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가 ‘골드키즈마케팅’ 현장 가보니
한국의 출산율은 약 1.22명(201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1가구에 아이가 1~2명 뿐이다 보니 ‘내 아이만큼은 최고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심리가 키즈 소비 시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다. 27조원에 이르는 키즈시장은 매년 20% 이상 성장해오고 있는 가운데 100만원 이상 높은 가격대의 수입 유모차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프리미엄 브랜드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골드키즈 현상과 유통가의 골드키즈 마케팅을 알아본다.
주부 김희원씨(32)는 최근 갓 돌이 지난 아이 덕분에 용돈이 두둑해졌다. 시아버지께서 손주 분유 값에 보태라며 주는 용돈이 두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정아버지는 외손주를 위해서라면 쉽게 지갑을 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육아용품이 있으면 바로 친정아버지에게 전화한다. 아직 시집을 안 간 이모역시 하나밖에 없는 조카에게는 인심이 후하다.
한 자녀를 위해 지갑을 열어줄 사람이 6명이 있다는 의미의 `식스 포켓(Six Pocket)` 현상이 하나의 사회트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출산율 하락으로 어린이 숫자는 줄고 있지만 부모들의 관심은 되레 커져 부모님 외에도 할머니와 할아버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까지 아이들을 챙긴다. 아이들이 돈을 받는 주머니가 무려 여섯개나 되는 셈이다. ‘식스포켓’이라는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결혼하지 않은 30~40대 ‘골드 미스’ 이모와 고모까지 포함시킨 ‘에잇 포켓(8 pockets)’이라는 마케팅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1가정, 1자녀’라는 국가 차원의 방침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받는 중국의 ‘소황제족’은 이제 남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출산율은 약 1.22명(201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 이처럼 어린이의 수는 줄어들고 있는 데 반해 관련 소비 시장은 쑥쑥 커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0~14세의 영·유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소위 ‘엔젤산업’은 27조원 규모로 수년간 매년 20% 이상 성장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의 인기는 성인시장뿐 아니라 키즈시장에서도 꺾일 줄 모른다. 국내의 유모차 수입액이 지난 2000년 185만달러에서 2010년 3912만달러로 뛰었다는 관세청의 통계자료만 봐도 이러한 현상을 쉽게 엿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100만원이 넘는 유모차가 비싼 가격에도 없어서 못 구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데 탤런트 고소영씨가 구입했다해서 일명 ‘고소영 유모차’ 로 불리는 ‘오르빗’ 유모차는 국내에서 200만원대 팔리며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태리 명품으로 알려진 유모차 브랜드 ‘잉글레시나’는 600만원대 클래식 한정판을 내놓기도 해 그야말로 프리미엄 키즈시장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웬만한 중고차 한대 값이다.
한 유아용품 관계자는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제 명품백 보다 어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지가 더욱 관심사가 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 주요 백화점들의 프리미엄 유아용품 매출 역시 지속되는 불황에 아랑곳없이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 용품만큼은 비싸도 좋은 것을 쓰겠다는 심리가 부모들의 씀씀이를 키우고 있다.
영국의 럭셔리 브랜드 버버리 관계자는 “성인은 물론이고 아동(버버리 칠드런) 매출도 최근 몇 년간 두 자릿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백화점에서 0~3세 유아용 상품 매출은 17.1%, 3~12세 기준 아동 상품군은 18.1% 신장했다. 2010년 1~10월 매출도 유아 상품군이 16.5% 신장할 정도로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명품 등 수입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롯데백화점 본점 기준으로 2007년 아동 수입 브랜드 비중은 23.5%에서 2011년 37.6%로 크게 늘었다.
롯데백화점 본점과 부산본점은 지난 해 4월 ‘구찌 칠드런’을 단독 매장으로 열었다. ‘구찌’의 아동복 라인인 ‘구찌 칠드런’이 독립 매장으로 나온 것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외국에선 ‘구찌’ 매장 한 편에 숍인숍 형태로 운영하지만, 아동복에 대한 소비자 의 높은 관심 때문에 국내에서만 이례적으로 독립매장으로 운영된다. 구찌 칠드런은 개장 첫날 1500만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며 프리미엄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구찌 칠드런’이 단독 매장을 내자 ‘버버리 칠드런’과 ‘랄프로렌 칠드런’ 등 다른 명품 브랜드도 잇달아 아동매장을 독립시켰다. 이들 브랜드 매장의 주말 매출이 일평균 300만~400만원 정도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20만~30만원대의 티셔츠이지만, 100만원대가 넘는 코트를 사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명품 편집숍인 ‘분더숍’의 아동 매장인 ‘분 주니어’를 8층에 개장했다. ‘분 주니어’는 6세부터 12세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주니어 명품숍. 이 매장에선 아동의류와 액세서리, 책, 바이크 등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주요 브랜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의 키즈 브랜드와 ‘익스’ 등이다. 유명 스포츠웨어인 ‘몽클레르’의 아동 브랜드인 ‘몽클레르 앙팡’, 톡톡튀는 디자인으로 사랑받는 ‘디앤지 주니어’ ‘마르니 밤비노’ 등도 주력 브랜드다. 몽클레르 등은 한벌에 수백만원 대 하는 브랜드다.
주니어 옷뿐이 아니다. 신생아의 앞가리개도 30만원대이고 짤랑이 장난감도 티파니의 은제품을 찾고 있다. 돌잔치 때는 한복이 아니라 300만원짜리 드레스를 입히기도 한다. 한편 국산 유아용품의 국내 매출액은 지난 2005년 1조원 달성 이후 정체를 보이고 있고, 수출은 하락세이다. 경기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활황을 이어가고 있는 해외 유아용품 시장과는 비교되는 실정이다.
저출산율과 프리미엄 키즈 열풍의 배경에는 부의 양극화라는 어두운 측면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인구 측면에서나 한 가정 내에서의 존재 가치에 있어서나 아이가 그만큼 ‘귀한 존재’가 됐다는 사실은 엄연한 현실이아닐 수 없다. 하나 둘만 낳아 잘 키우자는 ‘골드 키즈’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도 보다 차별화된 고품질의 국내 유아용품 개발이 시급하다.
이코노믹 리뷰 최원영 기자 uni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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