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국가 부도 사태인 디폴트 선언 직전까지 갔던 그리스가 민간 채권단과 국채교환에 합의하면서 총 2060억유로(약 303조원)의 채무를 절반까지 줄일 수 있게 됐다.
이번 국채교환 성공으로 그리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ㆍ유럽중앙은행(ECB)ㆍ유럽연합집행위원회(EC) 등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13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로써 그리스 디폴트에 대한 위기감이 한풀 꺾였지만 그리스 국민의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리스의 전체 실업률은 22%, 특히 청년층 실업률은 50%에 달한다. 하지만 공무원을 올해 안에 1만5000명 줄이고 최저 임금은 22% 삭감해야 한다. 게다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연금을 12% 추가로 축소해야 한다.
이와 함께 그리스 정부는 21개 긴축 항목을 의무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이달까지 국내총생산(GDP)의 1.5%에 상당하는 33억유로의 추가 재정 삭감을 뼈대로 한 보조 예산안도 통과시켜야 한다. 삭감되는 33억유로에는 건강보험 11억유로, 공공투자 4억유로, 국방비 3억유로, 연금 3억유로 등이 포함된다.
그리스 위기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선심 쓰듯 국민의 요구를 들어준 '포퓰리즘' 정치다. 그리스뿐 아니라 스페인 같은 남유럽 국가들도 포퓰리즘에 빠져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과도한 사회복지와 강성 노조의 득세, 이에 따른 성장동력 상실로 허덕이고 있다.
2001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가입한 그리스는 몇 년 전만 해도 고속성장을 이어갔다. 2004~2008년 연평균 성장률은 3.8%로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그러나 양대 정당이 정권을 잡기 위해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하면서 비극은 시작됐다.
정치인들은 더 많은 복지혜택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복지 예산이 눈덩이처럼 국고가 텅텅 비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다음달 11일 열리는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너나할것없이 복지공약 쏟아 내기에 바쁘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치권 복지공약을 실천으로 옮기려면 국민이 5년 간 최대 340조원이나 추가 부담해야 할 판이다.
이는 다음 대통령 임기 5년을 기준으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내놓은 공약 65개에 대해 분석한 결과다. 이는 올해 예산인 325조원을 훌쩍 뛰어 넘는 규모다.
자연발생적인 복지 수요만 추가해도 오는 2050년 우리 정부 빚은 GDP의 13.77%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 5년 간 340조원을 쏟아부으면 국가부채 비율은 측정 불가 수준으로 치솟게 된다. 한마디로 정치권의 공약을 그대로 수행하면 재앙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리스 재정위기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만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규성 기자 bo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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