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유리 기자]유럽 재정위기 우려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19일 코스피는 63포인트 급락 마감했다. 시장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대북 리스크는 그간 학습효과를 거친 대로 단기 영향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과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 불확실성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는'의견으로 크게 갈리고 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1년 전인 지난해 11월23일 북한 해안포에서 발사한 포탄이 우리 측 연평도에 떨어지면서 대북 리스크가 불거진 경험이 있다. 당시 전군에는 비상경계 태세가 내려졌으며 과거에 발생했던 북한 핵 실험,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의 악재와 다르게 해안포가 우리나라의 육지에 직접적인 충격을 줬다는 점과 이 과정에서 사상자까지 발생했다는 점에서 대북 악재로 인한 충격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불거졌다.
지난해 사례가 중요한 것은 당시에도 '이번 위기는 이전과 다르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는 점이다. 일년 만에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19일 오전 북한 국방위원장인 김정일 사망소식이 전해지면서 가뜩이나 우울하던 연말 주식시장의 분위기가 냉랭하게 식고 있고, 코스피도 급락했다. 19일 장중 기준으로는 -4% 이상의 '패닉 셀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적어도 주가 측면에서는 지난 십수년간 발생했던 대북 리스크에 따른 충격의 학습효과로 시간이 지날수록 조정의 폭과 기간이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단기적으로는 중립, 장기적으로는 좀 더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일부에서 말하는 "이번은 다르지 않느냐"는 견해에 대해 대북 리스크와 관련해서 가장 잘못된 판단 중 하나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번만은 다르다고 외치는 경우라는 상반된 견해를 제시한다. 연말 장세 분위기가 유럽발 리스크로 냉랭하지만, 대북 리스크까지 확대 해석하면서 불안심리를 증폭시킬 필요는 없다고 판단된다.
◆이선엽·한범호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한 부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인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본다. 이유는 다섯 가지다. 첫째 권력 승계 기간이 짧았다는 우려가 있지만,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전 건강상태를 고려했을 때 예상보다 상당한 승계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 김정은의 나이가 젊다는 것이 분명 불안요소이지만 정치는 나이로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마흔이 넘고 장남이었던 김정남을 두고 새파랗게 젊은 셋째를 후계자로 삼았다는 것은 이런 조치가 더 나은 선택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셋째를 지목하면서 이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셋째 국제적인 신용평가사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인한 국가신용등급 변경 가능성을 일축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권력 승계 과정이 원활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의미가 된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이들의 판단이 부정적이지 않은 것은 매우 중요하다. 넷째 북한이 차분하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사망 이틀 후에 공식화 했는데,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해도 동요가 크지 않을 정도로 내부 통제가 마무리되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다섯째 중국이 든든한 후견인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중국은 북한의 혼란이나 붕괴를 원치 않는다. 지정학적으로 북한을 한국과의 완충지대로 삼아 동북삼성(東北三省)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는 이상 북한의 붕괴나 정치적 혼란을 좌시하기 어렵다.
◆김정훈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 주식시장은 과거 대북 리스크 발생 이후 통상적으로 빠른 반등세를 시현했었다. 단기적으로는 출렁거렸으나 금융시장은 그 이전의 추세로 빠르게 복귀하는 회복력을 보여줬다. 특히 최근에는 수십 년에 걸친 학습 효과와 상대적으로 안정된 남북관계를 바탕으로 북한 리스크의 영향력은 과거 대비 크게 제한적으로 작용했다.
이번에도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복잡한 사안이 얽혀 있어 예단하기가 어렵긴 하지만 북한의 급격한 정세 변화 발생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 코스피의 복원력은 강해질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에 이어 대북 관련 불확실성 고조로 금융시장의 리스크 프리미엄이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겠다. 코스피가 내년 상반기까지 하향 트렌드를 그릴 가능성이 높다는 기존의 시각을 유지한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분석팀장= 갑작스러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발표로 시장에 불확실성이 더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너무 앞서가기보다 불확실성의 장기화에 대비하는 시각이 필요할 때다.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시각에서 공격적인 주식비중 확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위험이 너무 크다는 판단이다. 과거 수차례의 북한 리스크 노출 시점이 주식 비중확대의 기회였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1994년의 김일성 주석 사망 시점과 현 상황과의 유사성을 근거로 빠른 주가 회복을 예상하는 것은 다소 시기상조라고 본다.
김일성 사망 당시와 비교해보면 세 가지 뚜렷한 차이가 발견된다. 글로벌 경기가 활황기였던 1994년과 달리 현 시기는 글로벌 경기 둔화와 유로존 재정 위험이 맞물려 있다. 외환 시장의 구조 차이도 감안해야 한다. 김일성 사망 시점은 시장평균환율(관리변동환율) 제도 하에서 일일 변동폭(0.4%)이 좁고, 외국인 투자자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지 않았다. 북한의 권력 승계 관련 불확실성에도 차이점이 존재한다. 너무 앞서가기보다 불확실성의 장기화에 대비해야 한다. 코스피 1730 이하에서 주식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홍순표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가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은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 비교 가능하다. 그렇지만 과거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 한국 금융시장은 대외 개방 전이었기 때문에 외국인의 코스피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북한 내부의 정권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한다. 이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김정은 체제로 권력 이양이 완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만큼 북한의 새로운 정권 안착 여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내 정치적 불확실성은 코스피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충격에서 단기에 벗어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교란 요인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내부 정치적 변수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단순히 과거 학습효과의 재현 가능성을 겨냥한 적극적인 매수 대응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아직은 단기적으로 낙폭이 과대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추가 하락 리스크가 적은 업종을 중심으로 짧은 수익률 관점에서의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과거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 발생 이후 양호한 수익률을 기록했던 업종으로서 지난 5일 코스피 고점 대비 낙폭이 과대한 운수장비, 은행, 의약품, 화학, 운수창고, 철강금속업 정도에 관심을 가져볼만하다.
김유리 기자 yr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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