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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두려움 직시한 기보배, 바람을 극복했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11초

바람 계산한 로만, 바람 넘어선 기보배

[올림픽]두려움 직시한 기보배, 바람을 극복했다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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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세트 포인트 5-5. 마지막 한 발에 메달 색깔이 뒤바뀌는 ‘슛 오프(Shoot-off)’였다. 선제공격에 나선 기보배(세계랭킹 2위). 스트레이트 스탠스를 취하고 온몸을 과녁에 집중했다. 이어진 셋업. 힘차게 활을 잡아당겼다. 바람이 불었다. 꽤 거셌다. 1시 방향, 풍속 2~3m/s를 오가더니, 이내 12시 방향, 4m/s로 요동을 쳤다. 기보배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대로 손가락을 현에서 떼며 화살을 날렸다. 관중석이 곧 술렁였다. 화살촉은 12시 방향 9점 라인을 살짝 벗어났다. 8점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기보배. 백운기 감독의 위로를 뒤로 한 채 바람에 맞서려 했던 시도를 자책했다.

하지만 그는 옳았다. 이어진 아이다 로만(멕시코, 세계랭킹 13위)의 차례. 현을 입술에 가져간 그는 철저히 바람을 계산했다. 1시 방향, 풍속 5.4m/s. 로만은 기다렸다. 그리고 런던의 하늘은 화답했다. 바람은 12시 방향, 풍속 3m/s로 바뀌더니 이내 11시 방향, 1.7m/s로 변했다. 남은 제한시간은 3초. 바로 릴리스가 이어졌다. 그런데 순간 풍속은 2m/s로 조금 거칠어졌다. 그대로 70m 허공을 가른 화살. 촉은 붉게 물든 8점에 꽂혔다. 지점은 10시 방향으로 9점 라인에서 꽤 떨어져 있었다. 과녁 중앙에서 더 가까운 건 기보배의 화살. 로만은 웃었고 기보배는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그토록 바란 금메달이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짜릿함은 그렇게 재현됐다. 기보배는 영화 속 남이(박해일 분)와 같았다. 극한 상황에서 바람을 계산하지 않았다. 극복했다. 두려움은 직면하면 그뿐이라 여겼다. 24살의 막내는 담대했고 장영술 총감독의 주문은 그대로 실천에 옮겨졌다. 앞서 장 감독은 금메달 획득 관건에 대해 “시끄러운 응원소리와 승리에 대한 집착을 모두 넘어서야 한다”며 “두려움을 극복하면 무조건 얻는다”라고 했다.

[올림픽]두려움 직시한 기보배, 바람을 극복했다 기보배[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기보배가 가진 두둑한 배짱의 근원은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훈련을 거듭하며 무뎌졌다. 언제부턴가 팽팽한 상황을 즐기게 됐다. 전혀 떨리지 않는다. 무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분위기를 즐기려 한다.” 거저 얻은 수확은 아니다.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번지점프, 소음 적응훈련, 루틴 유지, 주장 소화...” 마침표를 잃은 다양한 요소들. 코칭스태프는 한 마디로 정리한다. “매사 긍정적이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금방 털어낸다.” 기보배도 인정한다. “‘안 되면 말자’라고 생각하면 편해진다. 실수발이 나와도 다음날이 되면 잊어버린다.”


굳음 심지로 한국 여자 양궁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의 자리를 재확인했다. 앞서 이성진, 최현주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한 기보배는 김수녕(1988년), 조윤정(1992년), 김경욱(1996년), 윤미진(2000년), 박성현(2004년)에 이어 여자 양궁에서 올림픽 2관왕을 달성한 역대 여섯 번째 선수가 됐다. 그 사이 4년 전 박성현이 장쥐안쥐안(중국)에게 져 놓친 금메달의 아쉬움은 말끔히 씻겨 내려갔다. 이전까지 여자 양궁은 1984년 서향순을 시작으로 2004년 박성현까지 올림픽 6회 연속 개인전 우승을 지켜왔었다. 끊어진 금 명맥을 다시 이은 기보배. 참으로 ‘기’가 넘치는 ‘보배’였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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