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 20년.. '빛과 그림자'](1)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최근 권도엽 국토해양부장관은 "더 이상 신도시를 추가로 건설할 필요성이 없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그 사안의 중대함에도 장관 발언은 찻잔속의 태풍만큼 미약할 정도로 여론의 관심조차 끌지 못했다. 현재 이에 대한 논란과 반성은 아직 유보된 상태다. 또한 성과 및 정책목표가 계획대로 달성했는지에 대한 점검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신도시 건설사업은 주거정책의 핵심이었다.
신도시는 지난 1993년 분당, 일산 등 제1기 5곳을 완료하고, 현재 성남 판교 등 제2기 건설의 한복판에 와 있다. 2기 신도시는 판교 등 총 12곳이다. 2기신도시는 오는 2016년 완공하게 된다. 신도시는 2기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집값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보급률 증가와 수요의 변화로 2기 완료 이후 추가 신도시 건설 욕구가 현저하게 사라질 것"이라며 권장관의 견해에 동의한다. 여기서 1기 완료 후 열병처럼 번졌던 '신도시 반성론'과 같은 논쟁과 고민의 흔적은 적다.
지금 분당 등 1기신도시는 입주한지 20년이 지나 낡은 도시로 전락해가고 있으며 대다수 세입자로 채워져 가고 있다. 그래서 '전세민 도시' 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분당 등 1기 신도시는 리모델링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집주인들은 떠나고, 일부 남아 있는 사람과 세입자들의 미묘한 동거속에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가 옳게 흘러가고 있는지 다시금 돌아볼 시기다.
또한 분당 등 1기 신도시의 리모델링이 불가피하다고할 때 이주 및 비용 등에 대한 기술적 고민도 절실한 상황이다. 이는 추가 신도시 건설 여부보다 앞선 과제일 수 있다. 2기 신도시 건설의 한 복판에서 지금까지 신도시 건설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울 것인지 다시금 돌아보기 위해 1, 2기 신도시의 빛과 그림자를 따라가 봤다.(편집자 주)
목차
1, '꿈과 욕망의 도가니' 분당...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
2, 'U-시티' 판교의 24시
3, 판교 테크노벨리를 가다
4, 제2기 신도시 건설 어디까지 왔나
5, 두개의 반성론과 추가 신도시 건설의 필요성은
6,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사람들이 차를 버리고 뛰기 시작했다. 수확을 끝낸 논바닥을 가로질러 달리다 진창에 발 빠진 사람도 있고 넘어져서 흙투성이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분당 모델하우스로 가는 길마다 사람과 차가 뒤엉켜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사람들은 논두렁, 밭두렁은 물론 길이 아닌 곳으로도 마구 내달렸다. 아이의 손을 놓고 달리는 남자도 보였다. "전쟁통에도 이러지는 않았는데…아이가 깔리기라도 하면 어쩔 판이야…"하고 누군가가 한숨을 토했다"
"모델하우스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안에 들어간 사람은 앞사람 뒷통수만 보면서 그냥 떠밀려 돌아나왔다"
1989년 11월30일. 한 일간지는 분당 서현 일대에 마련된 시범단지 모델하우스 풍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내집마련의 꿈을 안고 신도시로 몰려온 첫 입주자들은 선민의식이 대단했다. 그들은 분당신도시를 일컬어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불렀다. 스스로를 강남사람들과도 다른 부류로 취급했다. 그런 그들은 20여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 분당을 떠났다. 대신 세입자들이 그 자리에 들어와 '전세민도시'로 바꿨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분당 집값은 최초 분양가가 단지별로 3.3㎡ 당 180만∼220만원였으나 최고점이던 2007년 상반기 3.3㎡당 평균시세 2075만원까지 올랐었다. 2011년 4분기 현재 3.3㎡ 당 1772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분양가의 10배에 육박하는 금액으로 매년 일년치 연봉을 거저 얻은 셈이다.
'꿈과 욕망의 도가니' 분당신도시에 남은 사람들과 떠난 사람들은 지금 어떤 표정으로 다가오는지 그들을 만나봤다.
◇ 남은 사람은 = 한솔마을 5단지에 사는 안인규씨(여 52)는 1992년 분당에 첫 입주해 지금까지 산다. 공공아파트 22평. 당시 분양가는 4000여만원이 채 안 됐다. 안씨는 "빚 안 지고 작은 집이라도 장만했으니 신도시 덕 본 셈"이라고 말한다. 지금 시세는 3억6000만원이다. 주변의 같은 평형대보다 4000만∼5000만원 가량 더 비싼 편이다.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어서다. 그녀는 이사 와서 부녀회장도 했다. 지금은 리모델링 조합장 대행이다.
"여긴 주공에서 분양했다. 첫 입주할 당시 주변에 상가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어 옛날 살던 곳으로 가서 장을 봤다. 분당이 자리잡고 나서 살기도 괜찮고 집값이 계속 올라 모두들 좋아했다.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어울려 살다보니 정도 많았다. 하지만 다들 떠났다. 판교로도 가고, 강남으로도 갔다.우리 단지가 첫 입주할 때 와서 지금껏 사는 사람은 1156가구 중 200가구 가량 된다."
한솔 5단지의 경우 현재 자가보유자가 500여가구다. 나머지는 세입자들이다. 즉 300여가구는 집을 팔고 아예 분당을 떠났고, 650여가구는 세를 주고 다른 도시로 세 살러 간 셈이다. 안씨는 "우리 단지는 소형평형 위주의 주공아파트로 대부분 중간에 집을 넓혀 떠났다"며 "분당 집값이 3.3㎡당 최고 2000만원에 육박할 당시에는 용인 등지에 두배 가까이 넓은 집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지금 증축을 포함한 단지 리모델링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안씨는 "개정 건축법상 열평 가량 집을 넓힐 수 있어 3.3㎡ 당 리모델링 비용 350여만원을 감당하고도 수익이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집도 넓히고, 집값도 오르니 더욱 좋은 게 아니냐"는 뜻이다. 리모델링하면 집값이 크게 오를 것이라는 욕망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제 분당에 남은 최초 입주자들은 안씨처럼 낡은 집을 리모델링해야할 상황에 처했다. 다른 단지들도 시간 차이만 있을 뿐 리모델링이 불가피한 형편이다. 현재 조합이 결성된 곳이 두곳, 추진위단계에서 리모델링 관련 법 시행령이 나오기를 지켜보고 있는 곳이 세곳이다, 그들은 새집을 만들어 다시 한번 영화로웠던 시절을 꿈꾸고 있다. 주거 환경 개선과 집값 상승이라는 두개의 욕망이 다시 신도시 곳곳에서 꿈틀거리는 광경은 더욱 기승을 부릴 태세다.
한솔5단지는 지난 20여년동안 950여가구가 1회 이상 손바뀜했다. 중간에 집을 사서 들어왔던 사람들도 절반은 다시 서울로 역류했다. 분당신도시 주민이라는 자부심도 교통난과 자녀 교육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지는 못 한 듯하다. 한솔마을 인근의 K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한솔마을 다른 단지들의 경우도 최초 입주자들이 20% 이하로 2001∼2003년 용인 죽전, 신봉, 동천, 동백지구 분양할 때 1차 이동했다"며 "당시 교통대란,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서울로 역류한 사례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06년 판교 분양에도 많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 떠난 사람은 = 까치 신원마을 최초 입주자였던 정인형씨(남 56)는 2004년 분당아파트를 전세 주고 본래 살던 서울 개포동에 다시 전세를 구해 살았다. 그런 그는 2년전 판교아파트 전매제한이 풀리면서 분당집을 처분했다. 당시 신원마을 103㎡를 6억2000만원에 팔았다.
그리고 판교 백현마을 98㎡를 프리미엄 2억원을 얹어 6억원에 구입했다. 정씨는 "서울로 되돌아갔던 것은 출퇴근과 아이들 교육 때문이었다"며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애들이 지금은 모두 대학을 마쳐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없어 다시 판교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판교는 비슷한 면적이라도 새 아파트인데다 평면이 확장형 발코니로 돼 있어 10평 가량 넓다는 것 때문에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집을 갈아타는 동안의 재테크 성적표는 우수한 편이라고 자찬했다. 까치 신원아파트 분양가는 8000만원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집이 18년 지나서 5억4000만원의 차익을 남긴 셈이다. 판교로 이사한 이후 명목상으론 이익이 더해졌다. 구입 당시 6억원이었던 백현아파트는 현재 시세가 7억∼8억50000만원까지 올랐다. 그는 분당과 판교에서 두번씩이나 신도시 프리미엄을 봤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은퇴하면 아예 판교에서 살 작정이다. 판교는 워낙 자연환경이 좋고, 도시도 산뜻하다. 아직은 편의시설이 부족한 편이다. 하지만 곧 자리잡을 것이다. 집값도 분당보다는 더 오르지 않겠느냐. 지하철이 들어온 뒤로 강남까지 15분내에 들어갈 수 있고 고속도로 진입도 유리해 교통여건이 분당보다 낫다."
그렇다고 모두 정씨처럼 분당을 떠나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박영희씨(여52)는 정씨와 엇갈린 경우다. 미금역 인근의 롯데ㆍ선경아파트 89㎡를 7200여만원에 분양받아 93년에 입주했다. 박씨는 2004년 3억2000만원에 집을 팔아 용인 구성 데시앙 102㎡를 2억4000만원에 구입했다. 당시 이 아파트는 미분양아파트로 주변 사람들도 여럿 함께 입주했다. 하지만 지금 후회막급이다. 현재 데시앙아파트는 2억2000만원대로 떨어졌고, 분당집은 3억6000만원대에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박씨는 "구성은 죽전과 연결돼 있어 편의시설을 이용하기는 큰 불편이 없으나 출퇴근, 교육여건 등의 환경이 분당보다 훨씬 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손실이 컸다. 현재의 집을 팔고 이사가려해도 값 차이가 너무 나서 선뜻 결심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또 "손해봤다는 생각에 한동안 억울한 심정마저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분당을 바라보는 견해는 남은 사람이든 떠난 사람이든 욕망이 내재돼 있다.
◇ 전세민도시 '분당'=이런 저런 연유로 사람들이 떠나고 중간에 들어온 사람들도 대부분 분당에 살지는 않는다. 중대형평형 위주인 까치 신원아파트단지는 중소형 위주인 한솔5단지와 마찬가지로 자가소유자들이 전체 가구수의 절반 이하다. 인근 중개업자는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신원단지의 경우 세입자와 자가보유자의 비율이 6대 4 수준"이라며 "자가보유자 중에서 최초 입주자들도 절반 정도로 보면 20% 정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매촌이나 야탑 일대도 사정은 비슷하다. 단지별로도 이런 비율은 거의 차이가 없다.
이제 분당은 세입자들의 도시로 바꿨다. 20년전 사람들이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러 분당으로 달려왔다면 지금은 신혼부부들의 내집마련 정거장인 셈이다. 분당신도시 주민들의 분화는 두차례에 걸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분당 집값이 횡보하던 초기 몇년동안은 이동이 많지 않았다. 10여년전 용인 동백, 죽전, 신봉ㆍ동천, 신갈ㆍ구갈지구 등의 분양이 집중될 때 새집을 마련, 갈아타기를 시도했다.
분당 정자동에서 입주 초기부터 중개업을 해온 김상돈씨는 "2003∼2004년도에 분당의 주택거래가 가장 활발했으며 주로 인근 택지지구로 많이 옮겨갔다"며 "투자 명목으로 구입해 전세를 주는 경우도 흔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 당시 용인쪽에서 올라오는 출근자들이 많아 분당은 교통지옥으로 변해 서울로 돌아간 사람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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