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마이클 샌델 지음, 와이즈베리 펴냄
<정의란 무엇인가>로 세상을 온통 ‘정의’시대로 만들었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이번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그는 시작부터 모든 게 돈이 없으면 안 되는 상황부터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교도소 감방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82달러(1박), 러시아워에 나홀로 운전자에게 돈을 내고 카풀차로 이용하는 데 8달러, 미국으로 이민할 권리 50만 달러, 멸종위기에 놓인 검은 코뿔소 사냥할 권리 15만 달러 등이다.
마이클 샌델은 최근 수 십 년 동안 우리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 사회가 시장경제(Market economy)에서 시장사회(Market society)로 옮겨갔다고 진단한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도구인 반면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 된다.
샌델은 기존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았던 영역에서 돈과 시장이 개입하며 발생한 가치의 변질에 주목한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자발적으로 확대 시행되고 있는 탄소상쇄 정책(carbon offsets)이다. 배출된 이산화탄소의 양만큼 온실가스 감축 활동을 하거나 환경기금에 투자하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각자의 에너지 사용으로 지구에 미치는 손상에 대해 비용을 책정하고 이를 바로잡는 비용을 개별적으로 물게 하므로 온실가스 감축에 고무적인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이 정책으로 탄소상쇄권을 구입한 사람은 기후변화에 대해 더 이상의 책임을 면제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요소도 도사리고 있다. 적어도 일부 사람들에게는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습관과 태도, 생활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힘들이지 않고 회피할 수 있는 구실을 돈으로 살 수 있는 방법처럼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처럼 도덕을 밀어내고 모든 것을 사고파는 사회를 집중 해부하고 그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제시한다.
그는 우리 대신 시장이 가치를 결정하는 시장지상주의가 지난 수십년간 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도덕적 믿음을 공공의 장에 드러내 보이기를 두려워한 나머지 시장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그는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공적 토론을 통해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개선 이전에 시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문이다. 시장의 자율 규제와 정부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진다고 해도 시장 거래가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 그리고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훼손하고 변질시킨다면 효율성이란 이름아래 그것들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샌델교수의 지론인 셈이다.
이 책의 내용은 2012년 봄학기부터 ‘Markets & Morals’라는 제목으로 하버드대 철학강의로 개설돼 진행됐다. 이 책은 마이클 샌델이 1998년 옥스퍼드대학교의 ‘인간가치에 관한 태너 강의’에서 논의한 ‘시장과 도덕(Markets & Morals)'에서 출발했으며 2002~2002년 카네기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더욱 진전됐다. 마이클샌델이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 대해 15년간 철저히 준비하고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는 걸작이다.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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