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초대석] 정일영 교통안전공단 이사장
[아시아경제 황준호 기자]"비도 좀 내리는데 멀기도 했을 테고, 찾아줘 고맙긴 하지만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교통사고를 줄이기가 국가경쟁력 제고의 방편이라는 점은 꼭 국민들에게 강조해 달라."
지하철 4호선 고잔역에서 10분 거리, 걷기 딱 좋은 곳에 위치한 교통안전공단의 본사에서 지난 10일 정일영 이사장이 반갑게 맞으며 말했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7층짜리 자그마한 건물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누추하지도 않다. 비서실도 다른 임원들과 공용으로 사용하다보니 다소 비좁아 보이기도 한다.
홍보관리관 이력을 가진 그가 기자들의 눈치를 못 챌리 없다. 정 이사장은 "비서실 크지 않다고 업무하는 데 불편하지 않다. 2년 정도 후면 김천으로 내려갈텐데, 그때는 좀 넓어질지 모르겠다."
특유의 점잖은 웃음을 짓던 그는 다시 교통사고 줄이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나섰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을 삶을 파괴하고 있다"면서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대략 5229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연간 5229명이라면 하루 평균 15명 넘게 교통사고로 세상을 뜬다는 얘기여서다. "암으로 인한 사망자의 10%에 달하는 수치"라고 알기 쉽게 덧붙였다.
정 이사장은 "암은 발병을 막기 힘들고 발병할 경우 자신의 삶을 해치는 데 그친다"면서 "이와 달리 교통사고는 자신은 물론 타인과 그 가족의 삶까지 황폐하게 만든다"고 역설했다. "초등학생 수준의 예방책만 잘 지키면 허무한 죽음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도 했다. 격앙된 듯한 어투로 교통사고 발생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엔 그럴만한 배경이 있는 셈이다.
지난해 8월 공단의 수장으로 선임된 이후 정 이사장의 머릿속은 온통 교통사고를 어떻게 줄일까란 생각으로 가득한 것 같다고 옆에서 귀띔한다.
"복지라는 단어가 유행이지만 교통사고를 줄이는 것이야 말로 실질적인 복지"라고 정 이사장은 단언한다. 개인은 물론 가족의 행복을 지키는 안전판이라는 것이다.
=두시간에 한명꼴로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줄일 수 있는가?
▲ 질문이 잘못됐다. 무조건 줄여야 한다. '2009년 OECD 회원국 교통사고 비교'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 1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8명이다. 32개 OECD국가 중 30위다. 뒤에는 터키(3.1명), 슬로바키아(3.5명)만이 있다. 교통안전 분야에서는 후진국이라는 뜻이다.
교통사고는 90%가 인적 재해다 . 그 것을 줄이기 위해 캠페인,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 문화를 바꾸기 위한 초석 다지기다. 대상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되 구분해서 실시한다. 또 사고 발생률이 비사업용 운전자에 비해 5배나 높은 사업용 자동차 사고를 막기 위해 사고 전과가 있는 운전자를 대상으로 집중 교육도 실시한다. 운전습관의 근본적 교정을 위해 교통안전체험교육과 함께 디지털 운행기록 분석서비스를 통해 과학적으로 운전 습관을 교정하고 있다.
여기에 상주 교통안전체험센터에 이어, 수도권에도 교통안전체험센터를 개소할 계획이다. 인구가 수도권에 많이 몰려 있다는 점에서 이번에 개소할 안전체험센터는 우리나라 안전운전 교육의 메카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이어 자동차 자체적인 성능을 개선하는 작업도 병행한다. 화성에 70만평 규모로 조성된 자동차안전연구원이 이를 담당한다. 자동차 제작결함 조사와 함께 신차 안전도 검사, 부품자기인증 등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사람과 차량에 대한 관리 두 가지를 통해 육상교통 안전과 더불어 철도, 항공에 대한 안전점검도 공단에서 실시하고 있다.
-본인이 직접 교통사고를 경험한 적은?
▲사고는 없었다. 예전 건설교통부 공보관 시절 집값이 요동치는 바람에 하루 종일 핸드폰에 불이 났던 적이 있다. 그때 운전 중 통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게 된 적이 있다. 이후 다시는 그런 짓 안한다.
같은 맥락에서 스마트폰은 안전운전의 적이자 친구다. 스마트폰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선두주자지만 안전운전에서는 가장 무서운 적 중 하나다. 운전할 때 다른 곳에 신경쓰는 것은 자살행위다. 문제는 그 행위로 인해 다른 사람의 삶까지 파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스마트폰을 통해 교통량을 확인하고 안전운전 취약 지점 등 위치정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운전 전후의 스마트폰은 안전운전의 친구라고 볼 수 있다.
- 안전운전, 올해 목표는?
▲아직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수 집계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전체 (교통사고로 인한)사망자수 4500명, 사업용 사망자수 750명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정했다.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1173조원)의 1.1%인 12조9598억원이 피해비용으로 소요됐다. 물적피해만 8조2342억원이며 인적피해는 3조6577억원에 달한다. 2010년 기준으로 교통사고를 절반으로 감소시킬 경우 6조원 이상의 사회·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 가정의 정서적 황폐화를 국가적 차원에서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실질적인 복지정책 수단은 교통안전 사고 감소라고 판단된다.
- 목표 달성을 위한 공단의 조직관리는?
▲ 지난해 공단은 각종 비리로 얼룩졌다. 쇄신이 필요했다.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현실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취임 후 비리 관련자 24명을 잘라냈다. 간부직은 20% 가량 줄였다. 노조도 새롭게 바꿨다. 하위직 인사까지 객관적인 인사 평가를 통해 실시했다. 새로운 조직에 새로운 과제와 전략도 제시했다.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됐다.
조직내 청렴시스템도 대거 도입했다. 먼저 52개 공단 핵심업무에 대한 상시·사전 점검 시스템(e-감사 시스템)을 구축했다. 부패유발요인 발생시 조기경보를 가동케 하여 비리발생 요인 사전관리를 강화했다.
청렴 옴브즈만 제도도 도입했다. 옴브즈만제는 한국투명성기구 추천 외부전문가 3명이 투입돼 부패 취약부분에 대한 모니터링를 실시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법인카드 사용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서는 현금융통방지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소위 '카드깡'으로 불리는 법인카드의 편법사용을 통한 현금화를 근절했다. 클린카드제도 실시해 주말·공휴일·심야시간 및 제한 업종(유흥업소 등)에서 법인카드 사용을 시스템적으로 제한했다.
자동차검사, 자동차사고피해가족지원 등 6개 분야 고객을 대상으로 '고객상대 금품요구 여부'등의 항목에 대해 감사처 주관으로 월 1회 전화모니터링을 실시하는 '클린콜(Clean Call) 제도'도 공단을 청렴한 조직으로 거듭나게 하는 제도로 도입했다.
다만 인위적인 조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문화를 바꿔야 했다. 직원들과의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었다. 이에 취임 후 매주 한번씩 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CEO 희망편지'라는 이름으로 소통에 힘쓰고 있다. 조직내 70%가 본사가 아닌 각 지역별로 흩어져 있다. 이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서는 회사의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 매주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단어 하나 하나에 신경쓰지 않으면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보통 목요일 초안을 잡고 일요일 저녁 다듬어 월요일 메일로 뿌린다. 각 지역본부에서는 프린트해서 들고 있다가 주말께 읽어본다고 들었다. 가끔씩 직원들이 답장을 줄때 소통의 참맛을 느낀다.
- 교통안전공단의 향후 과제는?
▲ 우리나라 자동차 검사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자동차 검사 분양에서 ISO90001 국제품질경영시스템 및 ISI14001 환경경영시스템 국제인증을 획득했다. 특히 하이브리드 검사기기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기기를 통해 하이브리드 차량의 안전도 검사와 배출가스 검사를 동시에 실시 할 수 있게 됐다.
공단은 개발도상국에 자동차 검사 노하우를 해외로 수출하기 위해 경주하고 있다. 몽골, 필리핀 등지의 교통 담당 공무원들이 우리나라 검사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공단을 찾아 노하우를 배워갔다. 이들 국가에서는 우리나라의 자동차 검사 노하우를 전수받기 위해 업무 컨설팅 사업 등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미·한EU FTA(자유무역협정) 발효에 따른 안전기준의 조정도 공단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다. 공단은 한·EU FTA 합의사항 이행과 자동차 안전도 향상 및 자동차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우리나라 자동차 안전기준을 세계기술규정(GTR), UNECE 기준 등의 수준에 맞춰 나갈 것이다.
황준호 기자 rephwan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