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최근 만난 금융감독원 중간간부는 부하직원의 사표 제출에 적잖이 당황했다는 심정을 토로했다. 그가 직접 선발한 경력사원 2명이 입사한지 불과 1개월도 안돼 '그만두겠다'고 밝혀 직속 상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과 적잖은 급여, 나름의 사명감이 뭉쳐져 금융권에서 금감원을 최고의 직장으로 자부한 그에게 부하직원의 갑작스런 사표 제출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금감원은 지난 6월 말 신용평가사와 시중은행 출신 인력 각 1명씩을 경력사원으로 채용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모두 사표를 쓰고 퇴사했다. 특히 신용평가사 출신 직원은 출근한 지 일주일 만에 '그만두겠다'고 말해 회사 동료들을 맥 빠지게 했다.
이 간부는 "사표 쓴 직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금감원의 이미지가 아니다'는 애매한 답변을 했다"면서 "일반 금융기업에 비해 연봉은 적지만 업무강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세다는 점이 이들을 아연실색케 만든 것 같다"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마당에 일개 직원 퇴사가 뭐가 중요하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요즘 금감원 상황을 살펴보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금감원은 그동안 자타가 인정하는 '꿈의 직장'이었다. 직장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데다 정년 보장이 어려운 현실에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일정 수준 이상의 급여를 보장해준다. 이런 직장을 박차고 나선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일터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의 업무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는 게 원 내ㆍ외부의 평가다. 최근 금감원의 은행감독 및 검사 부서는 고강도 업무에 한동안 시달려야 했다. 실무 최고책임자인 국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야근은 물론이고 새벽 퇴근이 다반사였다. CD금리 대체,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 가계대출 등 금융 이슈가 한꺼번에 은행 쪽에 몰린 결과다.
각종 금융기관을 감독하고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인력도 추가로 필요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금감원 관계자는 "채용 보다는 이슈가 있을 때마다 내부적으로 돌려 막기하는 형국"이라면서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불거질지 우리 역시 불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더위도 한 몫 했다. 폭염이 유난히 길었던 올 여름 금감원 청사는 그야말로 찜통을 방불케 했다. 사람 뿐 아니라 컴퓨터 등 전자기기에서 방출하는 열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에어컨이 작동됐지만 더위를 식히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미약했다. 그나마 주말 근무에 냉방은 허락되지 않는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여파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무리 에너지 절약도 좋지만 최소한의 근무 여건은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너무 더워 업무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금감원 입사 실력 정도면 업무 강도는 낮으면서도 연봉은 상대적으로 높은 다른 금융기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얘기도 간간이 나오고 있다.
금감원 출신의 한 연구원장은 "그야말로 사명감으로 일하는 조직"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금융의 건전성을 감시하는 기구에도 뭔가 혁신이 필요해 보이는 요즘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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