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체 연예인 CEO의 덫
-연예인 마담뚜 영업중단엔 인연 '뚝'
-유명인 대표로 있는 '레드힐스' 최근 경영악화로 파산
-'월급쟁이 사장' 이유로 논란에서 뒷걸음
-연예인 내세워 홍보...매출·인지도 올라가지만 회사 어려워지면 슬그머니 발 빼
-가입자만 뒤통수
[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아나운서 신은경, 탤런트 손숙, 김영란, 엄앵란 그리고 선우용여….'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결혼정보업체의 CEO를 한 번씩 해봤다는 점이다. 이들이 회사 경영을 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 미뤄 일종의 얼굴마담 역할을 한 것이다.
결혼 정보업체들은 소비자들이 결혼정보업체를 선택할 때 '신뢰'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점 때문에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진 연예인을 회사 CEO로 내세우고 있다. 특히 업계 특성상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들며 어머니와 같은 포근한 이미지를 가진 중년 여성 연예인이 그 대상이다.
문제는 이들 연예인들이 가진 친숙하고 믿음직스러운 이미지가 해당 업체의 신뢰를 100%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000이 대표로 있어 믿음직스럽다'는 식의 광고에 수많은 미혼남녀들의 혼을 쏙 빼앗고는 결국 뒤통수를 치는 사례가 왕왕 벌어지고 있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선우용여가 대표로 있었던 결혼정보회사 레드힐스가 이달 초 경영악화로 문을 닫았다. 회사 파산으로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계약금을 날리게 된 가입자들은 용산경찰서에 회사 대표이사 등을 상대로 고소장을 접수해놓은 상태다.
레드힐스는 2010년 탤런트 선우용여를 대표로 내세우며 "몇몇 회사처럼 유명 연예인을 내세워 광고하는 곳이 아니라 선우용여 대표가 실제 등기상에 공동 대표로 올라가 있어 믿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인지도가 높은 스타가 단순히 홍보모델이 아니라 회사 대표로 있다는 말에 가입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것. 그러나 선우용여는 '월급쟁이 사장'이라는 이유로 이번 논란에서 한발 물러서있다. 선우용여를 보고 가입했던 다수 가입자들은 뒤통수 맞은 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레드힐스 대표 전화에서는 "아무나 소개하지 않습니다"라는 선우용여의 통화 연결음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결혼정보업체들은 왜 문제가 생길 때 책임지지도 않을 연예인을 CEO로 내세우고 있는 걸까. 결혼정보업체 한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스타마케팅을 쓰지 않으면 안 먹힌다"면서 "단순 모델이 아니라 대표이사 자리에 앉혀놓으면 신뢰성이 배가 된다. 아무래도 직접 CEO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 가입자들에게는 더욱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 CEO의 경우 경영자라기보다는 사고 발생시 책임을 지지 않는 얼굴마담에 가깝다. 대부분 단기간 CEO로 재직하다 본업으로 복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고객들은 공인인 연예인 CEO를 믿고 가입하지만 정작 이들은 단기간 내 회사 인지도 및 매출을 어느 정도 올려놓고는 손을 떼기 때문에 결국 사건ㆍ사고가 생기면 '나와 관계없는 일'이라며 등을 돌려버리는 게 문제다.
연극배우이자 전 환경부 장관인 손숙은 2007년 결혼정보업체 웨디안의 대표로 취임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지난해 야반도주를 하고 본사 사무실을 폐쇄했다. 그동안 '손숙이 운영하는 회사'를 운운하며 가입자들에게 '믿을만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는 갑자기 문을 닫고 도주해 버린 것. 하지만 손씨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항변했다. 2009년 대표이사직을 그만 뒀기 때문에 해당 업체와는 상관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선우용여, 손숙 뿐만 아니라 연예인CEO들은 대부분 단타 자리다. 배우 김영란씨는 지난 2006년 재혼정보업체 '행복출발'의 대표로 취임했다. 취임 후 6개월만에 매출은 두 배 뛰어올랐다. 그러나 김씨 역시 대표로 재직한 기간은 2년에 불과했다. 본업으로 복귀하겠다며 대표직을 내려놓은 것. 행복출발 관계자는 "당시 재혼정보업체에 대해 생소했었는데 김영란씨를 대표로 영입하고 나서 인지도가 쑥쑥 올라갔다"면서 "김씨가 방송 출연할 때마다 회사 홍보나 매출면에서 효과를 봤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행복출발은 방송인 최송현씨를 모델로 기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결혼정보업체 듀오도 사업 초창기였던 2001년에는 전 KBS아나운서인 신은경씨를 대표이사로 영입하기도 했었으며 닥스클럽은 배우 엄앵란씨를 대표 컨설턴트로 내세우고 있다. 엄씨의 경우 그나마 장기간 활동하고 있다. 유비스클럽은 배우 선우재덕씨를 홍보이사로 두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순 모델 기용 차원이 아니라 연예인을 CEO자리에 앉히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지만 회사가 어려워질 경우 사정을 미리 파악한 연예인CEO들이 슬그머니 경영에서 발을 빼고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결국 모양새가 안 좋게 끝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연예인 CEO는 일반인들에게 워낙 잘 알려져 있다는 장점 덕분에 회사 인지도를 단기간에 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자칫 잘못될 경우 독이 돼 논란이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가입자들은 믿었던 사람에게 발등 찍혔다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면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서야하는데 물만 흐리고 떠나는 경우가 있어 그렇지 않은 동종업계들도 피해를 본다"고 꼬집었다.
오주연 기자 moon170@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