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갚기도 버거운 황혼취업 '쥐꼬리 연봉'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인천시 남구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24시간 맞교대로 일하고 있는 경비원 임필동(71·가명)씨에게 여유 있는 노후란 남의 나라 얘기다. 중동 건설 붐이 일었던 1970년대 임씨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제법 큰 돈도 만져봤다. 하지만 지금은 하루라도 쉬면 당장 생계를 꾸리기가 곤란하다. 임씨가 경비직으로 받는 월급은 90만원 안팎. 이마저도 대부분 아내의 병원비로 들어간다. 15년째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도 빈곤한 노후를 보낼 수밖에 없는 소위 '실버푸어(Silver Poor)'가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6월 현재 60세 이상 고령자 가운데 취업을 하고 있는 이는 312만 명으로 전체 60세 이상 인구의 40%에 육박한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생계형 취업이다. 자기 삶의 실현을 위해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일이 없으면 당장 생활이 곤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는 얘기다.
삼성생명 보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2010년 기준 29.3%다. 이는 프랑스(1.3%) 영국(3.9%)은 물론 초고령 사회인 일본(19.4%)보다도 높다. '고달픈 노년'을 보내고 있는 노인 숫자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일을 통해 삶이 나아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일하는 노년층 증가에도 불구하고 노년 빈곤층은 급증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은퇴 후 소득이 최소 생활비보다 적어 가난하게 사는 고령가구'를 뜻하는 은퇴빈곤층은 2010년 기준 101만5000가구로 은퇴가구(264만3000가구)의 38%다. 반면 '여유롭게 생활하는' 은퇴부유층은 8만4000가구로 은퇴가구의 3.2%에 불과하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60세 이상 실버 취업자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임금과 연금, 일자리 형태 등에서 열악한 상태"라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수원에 사는 한애자(75, 가명) 할머니는 매일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폐지를 줍는다. 할머니가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서 손에 쥐는 돈은 만원 남짓. 할머니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지만 큰 아들은 결혼 후 해외로 나갔고 작은 아들은 '바쁘다'며 연락이 끊긴지 오래다. 호적에 올라 있는 아들들은 오히려 할머니의 생계를 위협하는 존재다. 정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을 받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는 폐품수집 외에 동네의 한 사회복지단체 도움으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할머니 사례와 같이 70세 이상 초고령 취업자들의 사정은 매우 심각하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60~69세 취업자들의 임금은 지난해 130만원으로 전년(121만원)보다 소폭이지만 증가했다. 그러나 단순노무직 종사자 비율이 높은 70대 이상의 평균 임금은 지난해 57만원으로 전년(59만원)보다 오히려 2만원이 줄었다.
당연히 이들의 빚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노년층의 소득대비 가계부채의 비중은 164.3%를 기록했다. 이는 50대(122.9%), 40대(113.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전체 대출자 중 50세 이상 비중은 2003년 말 33.2%에서 지난해 46.4%로 상승했다. 평균 부채 역시 50대 이상이 6895만원으로 30대(4609만원), 40대(6469만원)를 웃돈다.
지난달 인천 남구 숭의동에서 60대 부부가 목을 매고 동반 자살했다. 부부는 통장에 잔고가 3000원밖에 없을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려왔다. 부부가 남긴 유서에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억척같이 살았는지 모르겠다. 남은 것은 집 보증금은 300만원뿐"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민정 연구위원은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정부나 개인차원의 '은퇴 준비' 노력은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라며 "실버 취업자 가운데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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