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누구보다 화려했던 영광을 누렸지만 그라운드를 떠나는 아쉬움만은 막을 수 없었다. ‘반지의 제왕’ 안정환(36)이 14년 간 정들었던 선수생활을 눈물로 마감했다.
안정환은 31일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선수로서 마지막으로 안정환이라는 이름을 불러보는 자리”라며 “지난 14년간의 프로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고 인사를 전했다. 안정환은 준비한 회견문을 몇 줄도 읽지 못한 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안정환이 걸어 온 축구인생은 환희와 좌절이 공존하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지난 1998년 부산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그는 이탈리아 세리에A 페루자와 일본 J리그 시미즈 S펄스, 요코하마 마리노스, FC메츠(프랑스), 뒤스부르크(독일), 중국 다롄 스더 등에서 해외 무대를 두루 경험하며 진가를 나타냈다.
안정환은 “98년에 K리그에 입단해 2011년까지 해외무대를 거치면서 다양한 축구를 경험했다”며 “성공이라면 성공이고 실패라면 실패일 수도 있겠지만 제 인생에 있어 행운이었고 좋았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2002한·일 월드컵을 비롯해 2006년과 2010년 세 차례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 그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가장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2년 당시 미국과의 조별리그 2차전 동점골과 이탈리아와의 16강 연장전 골든골로 축구팬들에게 심장이 터질듯 한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그가 보여준 오노 세리머니와 반지 키스 세리머니는 지금까지도 팬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있다.
안정환은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3번이나 밟았다. 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을 다 경험해서 행복했다”며 “돌이켜보면 2002년에 다 같이 웃을 수 있었고 영광스런 대회에서 뛰면서 사랑받았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화려한 성공만큼이나 굴곡도 많았다. 한 팀에 정착하지 못하고 오랜 방황을 거듭하면서 ‘방랑자’라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발판으로 야심차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블랙번 진출을 노렸지만 ‘워크퍼밋(취업비자)’ 문제로 영입직전에 무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안정환은 “당시 계약서에 사인을 마치고 비행기 티켓과 집까지 구했는데 입단을 못해 많이 힘들었다”며 “아직도 사인용지를 가지고 있는데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종이 한 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의 모습은 후배들에게 본보기로 남았다. 많은 축구팬들은 안정환이 K리그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와 실력에 대한 부담으로 결국 아름다운 마무리를 선택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안정환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부인이 운영하는 화장품 사업을 도울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축구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돕고 싶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안정환은 “예전부터 유소년 축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며 “축구발전을 위해서는 기초가 중요한 만큼 밑에서부터 도움을 주고 싶다”고 계획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축구선수로는 이별일지 모르지만 많은 사랑을 받고 이 자리까지 온 만큼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도록 노력하겠다”며 “평범한 가장과 축구팬으로 돌아가 한국축구를 위해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감사의 인사를 대신했다.
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 sport@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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