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용품 복합기능화 새바람
‘주방’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인 ‘주방용품’들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물과 불, 액체와 고체, 흑과 백 등 대립적인 인자들이 서로의 경계를 허무는 곳, 주방. 이곳에서 주인공들의 ‘변신’은 어쩌면 숙명인지 모른다. 한 가지 역할에만 충실했던 ‘원로’ 기물들이 뒤안길로 몸을 숨기고 일인다역(一人多役)의 신인들이 조명을 받고 있다.
‘집밥’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의 2011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곡물, 육류 및 조미식품 등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이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 또 가정용품·가사서비스 지출도 전년 동기비 1.2% 늘었다. 반면 외식비와 교통비 지출 비중은 전년에 비해 줄었다. 밖에서 밥을 먹는데 인색해진 대신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외식에서 아낀 비용은 고스란히 주방기물의 매출에 반영됐다. 전문가에 따르면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고부가 제품시장이 커짐에 따라 현재 생활주방용품시장 규모는 약 3조원에 달한다. 한국주방생활용품진흥협회는 “정확한 증가율을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주방용품 시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방용품에 대한 관심은 비단 국내의 얘기만이 아니다. 일본의 경우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외식을 삼가고 가정에서 조리하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이에 따라 주방용품 매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유럽의 경우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전반적인 경기 부진으로 소비 수요가 많이 감소한 것과 맞물려 도자기 및 주방용품 수요 또한 줄어들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실용’을 강조하는 주방용품업체간 개발에 대한 열기는 어느 때 보다 뜨거운 상황이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고물가와 경기 불황의 여파로 집에서 식사하는 가정들이 늘어났다”면서 “이에 따라 실용적인 식기를 추가 구입하는 고객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초기 투자비가 높더라도 식재료만 사면 언제든 요리를 해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주방용품 코너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잘 고른 기물 하나, 세트메뉴 안 부럽다
주방용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늘었다고 해서 이것저것 즐비하게 수집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안 된다. ‘멀티플레이’가 가능한 똑똑한 식기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트나 백화점에는 얼핏 용도를 파악하기 힘든 제품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례로, 영국의 주방용품 조셉조셉(Joseph Joseph)의 ‘유니툴(Unitool)’이 그것이다. 유니툴은 구매목록의 칼, 뒤지개, 채, 주걱 등을 단 하나의 목록으로 압축시킨다. 이름 그대로 하나의 기구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다용도 제품이 시장에 출현하게 된 것은 가족 구성원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구성원이 줄다보니 이것저것 구비해 놓을 필요가 없다. 또한 ‘실용주의’를 외치는 젊은 층이 가사 일을 분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유도 한 몫했다. 이 같은 추세는 식기 구성에 대한 변화도 불러왔다.
행남자기 홍보실 조일래 과장은 “‘홈세트’ 구성에서 6인상이나 8인상은 사라졌다”면서 “그 대신 2인상 세트가 새롭게 추가됐으며 4인상 이하 제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간편식을 원하는 신혼부부나 싱글족을 타깃으로 최근 출시한 ‘간편식 홈세트’가 그 예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브런치 문화가 확산되면서 집에서도 카페처럼 즐길 수 있는 식기가 인기”라며 “2인 가족의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8인 홈세트’보다 간소한 브런치 세트에 몇 가지 필요한 것을 추가로 구입해 사용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 부부들의 식생활이 점점 서구화됨에 따라 한식과 양식 모두 활용이 가능한 제품을 찾는 고객도 많아지고 있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한국도자기의 ‘님스볼’은 스프나 파스타 접시로 사용할 수 있고, ‘요리볼’은 국물이 있는 요리나 샐러드 접시로 활용이 가능하다”면서 “실속족들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다용도볼을 추가로 구입하는 고객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 키워드로 ‘속’까지 신경 써
한 가지 제품으로부터 여러 가지 기능을 기대하는 이상 좀 더 ‘까다롭게’ 고르는 선구안이 어느때 보다 중요하다. 이에 따라 주방용품업계에서는 ‘하나를 만들더라도 속까지 신경쓰라’는 것을 특명으로 삼고 있다. 음식을 담는 역할을 하는 데서 나아가 건강과 환경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2000년대 초반 불어닥친 ‘친환경’ 열풍이 아직까지 그 여세를 몰아가고 있다. 락앤락 마케팅팀 김창윤 BM은 “친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환경적으로나 인체에 무해한 밀폐용기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중 하나가 삼광유리의 글라스락이다. 글라스락은 유리의 장점을 극대화시킨 친환경 용기다.
삼광유리 관계자는 “플라스틱 용기의 단점으로 꼽히던 물이 들고 냄새가 배는 등의 위생상의 문제와 환경호르몬 발생에 대한 우려를 말끔히 해소한 제품”이라고 강조했다. 락앤락 김창윤 BM은 “밀폐용기 시장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플라스틱, 유리, 도자기, 스테인리스 등 다양한 소재를 이용해 개발, 판매하고 있으며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소재를 세분화시키고 있다”고 소개했다.
밀폐용기 뿐만이 아니다. 도자기에도 친환경 소재를 접목한 사례가 있다.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친환경 도자기 소재를 사용한 어린이용 식기, ‘키디세트’가 인기”라면서 “도자기 식기는 유리나 플라스틱 소재에 비해 색바램이 덜하고 본차이나 소재로서 아이들의 건강까지 지켜준다”고 말했다. 조리기구도 예외는 아니다.
삼광유리의 프리미엄 쿡웨어 브랜드 ‘셰프토프’는 세라믹 코팅으로 마감한 냄비를 선보였다. 삼광유리 관계자는 “유해물질이 첨가되지 않아 안심할 수 있는 세라믹 코팅을 채택했다”면서 “작은 불에서도 빠른 조리가 가능한 알루미늄 주물 냄비로, 저탄소운동도 실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 등 기능성 재질 제품 인기몰이
진명균 인터파크INT 쿡웨어사업부 팀장은 “기존 주방용품시장은 저가형 브랜드들이 주도했으나, 고객들의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고품질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면서 “주걱, 국자, 뒤지개 등 주방조리기구의 경우에도 예전에는 저가형 스테인리스 류가 판매의 주축이었지만 지금은 실리콘 등 기능성 재질과 함께 미적인 요소를 가미한 제품들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다용도 식기’로는 뭔가 부족하다. 다역(多役)의 감투를 쓰려면 여기에 ‘디자인’이라는 방점이 필요하다. 여자의 마지막 사치는 그릇이라고 했던가. 백색 위주이던 진열대에 ‘꽃단장’을 한 식기들이 여심을 유혹하느라 여념이 없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기존에는 혼수장만을 위해 부모님과 함께 와 자신의 취향보다는 어르신 취향에 맞춰 사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면서 “최근들어서는 고객들이 혼자, 또는 또래인 남편과 함께 오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장의 변화를 식기 업체들은 예리하게 감지, 대응하고 있다. 행남자기 홍보실 조일래 과장은 “결혼을 앞두고도 혼수를 많이 줄이는 추세라 젊은 부부들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직접’ 고른다”면서 “예전에는 옅은 꽃모양이 새겨지는 등 전체적으로 우아한 분위기가 인기였다면, 요즘은 좀 더 화려하고 과감한 디자인을 찾는 고객이 많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도자기 관계자는 “화이트 식기는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반응이 좋으며,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파스텔 계열 식기도 계속해서 인기를 끌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기능적’인 면을 강조했던 밀폐용기 또한 미적인 요소를 강화했다. 락앤락의 ‘비스프리 테이블탑 시리즈’는 소비자들이 밀폐용기를 테이블웨어로도 사용하고자하는 요구를 반영한 제품이다.
은색이나 검은색 일색이던 쿡웨어들도 옅은 옷으로 갈아입는 등 단장을 마쳤다. 화사한 파스텔 톤 컬러로 눈길을 끌고 있는 셰프토프가 그 예다. 셰프토프 관계자에 따르면 눌어붙음 및 물배임 현상을 개선시켰기 때문에 연한 파스텔톤 색상을 입히는 것이 가능했다. 즉, 미학 뒤에 숨은 과학이 있었다는 것이다.
미니인터뷰 | 진명균 인터파크INT 쿡웨어사업부 팀장
“유통구조 축소 합리적 가격 제안”
집에서 요리하는 가구가 늘어남에 따라 주방용품시장이 반색하고 있다. 온라인 주방용품시장은 어떠한가? 이 같은 추세를 실감하는지?
물론이다. 주방전문몰 오픈 이후 인터파크INT의 2011년 12월 매출액 신장률이 전월 대비 462%니 말이다. 주방용품시장이 커짐에도 불구하고 일부 오픈마켓 셀러들의 판매 신뢰도가 취약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품절, 배송, 사후관리, 가격 부분에서 소비자들에게 만족을 주고 싶었다. 주방전문몰은 유통구조 축소로 합리적인 가격을 제안한다. 현재 인터파크에서 판매하고 있는 저렴한 가격, 믿을 수 있는 품질과 서비스 바탕으로 서울시내에 오프라인 전문샵을 오픈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환경 변화에 따라 수요량이 늘고 있는 제품군이 있다면? 또한 꾸준히 또는 새로이 수요량을 확보할 것으로 보이는 제품과 그 이유를 들어 달라.
명품브랜드의 경우, 대부분 고가이므로 젊은 소비자들이 쉽게 구매하기 힘든 구조였다. 따라서 기존에는 대부분 40대 이상 소득수준이 높은 가정에서 구매했다. 허나 전문몰의 경우 직접 병행 매입을 통하여 합리적인 가격으로 고객들에게 선보이고 있으므로 30대 주부고객과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주부들의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
‘실라간’이라는 재질을 이용한 기능성 냄비인 ‘실리트 냄비’는 30~40대 초반 고객이 즐겨 찾는 편이다. 반면 휘슬러 미니냄비3종과 실리트 미니냄비 3종의 경우 싱글족과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가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인기다. 한편, 휘슬러 파인컷의 경우 이유식 및 볶음밥등 야채재료를 손쉽게 커팅할 수 있는 조리도구로 칼로 다지는 불편함을 해소해 모든 주부들에게 인기다.
주방용품이 진화하고 있다. 주방전문몰에서 다루고 있는 제품 중 가장 ‘스마트’한 제품이 있다면?
영국브랜드 조셉조셉(Joseph Joseph)의 ‘엘리베이트 캐러셀 칼라 조리도구 6종 +키친툴 세트’다. 폴리아미드나일로 재질로 만들어져 내열성이 뛰어나고 위생적이며, 소재자체가 부드러워 조리 시 냄비, 후라이팬 등의 표면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실리콘 재질의 핸들은 그립감이 뛰어나며, 컬러풀한 색감으로 주방의 분위기를 한층 더 밝게 해준다.
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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