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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큰 별’ 김근태 하늘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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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일 기자]

‘민주화운동의 큰 별’ 김근태 하늘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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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별이 졌다. 김근태의 깃발은 내려지지만 수백수천만의 가슴 속에 해방의 횃불로 타오른다. 그의 이름은 민주주의, 역사의 심장에 새긴다.'

민주화운동의 큰 별이 30일 새벽 우리의 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민주주의'라는 이인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말처럼 별세한 김 상임고문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산 증인’이다. 민주화운동과 정치개혁에 앞장서며 재야운동과 정치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그는 손학규 전 민주통합당 대표,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총사'로 불렸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 1974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배됐고 1983년에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초대 의장을 역임했다.

민청련 초대 의장이던 1985년 9월, "스스로 죽고 싶었다"고 말할 정도로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 등으로부터 23일 동안 하루 5∼6시간씩 살인적인 고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도 고문자들의 손목시계를 보고 시간을 기억했고, 조서에 날인할 때 얼른 '사법경찰관 ○○○'라고 쓰인 이름을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전기고문으로 발뒤꿈치가 짓이겨져 야구공만 한 딱지가 생기자 이 딱지를 휴지에 싸서 보관해뒀다가 변호인에게 "증거로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고문 실상을 세상에 폭로했다.


이때의 고문 후유증은 평생 그의 건강을 위협했다. 고문 트라우마로 인해 치과에 가서 의자에 반쯤 누운 채로 얼굴을 가리자 고문의 악몽이 떠올라 치료를 받지 않고 바로 뛰쳐나왔다. 파킨슨병과 뇌질환 등 병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다.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해 서울 도봉갑에서 내리 3선(15, 16, 17대 총선)을 했고, 열린우리당 의장과 참여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2002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한 양심 고백을 했다가 유죄 판결(선고유예)을 받는 등 원칙주의자의 길을 걸으며 정치개혁에도 힘썼다.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 달라"며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광주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로의 개혁 후보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했다. 2007년에도 유력한 대선주자로 뽑혔지만 "평화개혁세력의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분주히 거리를 지키며 '민주화운동 대부'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촛불을 들고 YTN 사수와 한미 FTA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했고 올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 해결을 위해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기도 했다. 최근에는 야권 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 상임고문은 지난달 25일 뇌정맥혈전증 판정을 받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이달 10일 치러진 딸 병민 씨(30)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결국 30일 새벽 병을 이기지 못하고 별세했다. 향년 64세.




김종일 기자 live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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