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칠흙같은 어둠 속을 자동차 두 대가 마주보며 달린다. 서로에게 보이는 것이라곤 상대방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 뿐이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강해질수록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마지막 순간 어느 한쪽은 핸들을 꺾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둘 다 죽음의 계곡에 빠지고 만다.
극단적인 게임이론 중 하나인 '치킨게임(Chicken Game)'이다. 한쪽이 양보하지 않으면 양쪽 모두 파국을 맞게 된다. 누가 양보의 핸들을 꺾느냐가 관건이다.
'치킨'이 될 가능성은 잃을 게 많은 쪽이 크다. 출발선상에 서기 전 이같은 계산을 할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잃을 게 적은 쪽은 끝까지 핸들을 꺾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양쪽 모두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란 점을 전제로 할 때다.
용산역세권 개발을 위해 꼭 해결해야 할 서부이촌동 주민보상을 두고도 치킨게임이 시작됐다. 사업자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이하 드림허브)는 한강변 서부이촌동 부지를 수용해 통합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 중 반대파는 수용을 거부하는 쪽이다. 진짜 통합개발을 반대하는 주민도 있을테고,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협상전략일 수도 있다.
드림허브는 부지를 감정가로 수용하되 새로 지어지는 주상복합을 3.3㎡당 3100만원에 할인분양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보상안을 마련, 내부 결정을 남겨놓고 있다. 분양가를 3.3㎡당 4000만원으로 가정할 경우 20% 이상 할인된 가격이다. 3500만원만 잡아도 할인폭은 10% 이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대로 올해 하반기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되면 분양가는 이보다 더 오를 수도 있다.
보상을 둘러싼 협상은 보통 버틸수록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속설이 어느 정도 통하는 분야다. 그래서 협상이 극단으로 치닫기 일쑤다. 치킨게임이 되기 쉽다는 얘기다.
게임에서 이기려면 사업자와 반대파 주민 양쪽은 출발선상에 서기전 치밀한 계산을 해야한다. 둘 다 끝까지 버틴다면 누가 잃는 게 더 많을까.
반대파 주민의 뜻이 관철돼 통합개발이 무산될 경우 드림허브는 서부이촌동을 떼내고 개발을 해야 한다. 사업계획을 변경해야 하고 이에 따라 설계도 다시 해야 한다. 서부이촌동이 한강에 접해 있어 수변 계획이 무산되고, 개발 후 강변쪽 조망도 당초 계획보다 악화될 게 뻔하다.
반면 주상복합 분양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2016년 완공된다고 해도 주택경기가 호전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꼬리 자르기가 될 수도 있다.
서부이촌동은 따로 재건축을 추진하거나, 상당기간 재건축을 미룰 수 있다. 단지별로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이해관계 조정은 통합개발보다 쉬워질 수 있다. 다만 통합개발 때처럼 용적률 상향조정의 혜택은 받기 힘들다. 또 따로 재건축을 하는게 통합개발 때보다 더 이익이란 것도 현재로선 장담하기 힘들다. 물론 반대파의 속내가 정말 개발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의지를 관철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보상안대로 통합개발이 관철된다면 반대파 주민은 강제 수용에 따른 원치 않은 개발에 휘말리게 되는 셈이다. 반대의 이유가 더 많은 보상금을 타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목적에 비해 보상금이 적을 수도 있다.
법적으로는 통합개발이 무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부이촌동 통합개발은 도시개발법에 따라 50%이상 주민동의율을 충족한 상태에서 추진 중이다. 박원순 시장 취임 후 뉴타운처럼 주민 의견 수렴을 강조하고 있지만, 강제 수용을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보상안이 이사회를 통과해 확정되면 사업자와 반대파 주민은 곧 치킨게임의 출발선 상에 서게 된다.
누군가는 양보해야 하는 게임이라면 핸들을 꺾어야 하는 쪽이 어딘지는 양쪽 모두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앞서 말한대로 양쪽 모두 합리적인 판단을 할 것이란 전제 하에서다.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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