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기업의 비밀은…
펀(FUN) 경영은 사실 오래전 이야기다. 1990~2000년도에도 크게 주목받았던 경영방식 중 하나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펀 경영이 불황과 항상 맞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 경제위기 돌파를 주도했던 펀 경영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웃음 경영의 유명한 일화. IBM 창설자인 톰 왓슨이 회장 재직 당시 한 간부가 리스크 부담이 높은 사업을 벌여 회사에 1000만달러의 손실을 냈다. 이 간부는 사표를 준비하고 왓슨 회장을 찾아갔다. 회장에게 “제 사표를 원하신다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자, 왓슨 회장은 “지금 농담하나? IBM은 자네의 교육비로 1000만 달러를 투자했네”라고 말했다.
사실 왓슨 회장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이 간부를 해고하는 것으로는 원인을 되돌리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왓슨 회장의 유머는 이 간부에게 오히려 힘을 줬다. 훗날 손해를 본 3배 이상의 이익이 돌아왔다.
조직 경영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는 ‘유머 경영’은 이제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적 기업 카운슬러인 데브라 밴턴이 최고경영자(CEO)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한 ‘CEO처럼 생각하는 법(How to think like a CEO)’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적었다. 이 책에는 성공한 CEO 공통점으로 ‘유머’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한다’는 것을 꼽았다.
특히 책에서 유쾌한 사람이 생산적인 노동력을 만들고, 의욕이 없거나 시무룩한 사람은 비생상적인 노동력을 만들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 내용의 핵심이다. 경영자는 권위와 미래에 대한 비전 그리고 결단력이 경영에 큰 요소를 차지하지만 이러한 뒷받침에는 유머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펀 경영을 내놓은 로버트 레버팅 박사는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직원”이라며 “훌륭한 일터는 경영진의 신뢰와 자부삼 그리고 재미(FUN)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맥도날드의 일화도 유명하다. 맥도날드가 생에 처음으로 러시아에 진출하면서 쓴 마케팅 전략은 ‘펀 경영’이다. 처음 모스크바에서 문을 연 맥도날드는 러시아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이때 펼친 것은 ‘스마일 훈련’이다. 당시 직원들은 이 스마일이 ‘지옥’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할 정도다. 판매직원은 매일 아침과 저녁 강제적으로 10분 이상씩 미소 훈련을 받았다. 이런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판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웃는 얼굴을 하게 됐다. 러시아 사람들은 무뚝뚝하기로 소문나 있었지만 판매 직원들의 웃음에 금세 감성이 흔들렸고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웃음이 중요한 이유
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교도소에서 슈퍼마켓을 털다가 복역 중인 강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질문 내용은 “총이나 칼을 들고 슈퍼마켓에서 강도질을 했을 때 차마 하지 못했을 때가 어떤 때였나”였다. 흥미로운 것은 95%의 강도들이 “종업원이 눈을 마주치며 웃으면서 인사를 할 때”였다. 양심상 흉기를 꺼낼 수 없어서 돌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웃는 얼굴에는 강도질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기업의 경영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이 ‘즐거운 직장’ 만들기다. 여기에는 ‘펀 경영’이 반드시 도입된다. 펀 경영은 이미 국내 수많은 대기업을 시작으로 관공서, 중소기업 등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으며, 실제로 성과를 경험한 기업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전문가들은 경기가 불황일수록 펀 경영에 주목하라고 이야기한다. 2008년 국내에서도 펀 경영 바람이 크게 불었지만 잠깐 수준이었다. 펀 경영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순히 ‘즐거움’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항상 ‘웃음’을 유발하는 직장을 가지라는 것이다.
안홍진 효성그룹 홍보담당 전무는 “CEO들은 개그콘서트 같은 개그프로그램을 매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머감각이 없는 상황에서 펀 경영을 이끈다면 단순하게 생색내기용에 그친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펀 경영을 일시적인 직원의 사기진작용으로 쓸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각종 기업에 웃음 강연을 펼치고 있는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 소장은 “기업 구성원들의 웃는 모습에 따라 회사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판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펀 경영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직원들의 사기다. 한 그룹사에서는 펀 경영을 시작한 뒤 직원들의 이직률이 ‘0’으로 떨어졌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근무에 대한 몰입감이 높아지면서 직장상사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고객으로 이어지는 효과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기업들도 최근 적극적으로 펀 경영을 활용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낸 보고서를 통해 “최근 다양해진 업무 영역 확대와 기업 구성의 세대교체, 회사의 로열티 하락 등 여러 악재로 기업이 고전하고 있다”며 “펀 경영 등 신 기업문화는 구성원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창의력과 업무 의욕을 높여 장기적으로 큰 성과를 가지고 올 것이다”고 분석했다.
특명 “직원들 사기를 북돋아라”
최근 불황을 맞이하면서 국내 기업들도 펀 경영을 도입이 늘고 있다. 유럽위기 이후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금융계가 가장 많았다. SK증권은 지난 2월부터 전 직원을 대상으로 ‘행복 밥상’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복밥상은 직원들의 자발적 활동을 통한 ‘Fun & Rich’ 조직문화 확산을 위한 것으로 대상자는 매주 수요일 사내방송 통해 추첨하고 있다. 또한, 행사 후 기부금을 모아 연말에 독거노인들에게 ‘사랑의 쌀’을 증정한다. SK증권은 그동안 ‘행복포차’, ‘본부의 달’, ‘칭찬합시다’, ‘행복 cafe’ 등을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다.
KTB투자증권은 ‘토요한마당’이라는 행사를 진행 중이다. 이 행사는 전 직원이 모여 케이크 만들기, UCC 영화제, 임직원 자선경매 등 한 달에 한 번 신나게 모여서 논다. 이는 ‘모여서 놀면서 수익을 낸다’는 기치 아래 모든 직원이 즐겁고 신나는 일터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불황을 맞고 있는 건자재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재미있고 즐거운 일터’ 만들기기 핵심이다. 이들 업체의 공통점은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 외부환경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의미다.
LG하우시스는 구성원 간 수평적 커뮤니케이션 활성화를 위해 ‘산업카운슬러’ 제도를 운용 중이다. 임직원들로 구성된 산업카운슬러는 각 사업부문에서 경청과 대화 등에 자질이 있는 사람들로 선발됐다. 이들은 경쟁적 직무환경과 사회문화적 변화로 인한 인간관계, 우울증 등의 문제를 함께 공유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또 사원 대의기구인 ‘그린보드’를 통해 ‘자율복장제’, ‘자율출퇴근제’ 등 지금까지 100여건이 넘는 제도개선 요구 아이디어가 회사에 전달돼 실행됐다.
한명호 LG하우시스 대표는 “변화를 바라는 젊은 세대와 세상의 변화 속도를 보면 더 이상 Top-down식의 혁신은 한계가 있다”며 “구성원들이 작은 것에서부터 자율적·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도록 조직문화와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L&C도 ‘한마음운동회’와 ‘체인지 바이러스(Change Virus)’ 등의 다양한 직원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체인지 바이러스’ 프로그램은 전 임직원이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며 신뢰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임직원 간의 단결과 협동을 이끌어 낸다. 동화홀딩스는 직원 휴게실인 ‘나무 공간’과 북카페 ‘그린 라운지’를 운영 중이다. 국내 유명 건축가가 디자인한 공간에, 회사에서 생산되는 제품들로 인테리어를 꾸몄다. 또 직원들의 추천을 받은 책을 구입해 무료로 대출해 주고 있다.
한솔홈데코는 직원 자녀 대상 여름·겨울 캠프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또 10만평이 넘는 전북 익산공장 부지 한쪽에 텃밭을 일궈 직원 가족을 위한 주말농장으로 제공하고 있다. 수확된 농작물은 지역 복지재단에 기부하거나 바자회를 통해 판매하며, 수익금은 연말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밖에 전사원이 참여하는 체육대회, 산행 등의 ‘펀 이벤트’로 노사 일체감을 강화하고 있다.
CEO, 펀 경영 생활화해야
1971년 설립된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저가항공사다. 이 회사는 창업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비행기 1대당 직원 수가 다른 항공사에 훨씬 적지만 미국에서 불만이 가장 적은 회사로도 통한다. 가장 빠른 수화물처리와 정시도착 등 수많은 훈장을 가지고 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미국 수많은 회사 가운데 노동 강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또 직원의 급여 수준도 높지 않다. 그러나 직원의 충성도는 매우 높다. 또 미국의 경제지 ‘포춘’이 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100대기업‘으로 꼽혔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경쟁력은 ‘직원’이었다. 창업자인 허브 캘러허 회장은 “직원들의 회사다”라고 표방한다. 그는 일을 놀이로 만든 파격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의 출입국 담당사원은 유머감각이 뛰어나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들은 “양말에 가장 큰 구멍이 나 있는 분 손들어보세요”, “열쇠고리에 가장 많은 열쇠가 달려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운전면허 사진이 가장 못생기게 나온 사람은요?”라는 질문으로 기다림에 지친 고객들을 즐겁게 한다.
기내 방송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비행을 마친 승무원은 “오늘도 사우스웨스트항공과 함께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기억하세요. 아무도 당신을, 혹은 당신의 돈을 사우스웨스트항공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라는 멘트로 고객의 기억에 각인시킨다.
직원들이 이렇게 유쾌하게 일을 하는 이유는 회장의 경영철학도 중요하다. 캘러허 회장은 미국에서 몇 안 되는 ‘펀 경영’ 성공 CEO로 알려졌다. 항상 직원들에게 유머를 던지고 이벤트를 연다. 또 직원들의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항상 직원을 만나 “재미있는 이벤트를 만들자”며 함께 연구한다.
국내에서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트위터로 유명해진 박 회장은 직원과 잘 소통하는 CEO로 유명하다. 박 회장은 두 개의 메신저를 쓰고 있다. 하나는 비즈니스를 위한 메신저고 나머지 하나는 직원들과 소통을 위해서다. 최근에는 트위터를 통해 많은 대화를 하지만 현재도 메신저를 통해 직원들에게 ‘장난’을 친다. 물론 여기에도 ‘유머’가 가미한다.
두산그룹 한 직원은 “매일 출근해 회장님의 트위터를 보는 게 첫 업무다”며 “트위터를 보고 있으면 하루를 웃음으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트위터에 “넘 고단한데 잠이 협조를 안해주길래 약을 한방 먹여 때려 눕혔더니 ㅠㅠ 이사회 이십분전에 뷘마마가 두드려깨운다. 악! 왕지각! 목숨걸고 질주중”이라는 메시지로 하루를 알린다.
출근한 이후에도 직원과의 대화는 끊어지지 않는다. 직원들이 피곤하다는 메신저를 보내면 “1층까지 뛰어 갔다 와라 그럼 잠이 금방 깬다”며 유머감각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박 회장의 이런 덕분으로 유머감각 두산그룹은 한때 대학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회사로 꼽히기도 했다. 또 기업이미지가 크게 상승했다는 보고서도 나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수많은 전문가는 CEO들의 ‘유머 감각’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벤처기업협회는 최근 낸 자료를 통해 “기업들의 ‘펀 경영’ 도입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수록 직원들은 더욱 힘을 내고 업무에 집중한다. 이는 곧 고객을 대할 때도 즐거움과 웃음을 전달하고 자연스럽게 펀 마케팅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만들 수 있다”고 밝혔다.
이코노믹 리뷰 최재영 기자 sometime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