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부터 베스트셀러까지, 책 읽어주는 라디오가 온다

오는 27일 오전 10시부터 라디오 주파수를 104.5 MHz에 맞추면, 다양한 문학의 낭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EBS는 지난달 2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봄 편성 기자초청 설명회에서 매주 평일 하루 11시간씩 FM 라디오에 독서 관련 프로그램을 편성한다고 밝혔다. 소설, 시나리오, 수필은 물론이고 시와 동화, 전기문, 희곡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문학을 낭독하는 이번 EBS 라디오 편성은 거의 모든 시간대 프로그램을 바꾸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개편”으로 그 취지와 내용, 효과 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BS가 새롭게 시도하는 프로그램은 총 11개로 동화부터 시, 판타지 소설, 고전, 전기문 등 다양한 장르를 포함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 <어른을 위한 동화>를 시작으로 문학 작품을 10분 동안의 드라마로 재구성한 <라디오 문학관>이 10시 50분 이어진다. 현대인에게 시를 낭송해주는 <詩 콘서트>는 11시부터 1시간동안, 낮 12시부터 2시까지는 국내외 유명 단편 소설 등을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 세상>이 방송된다. 판타지와 SF, 추리 소설을 낭독하는 < EBS 판타지아 >는 뒤를 이어 라디오 프라임 타임 중 하나인 오후 2시부터 110분간 방송될 예정이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오후 4시에는 <고전 읽기>가, 목요일과 금요일의 같은 시간에는 <라디오 전기문>이 편성됐다. “한 달 평균 독서량이 0.8권일 정도로 바쁜 현대인을 위해” 베스트셀러를 읽어주는 <화제의 베스트셀러>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후 5시에 청취자를 찾아가며 유명 작가들이 신작을 연재하는 <라디오 연재소설>이 뒤 이어 50분 간 방송된다. 오후 8시부터는 책 관련 정보를 모은 매거진 형태의 < EBS 북카페 >가 방송되고 밤 10시에는 <영미 문학관>이 준비돼 있다. 라디오 진행은 일반인 북 내레이터는 물론 배우와 성우와의 작업 등도 가능하다.

EBS의 뚜렷한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EBS의 이런 개편은 채널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고 경쟁력있는 브랜드를 구축하려는 EBS 목표에서 시작됐다. 김유열 EBS 편성기획부장은 “종합편성채널이 아닌 EBS만의 정체성을 생각해야 했다. 어린이 교육과 다큐멘터리를 주로 방송하는 TV와 달리 FM은 ‘평생 교육’이라는 공익적 목표에 집중하자는 결론이 나왔다”고 말했다. 외국어 교육 전문으로 개편 방향이 논의되기도 했지만 외국어 교육은 인터넷으로 흐름이 넘어갔다고 판단해 평생 교육으로 개편이 결정된 것. 특히 지난 2008년 TV의 봄 개편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은 전면 개편 추진에 큰 몫을 했다. 김유열 편성기획부장은 “2008년 봄부터 밤 9시 이후에는 거의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 이후 지금까지 방송사 이미지나 시청률 모두 좋아 TV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했고 이제 FM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것”이라며 편성의 출발을 설명했다. 지상파 및 케이블의 강세와 종합편성채널 등 다양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EBS는 TV의 경쟁력과 함께 그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선택과 집중을 한 셈이다.

팟캐스트 열풍 등 라디오 매체의 강점은 이러한 개편에 힘을 실어줬다. 김유열 편성기획부장은 “왜 라디오로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느냐”는 질문에 “요즘 현대인들은 인터넷을 하며 일을 하고 동시에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등 매우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한다. 영상은 그런 현대인들에게 많은 집중을 요구하지만 오디오는 현대인들의 생활 패턴에 적합하다”며 라디오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스마트폰 가입자가 크게 늘어 이동을 할 때에도 매체 접근이 쉽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어 “과거 소니가 워크맨을 출시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음악을 듣는 붐이 일었고 애플의 아이팟으로 더욱 편리해졌다”며 “팟캐스트도 영상보다 오디오 형태가 인기를 끈다. 지금까지는 오디오의 콘텐츠가 주로 음악이었는데 팟캐스트 열풍으로 소재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책 만난 라디오, 방송을 넘어 문화계로

책은 이 같은 라디오 매체에 적합하고 평생 교육을 위한 EBS 전략 방향과도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김유열 편성기획부장은 “책은 그 자체로 무궁구진한 콘텐츠이자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기에 라디오 경쟁력도 높여줄 것”이라며 영국 BBC의 사례를 들었다. <해리포터>를 읽어준 라디오의 청취율이 평소보다 3배 늘었다는 것. 김유열 편성기획부장은 “이렇듯 작품 자체가 재밌고 집중도를 높일 수 있는, 너무 어렵지 않은 텍스트를 선별해 낭독을 재밌게 한다면 그 매력만으로도 사람들을 끌 수 있다”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눈으로 읽는 것보다 덜 피곤한 것을 찾는다면 EBS 라디오를 많이 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타지 소설부터 수필, 서간문까지 거의 모든 분야의 문학을 다루는 것도 좋은 책을 좀 더 많이 들려주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라디오로 매력 있는 책을 선별하고, 들려주며 공익과 평생 교육을 실현하려는 셈이다.

특히 평일 오후 7시에 방송되는 <라디오 연재소설>은 유명 작가들이 지면이나 인터넷이 아닌 라디오로 처음 신작을 연재 형식이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은희경의 장편 소설 <태연한 인생>이 낭독될 예정. 또한 <화제의 베스트셀러>에는 김애란의 <두근 두근 내 인생>이, <어른을 위한 동화>에는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이 방송된다. 김유열 편성기획본부장은 “작가들과 출판사들의 관심이 높다. 공지영의 <도가니>처럼 연재 출구가 인터넷에서 한정되지 않고 라디오까지 확산될 것”이라 자신했다. 여기에 오는 7월 20일까지 공모를 받는 < EBS 라디오 문학상 >까지 더해문학계와 EBS 라디오와의 합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예정.

이번 개편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는 장르 불문하고 원작을 그대로 낭독하고 중간에 음악을 트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하지만 < EBS 판타지아 >처럼 읽는 맛이 중요한 프로그램에 효과적으로 청취자에게 다가갈 대안이 없다면 개편 효과는 장담할 수 없다. 김유열 편성기획본부장이 “ 앞으로 모니터링과 청취자의 피드백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유다. 오는 27일 개편이 시작되는 EBS라디오는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가장 오래됐지만, 가장 현신적으로도 변할 수 있는 매체의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사진제공. EBS,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