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금융인서 라디오 DJ변신 백만기씨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습으로 나타나는 다른 사람들의 나에 대한 이미지나 흔적, 우리 자신의 처신도 중요하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지금, 나이 50이 된 때다.’
건축가이자 컨설턴트, 작가로 활동 중인 홀거 라이너스는 그의 저서 <남자 나이 50>에서 50살의 나이에 대해 이렇게 속삭였다. 작가는 수많은 오십대들을 만나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오십대를 좀 더 깊이 있게 성찰하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남자 나이 50은 ‘정상’이에요. 홀거 라이너스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CEO 등 고위직에 올랐을 나이라는 뜻이 아니라 걸어 온 길과 걸어갈 길을 바라볼 수 있는 나이라는 말이에요. 산 정상에 오를 때에는 올라가는 것에 급급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주변을 살펴보지도 않지만 정상에 서면 다시 올라왔던 길을 보게 됩니다. 그 때 비로소 어떤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깨우침을 얻게 되지요.”
반듯한 말씨에 낭랑한 목소리. 분당FM 방송국에서 만난 백만기(60)씨는 젊잖게 나이 든 초로의 신사였다. 백씨는 종합금융회사, 저축은행, 창업투자사 등 금융계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금융전문가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금융사의 감사와 고문을 지냈다.
백만기씨는 지난 3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는 라디오방송국의 방송 진행자로 성남아트센터와 하상점자도서관의 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창 바쁘게 일하던 때인 40세에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나이 50이 되면 하던 일(금융)을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것이었다. “벌써 40대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죽을 때까지 사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50살까지만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아예 목표를 그렇게 정한 것이지요.”
그는 40세부터 50세까지 10여 년간 은퇴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책을 읽고 여러 가지를 배웠다.
‘젖은 낙엽’ 55세때 문화에 푹 빠지다
요즘 퇴직하거나 은퇴한 남자를 흔히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퇴직 이후의 인생에 대한 별다른 준비 없이 은퇴한 50∼60대 남편들을 일본어로 ‘누레오찌바’ 즉, ‘젖은 낙엽’이라고 부른데서 연유된 말이다.
“50세에 은퇴를 하겠다는 결심으로 여러 가지 준비를 했습니다. 커피를 배우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전부 커피사업 종사자들이고 저만 금융인이에요. 국민대학에서 목조주택건축도 배웠습니다. 여기 멤버들이 전부 건축 관련 전문인들이었는데 제가 교수님께 질문했었죠. 저 같은 사람도 배울 수 있냐고…. 교수님께서 할 수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렇게 40세부터 준비한 은퇴는 실제로 5년 전인 55세에나 가능했다. 막상 50세에 은퇴할 생각을 하니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직 딸아이가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세 딸의 결혼 문제 등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또 흘러서야 완전히 은퇴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아직 일을 할 나이가 아니냐는 물음에 반색하면서 “제가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응수했다. 일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단지 ‘생업’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사실 그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바쁜 사람이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12월부터 다시 분당FM에서 DJ로 자원봉사 활동을 할 예정이다. 그동안 라디오에서 <동호인클럽>을 3년 정도 맡았고 최근에는 <문화산책>에서 1주일에 한 권씩 좋은 책을 읽어주는 일을 했다. 맹인들을 위한 녹음 봉사도 한다. 하상 점자도서관에서 책을 음성으로 녹음하는 일도 한다.
성남아트센터에서 ‘사랑방 문화클럽’ 활동도 열정적으로 한다. 성남아트센터에서 공연이 있을 때는 가이드 역할도 하고 전단지 홍보 등의 일도 거뜬히 해낸다. 성남아트센터에서 미술관 가이드라는 책을 만들었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전시 가이드북을 기획했다. 다양한 경험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획에서 출판까지 전부 내공 있는 시니어들이다. 콘서트도 하는데 그것도 자원봉사자들이 하고 있다.
지금은 은퇴하거나 일을 하지 않지만 자원봉사자들 중에는 다양한 경험자들이 많다. 지금은 사소한 일까지 봉사를 하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내공을 재능 기부의 형식으로 쏟아낸다면 또 다른 사회공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화클럽연합회 이끌며 재능봉사 앞장
“5년 전 성남아트센터에서 외부 용역을 통해 분당에 예술클럽이 얼마나 있나 조사했더니 1000여개나 된다고 나왔어요. 무응답을 감안하면 3000개 정도로 예상된다고 하더군요. 이 중에서 괜찮은 팀을 선정해 사람들이 모이게 됐어요. 이때 사랑방 문화클럽 연합회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와 초대위원장으로 선정돼 분당방송에서 동호인 클럽을 진행하기도 했지요.”
사랑방 문화클럽에는 음악, 미술, 여행, 문학 등 관련 인사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사람들을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마련해 주는 일도 한다. 분당에는 ‘분당통화’라는 게 있는데 문화공간을 빌려 공연을 하거나 할 때 사용한다. 일종의 자원봉사 재능 티켓 같은 제도다.
“은퇴를 하는 분들께 혼자 하는 취미를 가지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그림도 좋고 음악도 좋아요. 그렇게 혼자 하는 취미를 갖다보면 자연스럽게 동호인들과 어울리게 돼요. 거기서 또 새로운 인연들을 맺게 되는 거지요.”
은퇴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심해지게 마련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맺었던 관계가 서서히 사라지고 단절되면서 더욱 움츠러들게 된다. 집에서 부인과 함께 많은 시간을 같이 하고 싶은데 오히려 집사람은 마치 ‘바깥양반’이나 된 듯이 더 바빠지는 것 같다. 시간 날 때 아이들이랑 애기라도 하려면 어색해 한다.
“이런 일들을 극복하려면 동호회 등 인간관계를 지속적으로 갖는 게 중요해요. 소속감도 생기고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되지요. 사회생활을 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수면 아래로 내리고 주변에서 바라는 대로 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거예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북돋워줘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는 세컨드 라이프를 어떻게 준비하고 영위하고 있을까? “남이 바라는 삶을 자신의 삶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해요. 남이 어떻게 볼까 하는 허례허식을 버려야 합니다. 매스컴을 보니 사람들 대부분이 경조사를 마지못해 간다고 해요. 은퇴자들에게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지요.
사람이 많이 찾아오면 덕이 높은 걸로 착각하잖아요. 경조사 문제를 간소화해야 해요. 지금 경조사 다니는 것을 보면 예전의 품앗이 하고는 전혀 달라요. 남들의 상술에 넘어가지 말고 원하는 삶을 사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는 책에서 읽었다면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날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바로 태어난 날과 왜 태어났는지 자각하는 날이에요. 이 땅에 태어났으면 미력하지만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면 제 2인생을 잘 설계할 수 있을 거예요.”
은퇴를 하는데 아내와 상의는 어떻게 했냐는 물음에 “우리 나이 때에는 가장이 결정하면 그것으로 결정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며 웃음 짓는다. 꼬장꼬장한 서울 샌님의 풍모가 느껴진다.
“은퇴에 대한 충돌은 없었어요.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에요. 최소한의 삶이 보장돼야 할 수 있는 거지요. 가장으로서 평소 검소한 생활을 했고, 열심히 살았어요. 그런데 나이 들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그렇게 비싼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따스한 햇빛, 신선한 공기 등이 더 중요하지요. 명품이나 골프, 특히 고급 술집 드나들기 등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요.” 백만기씨는 “가족이라도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의 다름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인 1명의 지혜는 도서관 하나와 같다”
“틀리다는 게 아니라 다른 거예요. 문화 활동을 하든 자원봉사를 하든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는 게 중요해요. 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이랑 같다고 하잖아요. 지식과 다른 지혜는 다른데 이건 실제 경험하지 않으면 터득할 수 없는 것이거든요.”
그는 세 딸에게 매달 편지(이메일)를 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지혜를 전하는 것과 동시에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것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그는 딸을 출가시킬 때 친구한테도 안 알리고 간소하게 했다. 또 자신이 임종을 해도 주변에 알리지 말고 간소하게 치르라고 아이들에게 말한다. 연명 치료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는 12월 10일 친구들과 간단한 콘서트를 연다. 예전 충무로에 있던 고전음악 감상실 <필하모니>를 본 따서 분당에서 음악공간 <필하모니>를 운영했던 그다. 음악을 하는 딸과 같이 만든 공간에서 여러 가지 콘서트도 기획했고 이철수 판화전 등 미술 전시회도 열었었다.
그런 그가 친구들과 만든 그룹 연주회를 갖는다고 한다. 백씨는 이 연주회에서 드럼을 연주한다. 분당 고기리에 위치한 지인의 별장에서 친한 사람들과 즐기는 음악 발표회다.
이렇게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려면 얼마만큼의 준비를 해야 할까? 은퇴 후 경제 활동은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열심히 일했고,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준비를 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어요. 또 원래 금융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일했다는 자긍심도 있고요.
같이 독서클럽을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함께 사모펀드를 만들었어요. 30년 가까이 금융인으로 살았던 혜택 같은 거지요. 매주 그 친구들과 모여 운영회의도 합니다. 그래도 그 분야 전문가들이잖아요. 그 곳에서 적지 않은 비용을 충당하고 있지요. 현재까지 아주 실적이 좋은 편입니다.”
인터뷰를 하던 날 오랜만에 찾아온 추위 때문에 거리가 한산했다. 분당의 한 거리를 같이 걸으면서 그의 옆모습을 살폈다.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는 어느덧 검은 머리보다 은색의 백발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의 하얀 와이셔츠에 매달린 파란색 넥타이는 여전히 ‘나 아직 청춘이야’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코노믹 리뷰 한상오 기자 hanso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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