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이 복잡한 날, 찬물에 얼굴을 푹 담궜다가 고개를 들어 탈탈 털어버리면 거기엔 딱 한 가지 생각만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렇게 가장 선명하고 또렷한 의미가 삶의 정답이 되기도 하는 법입니다. 밴드 룩앤리슨의 이름을 듣는 순간, 무릎을 친 건 바로 그런 어쩔 도리 없는 명징함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의 이름에는 대문자로 써야 하는지, 소문자를 섞어서 써야 하는지, 사이에 점을 찍어야 하는지, 하이픈이 필요한지, 그래서 숨겨진 뜻은 대체 뭔지 궁금함이 숨을 자리라고는 없습니다. 무대에 올라 노래를 하는 그룹이 요구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고 솔직한 두개의 동사는 그래서 이들의 정체성이며, 이들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며, 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지도입니다.
단지 단순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은유하거나 축약하지 않고 당돌하게 보고 들으라 하는 이 이름은 만만찮게 도발적이기도 합니다. 여자 보컬이 부르는 멜랑콜리한 가사는 여느 모던록 밴드의 감수성 못지않으며, 때때로 이들의 노래는 발랄하고 경쾌한 느낌으로 정돈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룩앤리슨의 매력은 결국 펑크의 기세, 쨍하고 솟구치는 단단한 에너지에 있지요. 얌전히 순서를 기다리거나, 빙빙 말을 돌리며 유혹하거나, 우리가 익숙한 화법으로 양보를 하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서야 이들의 소속이 비트볼의 예능국, 그 중에서도 아이돌 본부인 것을 이해하겠습니다. 머리를 설득하기 전에 마음으로, 문장으로 설명하기 전에 몸짓으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룩앤리슨은 전기충격처럼 전달됩니다. 만듦새가 아니라 기억되는 방식이 아이돌의 그것인 거죠. 벌써 선명하게 기억되지 않나요. 국내 최초 우윳빛깔 펑크 아이돌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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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윤고모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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