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맞춤의 고집 장미라사, 이영원 대표이사를 만났다
[아시아경제 채정선 기자]
어느덧 50여 년. 국내 맞춤 양복점 역사이자 현재인 장미라사를 이끌고 있는 이영원 대표를 만났다. 이영원 대표는 백과사전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패션, 클래식, 명품, 문화에 대해 완벽하고 쉬운 언어로 얘기해주었다. "장미라사 옷이 아니면 안된다"는 신사의 고집을 비로소 이해하겠다.
국내 남성복 역사는 장미라사 탄생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장미라사의 역사는 1956년 삼성 그룹 창시자인 故 이병철 회장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주)제일모직 양복에 대한 테일러링 테스트를 위한 부서에서 출발했으며 삼성과 제일모직의 상징인 '장미'를 애칭으로 장미라사로 불렸다. 이후 1970년대부터는 독자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제일모직에서 독립, 현재의 이영원 사장이 대표 이사가 되면서 글로벌화를 시작했다. 현재는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EAST에 국내 신사복 유일의 명품으로 선정되어 지점을 설립했다. 지금까지 50여 년간 최고급 핸드메이드 맞춤 브랜드로 인정받으며 최근에는 젊은 층도 즐기는 핸드메이드 맞춤복으로 자리 잡았다.
패션은 '옷'보다 '문화'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그랬다. “패션을 너무 강조하지 말라”고. 옷에서 멀어지라고도 했다. 패션은 생활이다. 이영원 대표는 아르마니의 말에 호응한다.
“패션은 옷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더 생활에, 문화에 뿌리 내린 시각을 가져야 한다. 같은 의미에서 클래식이 ‘균형’이라는 것도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클래식은 파르테논 신전이 있던 시기에 완성된 것이라 해도 좋다. 그때가 황금 비율이 완성된 시기 아닌가. 클래식은 ‘균형’이다. 한마디 더 보태자면 ‘우아함’이다.”
캐주얼도 ‘균형’이 중요하다. ‘슈트’라는 것이 딱딱한 정장의 이미지인 것도 아니다. 슈트는 헌팅 재킷, 시티 재킷 등으로 진화해왔다. 게다가 테일러 재킷은 이제 여성의 것이기도 하다. 클래식이 슈트와 동일하게 사용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맞춤은 ‘추구하는' 것이다
장미라사 본사는 태평로 삼성생명빌딩 내에 있다. 이영원 대표는 최근 층수를 옮기면서 이곳을 사무실과 매장이 맞닿아 있도록 꾸며 놓았다. 한편으론 갤러리 같기도 한 이곳. 그는 테일러 문화와 연관해 설명했다. “쇼핑도 문화생활 공간으로 들어와야 한다. 쇼핑은 기본, 갤러리나 카페의 역할을 해야 한다. 비스포크는(맞춤 양복) ‘같이 만드는 것’이지 맞춰주는 옷이 아니다. ‘추구하는’ 것이다. 좋은 질의 옷을 오직 한 벌 만들어 입되,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만드는 과정도 입는 과정의 일부다.”
비스포크는 참여하는 옷이기에 평가할 수도 없다고 했다. 때론 이해가 되지 않는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고객을 응대하는 패턴 장인은 최소 10년의 숙련 기간이 필요하다.
“패턴 장인은 오랜 경험을 요하기에 인력이 많지 않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로 장미라사는 일정 규모 이상 키워나갈 수 없다. 바느질과 패턴 이상의 것, ‘철학’을 요하는 일이다. 꾸준한 노력과 사람에 대한 흥미는 기본이다. 다섯 번 가량 장미라사 기술자들과 아테네에 방문했었다. 골격에 대한 아름다움은 실제 느껴야 아는 것이니까. 자연과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보고 컬러 감각을 키우고, 현대 미술을 보면서 구성을 배우고. 끊임 없는 과정의 연속이다.”
30대, 남성 패션 시장의 중심이 되다
현재 장미라사의 고객층은 30대가 주축이다. 급격한 변화라고 했다. 이영원 대표의 말에 따르면 지금의 40~50대 남성들은 옷을 잘 모른다. 중년이라 불리는 남성들 대부분은 아내가 챙겨주는 그대로 입고 옷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세대다. 월급을 ‘봉투’로 받아 현금을 운용하던 남성들은 그나마 나았다. 온라인으로 전향하면서 온전히 아내의 몫, 그래서 이 세대는 남성복도 여성이 주 타깃이다.
30대는 남녀가 함께 돈을 번다. 이것은 남성들이 패션을 주장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이들은 자기 스타일을 완성하고 싶어 한다. 20대는 컴퓨터로 ‘소통’한다. 서로 비교하고 외형에 더 많은 공을 들인다. 재미있는 건, 20대가 더욱 본질을 요구 한다는 것. 클래식과 가장 맞닿은 세대라고 한다.
“30대는 명품에 대한 개념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 더욱 고급스럽고 또 전문화되어 있다. 최근 남성 패션의 추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하이엔드 시장이 살아남을 것이다. 일본이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역시 SPA와 하이엔드의 양분화인 것이다.”
20대가 30대에 비해 클래식을 갈망한다는 관망이 흥미롭다. 이영원 장미라사 대표이사는 말미에 장미라사의 부산점 오픈 소식을 알려왔다. 부산점과 갤러리아 백화점, 그리고 본점. 이렇게 세 개의 매장 구성을 끝으로 더는 추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50여년 한결같은 브랜드, 그 비결 역시 클래식이다.
채정선 기자 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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