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올해의 키워드는 유난히 패션 업계에 기울고 있는 모습이다. 급격한 기후 변화가 있었고 이에 패션 업계의 발 빠른 대응이 눈에 띄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남성 패션의 강진을 제치고 화두로 떠오른 것은 기후 변화로 인한 패션 산업의 지형 변화. 무엇보다 신소재 개발과 환경에 고심하고 있는 패션계다. 패션을 포함한 IT와 뷰티 등의 라이프스타일 이슈, 6개 키워드로 되돌아본다.
지난 2일, 세바시(CBS)의 연속 기획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은 연말 특집 트렌드를 집약했다. 총 6개 주제, 먹거리에서 IT, 패션에 관해 관련 전문가의 강의가 이어졌다. 강의에는 황희승 그루폰코리아 대표, 조수빈 LG패션 R&D 팀장,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원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의 강의를 토대로 ‘트렌드 코리아 2012’를 참고해 2011년을 정리해본다.
#환경의 역습, 패션을 바꾼다
이상기후는 일상기후가 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국내총생산 51%가 날씨 영향을 받으며 국내 산업 80% 가량이 날씨의 영향 아래 있다. 당장 과수 농가가 있고, 건설업이 있고, 유통업계 또한 마찬가지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CEO들을 대상으로 상반기 매출에 가장 큰 타격을 준 것이 무엇이냐 물었더니 44%가 불규칙한 날씨라고 했다. 백화점은 겨울철 기온이 3도만 올라가도 매출이 뚝 떨어진다.”고 조수빈 LG패션 R&D 팀장은 전한다.
2011년 여름 히트상품에 관한 미국의 조사 결과는 ‘아웃도어’다. 물에 빠져도 괜찮은 핸드폰, 아이패드 충격 완화 방지 커버, 비상 충전기 등이 꼽힌다. 일본은 지난 3월 지진 이후 재난 방지 어플이 급속도로 개발됐다. 서초동 어느 고급 빌라는 핵전쟁에도 안전하다는 지하 벙커를 지어 입주자들로부터 환영 받았다.
조수빈 팀장은 “기후 특수다. 패션 업계도 살아남기 위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평소 입지 않던 우비가 더욱 다양하고 화려하게 소개되고 있고 레인 부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여름 폭우 속에서 기능을 발휘하던 레인 부츠는 당시 매출이 3배 이상 뛰었다.”고 전한다. 이어 “옷은 이제 패션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다. 사람들은 옷이 본래의 기능성으로 돌아가 자신을 보호해주길 원한다. 업계는 다양한 소재를 개발하고 있어. 신소재들을 보면 발수성, 내구성, 발열성에 외부 온도를 감지하는 외투처럼 색이 변하는 소재가 등장했다.”고 말한다.
스마트한 소재는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고 전 세계 신소재 섬유시장은 규모가 커지고 있다. 유니클로 히트텍은 지난 해 100만장의 보유고를 완판했고 올해는 그 두 배인 200만장을 계획하고 있다. 조수빈 팀장은 패션 업계의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언급한다. WWF 기구의 스웨터데이는 난방 온도를 3도 낮추고 스웨터를 입자고 제안한다. 리바이스는 염색 공정에서 물의 오염을 막기 위해 특별한 가공법을 개발해 ‘워터리스’ 캠페인을 진행한다.
그녀는 향후 패션업계는 더욱 변화할 것이라 내다봤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발 빠른 움직임들이 기능성도 있지만 그 다음 패션계가 주목해야 할 건 사회적 책임감이다. 옷을 만드는 공정과 캠페인이 아니라 어떻게 진정으로 지구 환경 보호에 앞장설 것인가가 중요해졌다. 앞으로 더욱 진화할 것이라고 본다. 진화할 거라 믿고 있다.”
#먹거리, 식생활을 디자인한다
웰빙푸드를 소개하는 강안종 트루라이프 고문은 우리의 식탁이 행복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느 순간 유기농이 강조되고 백화점 식품 매장 한편에 고가의 유기농 식품 매장이 들어선 요즘이다. 그는 무엇보다 식생활 또한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1년 이내 식품 구입할 때 불안한 경험을 조사한 결과가 있다. 무려 61.5%가 식품 구입에 불안했다고 답했다. 가까운 일본의 원전 사고로 인한 불안감과 원산지가 둔갑하는 중국산 식자재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크다.”고 사태를 진단한다. 그리고 “골고루, 3대 영양소를 공급하는 균형 잡힌 식단이 필요하다. 이걸 알면서도 실행하기 쉽지 않은 이유는 뭘까? 먹거리에 대한 불신, 불안이 우리를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선택할 수 있는 식품이 많지 않다. 게다가 우린 음식에 대해 잘 모른다. 잘 모르니까 관행대로 식단을 꾸려나간다. 어느새 심혈관계에 문제가 찾아온 뒤라야 고치려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식생활을 디자인하기 위해 건강에 기여할 수 있는 식단을 꾸리라고 지적한다. 그러려면 입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고 몸이 우선하는 음식이 답이다. 전문 회사의 지침을 알고 선택해야 하며, 안심 먹거리 기업을 칭찬해야 한다. “박수쳐주고 가치를 인정하고 선택해줘야 그것에 힘을 얻고 매진할 수 있다”고, “올바른 먹거리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소비자가 주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안종 고문은 강조한다.
김난도, 이준영 등이 저술한 ‘트렌드 코리아 2012’는 2012년 키워드로 오가닉에 이은 로가닉을 제시한다. 로가닉은 ‘Raw + Organic’의 합성어로 희귀성이 가미된 천연재료를 뜻한다. 구하기 힘든 재료로 만든 화장품, 커피 믹스에서 한 단계 진일보한 카제인나트륨 없는 커피 믹스, 질을 유지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빵집도 이에 속한다. 또한 저서는 향후 소비자들이 ‘건강에 좋은 성분을 더 많이 첨가한’ 식품보다 ‘건강에 나쁜 성분을 되도록 뺀’ 식품을 더 적극적으로 구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이엔드와 SPA의 공존
명품숍이 도열한 미국의 뉴욕 5번가에는 자라, 유니클로, H&M이 입점해 있다. 까르띠에 앞에 들어선 유니클로. 하이엔드 브랜드와 SPA 브랜드를 동시 소비하는 패턴이다. 미셸 오바마는 중저가 브랜드인 제이크루(J.Crew), H&M을 매칭하고 있다. 하이엔드와 SPA 브랜드가 공존하는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김홍기 패션큐레이터는 이를 과거 현상에서 끌어온다. “패셔니스타란 개념은 이미 오래전에 생겨났다. 아우라를 응축한 패션, ‘룩’이 등장하던 시기. 바로크시대에 이미 계절별로 상품을 쪼개면서 ‘시즌’ 개념이 만들어졌다. 루이 14세가 집권하던 시기, 그는 전국의 장인들을 모아 한곳에 모았고 이들은 왕궁에 제품을 만들어 납품한다. 명품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으로 대립하던 시기, 값이 치솟은 캐시미어 숄은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면서 동시에 가짜가 판을 친다. 지금의 모조품과 다를 바 없다. 백화점이 등장하면서 동시에 천연 염색을 한 의식적 소비, ‘슬로우 패션’도 등장한다.”
가브리엘 샤넬로 대두되던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으로 디자이너가 브랜드를 대체하던 때, 럭셔리 브랜드는 영역을 확장했다. 동시에 저렴한 브랜드가 등장한다. 지금의 SPA 브랜드의 배경이다. 기능적이고 다양한 상품은 10일 가량이면 매장마다 구비한 옷의 구색이 달라진다. 이러한 속도로 어필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로 ‘유니클로’ ‘H&M' '자라’ 등이 있다.
“슬로우패션에서 보면 SPA 브랜드는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그래서 H&M은 ‘지속 가능한 패션’을 테마로 한 적도 있다. 명품을 사는 것이 옳은가, SPA가 옳은가. 이런 것에 관한 도덕적 잣대는 없다. 중요한 건 상이한 이 두 개 방향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의식적 소비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김홍기 패션 큐레이터는 강조한다.
#소셜커머스가 장바구니를 바꾼다
지난 2010년에 시작한 소셜커머스의 당시 시장 매출액은 600억 규모였다. 이후 올해는2월에 3천억이 되더니 11월 말경에는 1조원 이상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상품군도 새로 개업한 레스토랑이나 헤어숍 등에서 스포츠브랜드와 가전제품, 해외여행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2010년과 2011년 온라인 쇼핑몰 순위를 비교했을 때, 올해는 10위권 안에 세 개의 소셜커머스가 새로이 진입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어떠한 이유로 소셜커머스는 성공적일 수 있었을까? 우선 소셜커머스는 중소기업, 영세한 업자들에게 반응이 좋다. TV, 신문은 고사하고 전단을 돌리기에도 고심해야 하는 이들이다. 황희승 그루폰코리아 대표는 “케밥집이 있었다. 먹어보니 맛있어서 상품으로 다뤄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래서 에디터, 컨설턴트, 사진가가 협업해 조율해가며 상품을 등록하고 판매를 시작했다. 점차 그 케밥집이 블로그에 퍼지기 시작했고 기자들에게도 알려졌다. 6개월 만에 체인점 10곳을 열면서 확장했다. 영세한 이들에게 소셜커머스는 잘 활용하면 좋은 광고 플랫폼이다”라고 폭발적인 시장의 반응을 설명했다.
홈쇼핑, 공동구매를 온라인으로 옮겨온 듯한 소셜 커머스는 어떻게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반응을 끌어냈을까. 단지 가격이 저렴해서만은 아니다. 황희승 대표는 설명한다. “경매 업체인 이베이(eBay)가 있었다. 온라인 경매를 야심차게 들여왔지만 국내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어째서일까? 한국 사람들은 급하다. 당장 사야한다. 기다리기 힘들어한다. 그런데 소셜커머스는 당장 구입 가능하고 심지어 저렴하다. 가격 비교 사이트를 다 뒤져서라도 가장 저렴한 것을 찾는데, 소셜 커머스는 그 어느 것보다 저렴하다. 그런데 또 너무 싸면 안 된다. 그런데 이건 무척 저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니까 괜찮다. 다른 이들의 덧글을 신뢰하는 심리도 잘 얽혀 있다.”
그러나 많아진 소셜 커머스 시장이 급속히 증가하자 문제점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못 받는다거나 배송이 오지 않는 사기성 사이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신뢰가 무너지고 있었다. 나빠진 인식을 극복하기 위해 애쓰는 재편성의 시기로 돌입하고 있다. 2012년이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셀러브리티, 가장 강력한 브랜드
2011년을 대표하는 중요 키워드는 '셀러브리티 브랜드(Celebrity Brand)'다. 이미 세계적인 브랜드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 잡은 셀러브리티 브랜드는 유명배우나 연예인, 혹은 아티스트의 이름이나 캐릭터를 상품의 브랜드로 활용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올해는 특히 셀러브리티 브랜드가 한국시장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키워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선 강연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메이크업 아카데미와 화장품 브랜드를 보유한 정샘물 원장이다.
그녀는 개개인이 브랜드가 되는 것으로 이야기를 확장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나만의 차별성을 찾았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녀는 최근 이름을 내건 메이크업 브랜드 ‘뮬(MULE)'을 홈쇼핑에 선보이고 있다. 그녀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는 그녀를 더 확고한 브랜드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셀러브리티 브랜드에는 ’아유미 팩‘이나 개그맨의 술집, 대리운전 등의 브랜드도 포함된다.
셀러브리티(셀렙)는 선택을 종용한다. 대중은 유명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스타를 추종한다. 특히나 1990년대 1세대 아이돌 문화를 접하고 살아온 이들에게는 스타를 추앙하는 것이 낯설지 않다. 콜레보레이션 또한 이러한 연장선상이다. 제일모직 니나리치와 서인영의 콜레보레이션 가방은 한달 만에 동이 났다고 전해진다. CJ오쇼핑은 2009년부터 셀렙샵을 운영하고 있다. 제품의 스타일링 노하우를 전수해준다.
김연아가 입고 등장했던 케이프가 선풍적이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그들의 파급 효과를 가늠할 수 있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를 SNS에 올리며 본의 아니게 제품의 인지도 확보에 한몫 했던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있었다. 전문가는 매체의 변화, SNS의 성장으로 유명인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도 셀러브리티 브랜드에 한 몫 한다고 진단한다. 트렌드세터이자 워너비로 대두되는 그들의 영향력은 2012년의 키워드이기도 하다.
# M, 모빌리티가 판도를 바꾼다
홈플러스 지하철 가상 매장은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모바일, 모빌리티는 생활 지형을 많이 바꿔 놓았다. 태블릿 PC가 가세하면서 일상은 더 많이 달라졌다. 작아진 태블릿 PC를 아날로그 노트 대신 휴대하며 대학 캠퍼스에서는 노트북을 대신하고 있다. 함께 온 이들이 커피숍에 둘러 앉아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도 흔하다. 이러한 사람들을 ‘스마트 아일랜드족(Smart Island)’이라고 한다.
곽동수 한국사이버대학교 교수는 언급한다. “올 초, 조사를 통해 봤는데 스마트폰, SNS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팟캐스트’가 있었다. 지금은 중앙미디어가 모든 걸 쥐고 있던 시대는 지나 시간과 노력을 들여 다운로드해야 하는 방송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꼼수’ ‘가카’ 등의 단어가 등장하면서 어떤가. ‘나는 꼼수다’는 서울에서 대전, 제주까지 전국을 돌며 공연한다. 출퇴근하며 공부도 하고 게임도 해보더니 사람들은 이제 팟캐스트를 듣는 거야. 1200만 가까운 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이들이 팟캐스트를 듣는다”고 진단한다.
‘트렌드 코리아 2012’에서는 이것을 ‘개방성’으로 정리한다. 10월 집계로 350명가량이 사용하는 SNS가 가장 대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매체로 꼽힌다. 자신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위치를 알리는 ‘포스퀘어(foursquare)'의 사용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에 그치지 않고 모빌리티, 기동성으로 인해 시대는 바뀌었다. 장비가 가능한 시대는 성과의 판도를 바꾸어 놓는 데 주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곽동수 교수는 “모빌리티는 자유의 다른 이름이다”라고 말한다.
채정선 기자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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