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박연미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이 4300억달러 이상의 추가 재원 확보에 성공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불씨를 잠재울 대형 소화기를 마련한 셈이다. 기대와 우려 속에 출항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 체제는 '순항'하고 있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게 됐다. 한국도 섭섭지 않은 성과를 챙겼다. 한국은 싱가포르·영국·호주와 그룹을 짓고 150억달러 지원을 약속했다. 유로존과 일본의 지원 선언 뒤 공회전하던 논의를 반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요 20개국(G20) 체제가 유효함을 확인한 계기였다.
20일 오후(워싱턴 현지시간) 폐막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의 시작과 끝은 'IMF의 재원확충' 문제였다. IMF는 유로존의 재정위기, 그에 따른 세계 경제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재정적 방화벽(firewall)'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장은 엇갈렸다. 회기 전 위기의 진앙지인 유로존이 이미 2000억달러를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좀 더 성의를 보이라는 회원국들의 압력이 만만치 않았다. 대선을 앞둔 미국은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요구했다. 천문학적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정치적 부담을 떠안고 싶지 않다는 얘기였다. 신흥국의 맹주 노릇을 하는 중국은 재원 확충에 참여하겠지만, IMF의 지배구조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IMF의 터줏대감인 미국이나 유럽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회의 개막 전 재원 확충 분위기 조성에 나선 건 일본이었다. 지난 17일(현지시간)일본은 600억달러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날 노르딕 3개국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도 263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뒤이어 스위스와 폴란드도 340억달러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19일 개막한 회의는 20일 오전까지도 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유로존과 비(非) 유로존,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려 이번 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수 있다는 비관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 사이 한국은 치열한 물밑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회의 개막 전날 라가르드 총재에게 재원 확충 참여 의사를 밝힌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9일 밤 한국 스탭들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박 장관은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재무장관과 공조해 마음을 정하지 못한 호주와 영국을 설득했다. 최종구 국제경제관리관은 이날 양국 차관들과 수 차례 접촉하며 의견을 조율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한국은 20일 오전 회의 재개에 앞서 영국(150억불)·호주(70억불)·싱가포르(40억불)와 함께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150억달러 지원 계획을 밝혔다. 라가르드 총재가 설정한 목표액의 90%가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유로존도, 브릭스(BRICSㆍ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아닌 국가들의 재원 확충 참여 결정에 사우디아라비아(100억달러)는 부랴부랴 막차를 탔다. 이외에 멕시코 등 기타 국가들도 재원 확충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G20은 회의 폐막과 함께 채택한 커뮤니케에서 "구체적인 지원 규모를 밝히지 않은 나라를 포함해 IMF가 4300억달러 이상의 재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면서 "이 돈은 특정 지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IMF 회원국이 이용할 수 있는 재원"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재완 장관은 "유럽 재정위기를 제 때 잠재우는 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도 절박한 문제였다"면서 "한국이 G20 체제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논의의 주도권을 쥐었다는 점도 적잖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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