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휴대폰 가치 매기는 '휴대폰 감정사'의 세계
[아시아경제 김철현 기자]# 정건희씨는 업무 시간에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전화를 기다리거나 무선인터넷을 통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다른 이들의 손때가 묻은 중고 휴대폰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보존 상태는 어떤지 등을 꼼꼼하게 살피는 일을 하고 있다. 그의 직업은 아직은 생소한 '휴대폰 감정사'다.
17일 통신 업계에 따르면 중고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이 중고폰에 가치를 매기는 휴대폰 감정사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전시에 위치한 SK텔레콤의 T에코폰센터에는 정건희씨와 같은 일을 하는 32명의 감정사가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사용자들이 중고 휴대폰의 감정을 의뢰하면 기능을 점검하고 외관 상태를 판단해 N(New), A, B, 매입불가 등으로 등급을 결정한다. 사용자들과 한 때 동고동락했던 휴대폰들의 가치가 결정되는 시간 10여분 내외다. T에코폰팀 관계자는 "T에코폰센터의 휴대폰 감정사 한 명이 하루에 다루는 중고폰 물량은 평균 약 50대 수준"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고폰 물량이 늘어나면서 야근 등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 날도 늘었지만 감정사들은 중고폰 하나하나를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휴대폰 외부를 보면 내부 회로까지 그려지는 '경지'에 오른 감정사들도 있다. 전자현미경 등 첨단 장비를 동원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배동원 수석 감정사는 "감정해 매입한 단말기는 상품화 과정을 거쳐 고객에게 합리적인 가격에 재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휴대폰 감정사들이 결정하는 중고 휴대폰의 가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감정사들은 외관 보존 상태가 가격을 정한다고 입을 모았다.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같은 기종이라도 보존 상태가 얼마나 신제품과 동일한지가 보상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감정사들은 "단말기를 사용할 때 액정보호필름, 보호케이스 등을 사용하면 깨끗한 상태로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할 수 있고 중고 판매 시에도 좀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다른 이들이 오랜 기간 사용한 휴대폰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을 하다 보니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배동원 감정사는 "단말기 잠금 번호가 설정돼 있으면 사용자들에게 전화로 사정을 설명하고 잠금 번호를 묻곤 하는데 보이스피싱으로 오해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털어놨다.
지난 7월 T에코폰을 통한 중고 거래량이 5만8000대까지 늘어나는 등 중고폰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휴대폰 감정사라는 직업도 빛을 보고 있다. 배동원 감정사는 "휴대폰 감정사는 장롱폰으로 전락하는 단말기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 넣는 일"이라며 "스마트폰의 확산에 따라 범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성능 중고 단말기도 함께 증가해 앞으로 시장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김철현 기자 k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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