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뒤흔든 경제민주화 ‘빛과 그림자’
경제민주화.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두다.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정치권에서 제기한 경제민주화는 정치권과 시민단체, 재계와 학계에 이어 국민까지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한국 경제에서 막강한 권력을 쥐고 정부 정책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재벌을 개혁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경제 시스템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국민 대다수는 경제민주화를 통한 재벌개혁의 필요성에 적극 호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참여연대와 원혜영 민주통합당 의원실에서 전국 20세 이상 성인남녀 1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경제민주화에 따른 재벌개혁에 공감한다는 의견이 70.1%를 차지한 것은 이를 방증한다.
이 여론조사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같이 해야 한다는 의견도 70.0%로 나타났다. 경제민주화는 필요하지만 재벌개혁은 필요없다는 의견은 12.9%로 극히 소수였다.그러나 정작 국민은 경제민주화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른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시각 차이로 인한 가지각색의 의견이 난무하며 정의조차 또렷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재벌을 규제하고 부를 재분배하는 등 정치권에서 제기한 원색적인 것들만 알고 있다. 국민은 경제민주화가 우리 경제에 어떤 파문을 미치고,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재벌을 혼내줄 수 있는 것, 많이 가진 자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을 해소하기 위한 위안거리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대선 앞두고 정치권에서 끄집어낸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끌어들인 주체는 정치권이다. 대선을 턱밑에 두고 국민의 표를 잡기 위해 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경제민주화를 이슈로 끄집어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고 주창하고 있지만 각자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을 만들고 경제민주화 법안 1, 2, 3호 등을 발의했다. 경제민주화 1, 2호는 각각 횡령·배임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에게 집행유예와 재벌의 일감몰아주기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또 최근 발의한 3호는 재벌의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가공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이다. 재벌이 기존에 갖추고 있는 순환출자를 강제로 없애는 것보다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의결권만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주통합당이 주장하는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에 비해 강도가 세다. 경제민주화포럼을 출범하고 경제민주화 법안 발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재벌 개혁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이들은 자본총액의 1배를 초과하는 부채 보유 금지, 자회사 보유주식 기준 50% 상향조정, 순환출자 제한 기업집단 지정과 이에 속하는 회사의 계열사 간 순환출자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 등 9개 법안을 무더기로 발의했다.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법안은 재벌에 대한 기득권을 철저하게 없애겠다는 것이고, 이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재벌 개혁에 이은 경제시스템 바꿔야
경제민주화에 대한 찬성 의견은 시민단체의 가세로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밀어붙이자 시민단체는 일제히 환영의사를 내비쳤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했던 재벌 개혁을 실시하고 현재의 경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겠다고 벼르고 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은 재벌의 소유구조로 정착한 순환출자를 전면 금지하고, 출자총액을 25%까지로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으로는 재벌의 확장을 막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대기업 간 담합 및 중대한 불공정거래 행위에서도 집단소송제를 도입하는 등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친인척 계열사와의 거래를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는 친인척 계열사에 대한 직권조사제 도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계열사와 일반계열사의 철저한 분리,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 정비 등도 필요하다고 요구하고 있다. 경실련 최정표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경제는 극소수의 재벌기업에게 힘이 집중돼 있고, 재벌들은 막강한 힘을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비경제영역까지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재벌들은 이 같은 힘을 바탕으로 정부 정책까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를 통한 재벌 개혁을 통한 경제시스템은 반드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쭦E
미니인터뷰 |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연합 국장
시장경제 성공 위해 재벌개혁 필요하다
“재벌개혁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다” 김한기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국장은 최근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재벌개혁을 통한 경제시스템의 변화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우리나라는 극소수의 재벌에게 힘이 지나치게 집중돼 있다”며 “재벌은 그 힘을 이용해 경제영역과 비경제영역을 넘나들며 이익을 편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벌들에 의한 힘의 집중이 지속하는 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고 시장경제의 성공도 없다”고 꼬집었다. 김한기 국장은 “경제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한 조건으로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제도를 부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효율적 재벌정책을 위해서는 공기업을 제외한 30대 대규모기업집단 제도를 살려 재벌을 집중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지주회사의 강력한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김 국장은 “현재 우리나라 재벌들은 자회사를 지주회사로 만들고 심지어 손자회사까지 지주회사화 할 수 있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이 가능하다”면서 “현재 시스템상 지주회사가 100% 지분의 자회사만 가지도록 규제하는 것은 파장이 크기 때문에 손자회사가 지주회사화가 되는 것 만큼은 막을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순환출자를 제한하는 것도 경제민주화를 이뤄내기 위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출자규제의 강화는 30대 재벌그룹을 대상으로 출자한도를 25%로 제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재도입, 순환출자의 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계열사와 일반계열사의 철저한 분리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금융 보험계열사의 의결권 행사 전면금지, 금융지주회사와 일반지주회사의 완전 분리, 계열분리 명령제 도입 등 금산분리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경제민주화 법안 발의 등에 대해서는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정치권에서 단순 대선을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경제민주화 ‘빛과 그림자’
위기의 한국 경제 포퓰리즘으로 기업 때려서는 안돼
경제민주화 논쟁을 지켜보고 있는 재계는 답답하기만 하다. 유로존 위기가 글로벌 실물경제로 전이되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를 가장한 재벌 때리기가 대기업들의 투자 위축과 대외 경쟁력을 약화시켜 한국 경제를 깊은 수렁으로 빠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로존 위기가 미국과 중국을 넘어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는 현재. 경제민주화를 통해 기업을 옥죄고 주저앉힌다면 한국 경제는 금융위기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와 달리 일부 학자들과 재계에서는 경제민주화를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이들은 정치권이 발원지인 경제민주화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표를 얻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 학계를 대표하는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지난달 제주 해비치호텔에서 열린 전경련하계포럼에서 “경제민주화가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의미지만 시장에 역행한다면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대중적인기 영합주의를 통해 국민의 정서를 자극하는 포퓰리즘은 시장 경제를 어지럽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당시 포럼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정 총장이 재벌이 비리가 있거나 불공정거래 등을 한다면 엄격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무차별적인 대기업 때리기를 통한 선거 전략으로 남용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학계를 대표하는 정 총장의 지적은 현재 한국 경제에 빨간 신호등이 켜진 상태에서 정치권의 포퓰리즘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난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경제 심각한 위기… 경제민주화는 화약고에 불붙이는 것
현재 한국 경제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각종 지표에서 잘 나타난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지난달 수출실적은 작년 동기대비 8.8% 감소한 446억 달러를 기록하며 감소폭이 지난 2009년 10월(-8.5%) 이후 가장 컸다.
수출 체감지수 역시 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고, 상반기 상장기업의 신규설비 투자는 70.5% 급감했다. 수출이 급감하면서 이미 불황에 빠진 내수 경기는 하반기 더 깊은 침체의 골로 빠질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상황을 반영하듯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의 경기실사지수는 82.7을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되던 지난 2009년 3월 76.1을 기록한 이후 최저치다.
경제민주화 반대론자들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짊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와 글로벌 경쟁력 위축을 가져올 수 있는 대기업 옥죄기식의 논의가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경제민주화 논쟁보다는 무너지고 있는 한국 경제를 살리는데 정치권과 재계, 국민 모두가 합심해야 할 때지, 경제민주화라는 화약고에 불을 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와 지식경제부 수장들도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눈치다. 유로존 위기가 전 세계로 전이돼 각국의 경기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로 먹고사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애써 깎아내리면서까지 경제민주화를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속내다.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최근 “경제민주화가 지나치면 외국 기업과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이는 결국 외국기업에 혜택을 줄 수 있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논의에 대해 좀 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홍 장관은 대기업을 무턱대고 공격하는 ‘기업 때리기’식 경제민주화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재계, 세계경제 침체 비상경영 ‘대기업 옥죄기’ 그만
재계에서는 경제 성장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기업들을 옥죄는 경제민주화는 절대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가장 먼저 경제민주화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대한상공회의소다. 대한상의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정치권이 대기업을 사악한 집단인 듯이 몰아붙이는 경제민주화 주술에 빠져 있는 사이, 기업들은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로존 위기가 세계경제 침체로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는 등 절박한 상황에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는 보고서 등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지만 경제민주는 기존 법률로 충분히 얻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제민주화를 반대하는 이들은 경제민주화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무조건적인 정서가 조장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한국 경제가 하강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시기에 지나친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규제가 이뤄진다면 한국 경제는 회복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계에서 “경제민주화가 대기업 때리기, 대기업 옥죄기로 변질되는 것만은 없어야 한다” 고 주장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쭦E
미니인터뷰 | 전원책 자유경제원장 변호사
경제민주화, 포퓰리즘 거대담론일 뿐이다
“여당의 경제민주화는 몽둥이요, 야당의 경제민주화는 방망이로 보인다”
전원책 자유경제원장은 최근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경제민주화를 시장경제주의라는 헌법의 대원칙을 부수는 흉기로 정의했다. 또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포퓰리즘 접근이고 거대담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전 원장은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가 불분명하고 모호하다”고 꼬집었다. 경제를 민주화 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개입을 통해 규제하고 이를 법제화 하는 것이, 민주화라는 말로 통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전 원장의 주장이다. 그는 이어 “경제가 어려울수록 경제민주화란 말은 얼마나 유혹적인가”라고 전제한 뒤 “선거판에 좌파를 자처하는 야당도 이념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여당도 쓰고 싶어 안달이 났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표(票)가 된다면 주머니 사정은 생각도 않은 채 급식도 보육도 등록금도 전부 다 공짜로 주겠다고 무상 시리즈를 경쟁적으로 외쳤던 이들이 경제민주화라는 깃발을 흔들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는 “뻔한 소리로 일관하고 있다”며 “자본주의는 부의 집중이 필연이니 재벌들을 혼내줘야 한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탐욕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으니 대기업의 종목을 정해 발을 묶어야 한다는 식으로 만만한 재벌때리기에 몰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출자총액제한과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등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오래된 레퍼토리로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고 폄하했다. 전 원장은 이어 헌법 제119조 2항에 규정돼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도 “의미조차 모호한 정치적인 언어인 경제민주화가 헌법에 들어있는지 모르겠다”고 강한 거부감을 표출했다.
그는 이어 “승부(勝負)의 결과가 가혹할 때 승자의 독식을 막기 위해 장치를 만들어 복지제도로 패배자를 돕는 것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더라도 각종 제도로 규제하고 있다”면서 “이런 것들이 헌법에 다 들어 있다”며 “경제민주화 논의는 불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코노믹 리뷰 홍성일 기자 h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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