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강원)=아시아경제 오주연 기자]"자기 칩이 아닌 경우에는 손대지 마세요!"
지난 15일 강원도 정선 강원랜드카지노 객장에서는 바카라 게임을 즐기던 한 고객이 "누군가 내 칩에 손을 댔다"며 감독관에게 판독을 요청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자신이 베팅한 칩이 순식간에 사라져 게임에 이겼음에도 배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바카라 감독관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자기 것 아니면 좀 건들지 마세요"라고 좌중을 향해 소리치며 "뒤쪽에 계신 분, 저 분과 같이 상황실에 가셔서 CCTV로 확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손짓했다.
최근 불거진 '몰래카메라 사기도박 사건' 이후 강원랜드카지노 객장은 경계가 부쩍 삼엄해졌다.
외부 사기도박단과 강원랜드 직원이 카지노 테이블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이번 사건에 대해 최흥집 강원랜드 대표가 직접 나서 '인적쇄신'을 강조한 이후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10일 카지노 객장 내 불법 장치물 설치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2000년 개장 이래 처음으로 임시휴장한 이후 첫 주말을 맞은 이날 객장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우선 손님들이 객장 안으로 들어설 때 검문이 강화됐다. 감시하는 기기는 그대로이지만 안전요원들이 더욱 세밀하게 관찰하고 있는 것. 약간의 의심스러움 부분이 있으면 몸수색도 진행했다.
감시의 눈도 많아졌다. 검은 양복을 입은 감독관들이 매장을 부지런히 오가며 딜러와 고객들의 동태를 살폈다. 고객과 딜러간 분쟁이나 혹시 오해될 소지가 있을 경우에는 재빨리 대응하는 민첩함도 보였다.
몰카 사건 이후 상무급 이상 임원들도 주말에 비상근무를 서고 있다. 토요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를 서면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해당 임원에게 보고되도록 강화한 것. 본래부터 당직실을 따로 운영해 사안에 따라 사장실에 직접 보고가 올라가도록 돼있는데 이러한 상황보고 체계를 이중으로 강화했다.
내부 직원들에 대한 윤리교육을 강화하고 메뉴얼 숙지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모습이다. 카지노 직원들은 따로 분임조를 만들어서 소단위의 세미나, 토론회를 통해 자정활동을 벌이고 있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최 대표는 강원랜드를 '사계절 가족형 종합리조트'로 발전시켜 비리의 온상이라는 부정적인 틀을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다"면서 "일일 매출액 30억원을 포기하면서까지 임시휴장한 데에는 그만큼 최 대표의 결연한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움직임이 몰래카메라 사건과 휴장을 거치면서 달라졌지만 객장을 가득 채운 고객들은 변함이 없었다.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꾸릴 만큼 분주한 한 주를 보내고 맞은 첫 주말, 일일 입장객은 1만여명에 달했다. 몰카사건보다도 화창한 봄날씨가 더 영향력이 컸던 탓일까, 평소 8000명에 달하는 주말 입장객 수를 훨씬 상회한 것. 임시휴장하고 바로 다음날인 11일에만 1000명가량이 감소했을 뿐, 이후부터는 변동이 없었다.
강원랜드 측은 대부분의 고객이 이번 몰카 사건을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본인들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준 것이 아니었기에 게임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도박꾼'들에게 더욱 짙게 나타났다.
강원랜드에 출입을 시작한 지가 언제인지도 기억 안 난다는 한 남성은 "몰카사건으로 내가 따아야할 돈을 못 땄다거나 피해를 준 건 아니기 때문에 상관없다"면서 "임시휴장일 덕분에 오랜만에 집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년 남성은 "돈도 잃고, 사랑도 잃고…다 떠났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만 그는 오전 11시부터 이튿날 휴장시간인 새벽 6시까지 몇 개 남지 않은 칩을 손에 쥐고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강원랜드는 2개월 연속 15일 출입, 분기 30일 초과 출입을 '도박중독'으로 본다. 한 달 입장객 20만여명 중 이같은 도박중독자들은 3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흔히 말하는 중독자는 0.1%에 그치지만 나머지 19만여명은 단순 관광객"이라며 "타지역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바는 무시한 채 0.1%의 부정적인 요소만 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 임시휴장이었던 10일. 주변 음식점도 함께 휴장했다. 태백-고한(강원랜드)-동서울을 오가는 왕복고속버스는 이날 일일 20회 운행 수를 14회로 줄였다. 강원랜드가 문을 닫아 40인승 버스의 6회 왕복분이 소용없어진 것. 평일에만 서울에서 200~300명이 강원랜드를 찾는다는 말이다. 인근의 식당 매출도 1/2로 급감했다.
강원랜드 인근의 한 고깃집 식당 주인은 "지역민들은 강원랜드와 연계해 삶을 꾸릴 수밖에 없다"며 "특히 겨울 스키시즌일 때 단체 관광객ㆍ가족 단위 고객들이 많이와 매출이 높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인근의 편의점 직원은 "카지노ㆍ스키 관광객들이 점점 증가하자 지난 여름부터 여기에도 정선5일장처럼 고한장이 생겼다"며 "카지노만으로는 콘텐츠가 부족하다. 더 다양한 놀거리들이 생겨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현재 비수기인 여름에도 레저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계절가족형리조트사업'으로 발전시켜 카지노라는 한정된 포맷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르면 연내에 워터월드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서는 카지노 고객보다 리조트 고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실제로 매년 레저 고객 비율이 증가세에 있다"며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전체 관광객 480만명 중 레저 고객이 100만명을 돌파했다. 2020년까지는 스키- 골프-워터월드 사업을 통해 카지노와 레저 매출을 현재 9:1에서 5: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설명했다.
정선(강원)=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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