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어제 민간인 불법 사찰 및 증거 인멸 사건의 재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불법 사찰의 몸통은 박영준 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고 증거 인멸은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지시했다는 게 결론이다. 청와대 고위층에 사찰 내용 보고, 민정수석실의 증거 인멸 개입 의혹 등은 증거 부족을 이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민의 의문을 풀어주지 못한 실망스러운 결과다.
검찰 수사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청와대의 별도 비선 조직의 지휘를 받으며 사찰 내용을 'VIP'에게 보고한다는 문건을 확보하고도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의혹의 당사자인 임태희, 정정길 두 전 대통령실장을 서면조사하는 데 그치고 당시 민정수석인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조사도 하지 않았다. 부실 수사 논란을 검찰 스스로 불러들였다.
500건의 불법 사찰 의심 사례를 조사하고도 대부분 단순 동향 파악이나 적법한 업무 관련 감찰 등이라는 이유로 3건에 대해서만 형사 처벌하기로 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총리실 관계자들이 진경락, 장진수 전 주무관의 입을 막기 위해 전달한 금품의 출처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관봉 형태의 5000만원은 출고 은행과 일시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넘어갔다. 숱한 의혹을 어느 하나 속 시원하게 파헤치지 못한 것이다.
검찰의 부실 수사 논란은 이번 사건뿐만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부지 매입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 등 관련자 전원을 혐의가 없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부동산 실명제 위반, 편법 재산 물려주기 의혹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 지었다. 새누리당에서도 특검이나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비난이 쏟아졌다.
동향 파악이라는 이유로 업무와 무관하게 정치인과 공무원은 물론 사법부, 기업인, 언론인, 종교인 등을 무차별적으로 사찰한 것은 공권력의 남용이다. 특히 민간인을 불법 사찰한 것은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한 중대한 인권 범죄가 아닐 수 없다. 국민의 믿음을 저버린 검찰의 부실 수사로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재조사가 필요하다. 특검이나 국정조사를 통해 의혹을 철저하게 규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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