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현직 법관들이 단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가운데 법조계 안팎에서 진통이 점쳐지고 있다. 이들의 행보를 현직 부장검사가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서면서다. 이 부장검사는 법관들의 태도를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 초헌법적인 발상'으로 규정했다. 법원과 검찰의 해묵은 신경전이 FTA 논란을 타고 짙어지는 분위기다.
김용남(41·연수원 24기) 수원지검 안양지청 부장검사는 4일 검찰 내부게시판에 '법정에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에서 김하늘(43·연수원 22기) 인천지법 부장판사 등이 한미FTA의 부당함을 연구하는 전담팀(TFT)을 법원행정처에 설치하려는 것을 두고 “한미FTA 재협상을 위한 TFT를 법원행정처에 두도록 대법원장에게 청원하겠다는 것은 백번을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김 부장검사는 또 “판사들의 청원은 국가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한 초헌법적인 발상”이라고 강하게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TFT를 법원행정처에 두는 것은) 헌법재판소를 존재 이유가 없는 기관으로 전락시키고, 조약체결권을 가진 대통령과 협상 위임을 받은 외교통상부, 국민들을 판사들의 현명한 결정을 기다리는 법정의 피고인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 부장검사의 말은, 헌법이 규정하는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FTA 문제를 입법과 행정의 고유한 영역으로 봐야 하는데 사법의 주체인 법관들이 이를 어기고 권한을 넘어 불필요하게 간섭을 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법관들이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지난 1일 법원 내부게시판을 통해 FTA TFT 구성을 제안해 동료 법관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시작한 김 부장판사의 글에 현재까지 170여명의 법관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미 청원서 작성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김 부장판사는 이르면 이번주 초에 양승태 대법원장을 만나 TFT 구성을 공식 건의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순수 연구목적이라면 모르되 법원 내에 FTA 연구팀을 마련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난색을 나타냈다. 사법부에 재협상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재판업무에 대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법원행정처의 성격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평이다. 법원 관계자들은 청원의 대상이 양 대법원장과 차한성 법원행정처장 가운데 누가 돼야 할 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