 주름잡았다. 이들 나라 외에 여자 핸드볼 올림픽 챔피언은 소련 등 동유럽 나라들이 여럿 불참한 1984년 로스앤젤레스대회의 유고슬라비아뿐이다.
올림픽 여자 핸드볼 강국 한국은 이번 런던 대회까지 어느 종목, 어느 나라도 쉽게 할 수 없는 9회 연속 출전의 대기록을 세울 뻔했다. 32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1980년 3월 정진규 감독의 지도 아래 모인 윤병순 등 14명의 한국 여자 핸드볼 선수들은 30여 시간의 긴 비행 끝에 프랑스를 거쳐 콩고에 도착했다. 그해 7월 열릴 모스크바올림픽 아시아·아프리카·북미 대륙 예선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1979년 11월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과 대만에 4전 전승을 거둔 한국은 미국, 콩고와 벌인 대륙 예선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4전 전승으로 본선 출전권을 땄다.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서 여자 핸드볼이 처음으로 올림픽 정식 세부 종목으로 채택된 지 4년 만에 거둔 값진 성과였다.
그러나 여자 핸드볼 대표 선수들은 꿈에도 그리던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한 미국 등 서방 국가의 올림픽 불참 대열에 한국도 끼었기 때문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대회에서 은메달을 따 4년 전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지만 왠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픈 한국 여자 핸드볼의 올림픽 출전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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