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뭐하는 잡배들이냐! 그들의 깜짝 등장에 프라운 쏘시지의 홍보 담당자는 이렇게 외쳤다. 아마 독자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얘... 얘네 뭐야, 무서워.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 (이하 <질풍기획>)의 프롤로그는 기뉴 특전대를 연상시키는 포즈를 잡은 질풍기획 제3기획팀 멤버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하지만 코믹 만화로서의 첫 인상이 강렬했던 만큼, ‘오늘을 사는 우리네의 질풍 같은 이야기’라는 작가의 소개는 그냥 하는 말이거나, 허세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이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과소평가였는지 확인하는데 몇 주 동안의 에피소드면 충분했다.
“데뷔 석 달 전만 해도 만화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느닷없이 연재를 시작하게 됐고,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간 거래)로서 겪은 이야기뿐이었어요.” 광고 제작사에 다니던, 만화 속 광고주의 ‘을’인 질풍기획에게조차도 ‘을’인 셈이었던 이현민 작가는 개그 만화의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대부분의 갈등 요소를 실제 직장 생활에서 가져온다. 가령 ‘복수열전’ 에피소드에서 송 대리의 커피에 설탕을 아주 조금 더 넣고 당뇨와 합병증을 기대하는 병철의 소심한 복수극 속에서도, 네모 칸을 삐져나온 글자에 대한 ‘갈굼’ 같은 부분은 놀랄 만큼 디테일하다. 과장된 액션과 말투, 지극히 코믹한 설정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주말 철야 작업 중 어디 가느냐는 부하 직원의 말에 “집. 이딴 건 인생이 아니야”라는 부장의 말에는 600만 직장인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르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어른의 의무를 다해야하지만 사실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는 내 또래의 직장인들만이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해보자는 게 유일한 기획”이었다는 이현민 작가의 의도만큼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성실한 직장인들은 이미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힘내라는 응원은 불필요할 것 같다”고 하지만 이미 그의 만화는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직장인들에게 아주 잠깐이지만 일상을 이겨내는 진통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만화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열혈이 필요할 때 듣는 음악’을 추천해주었다. 이 곡들과 함께 오늘 하루도 마음 속 열혈을 불태울 수 있길.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도, 마트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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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정석의 <쾌걸 근육맨 2세 OST>
이현민 작가가 추천한 첫 번째 곡은 제목부터 열혈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질풍기획’과도 비슷한 이름의 ‘질풍가도’다. “애니메이션 <쾌걸 근육맨 2세>의 국내판 오프닝곡이에요. 비록 국내에선 만화주제가를 그다지 높게 평가해주지 않지만 이 노래만큼은 조금 예외입니다. ‘힘내겠어!’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힘찬 멜로디로 표현한 곡이라 각종 스포츠의 응원가로 자주 사용되고 있는 명곡이에요. 힘찬 장면을 그려야 하는데 영 기분이 안 나는 순간, 이 곡이 힘이 됩니다. ‘질풍기획’이 애니메이션으로 나오면 이런 풍의 주제가가 흘렀으면 좋겠네요.” 이현민 작가의 말대로 스포츠 응원가로 자주 쓰이기 때문에 들으면 ‘아, 바로 이 곡!’이라 할, 유정석의 시원한 고음 보컬이 인상적인 곡이다.
2. Korpiklaani의 < Karkelo >
‘보드카에 만땅 취한 마초들이 신이 나서는 뭐라고 뭐라고 미친 듯 술주정하는 노래’. 핀란드 메탈 밴드 코피클라니의 ‘Vodka’에 대해 이보다 정확한 설명이 있을까. 실제로 술을 마시고 부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믿을 만큼 거칠면서도 신나게 불러대는 곡이다. 전통 춤곡을 편곡한 연주곡 ‘Moon Dance’를 들려줬던 나이트위시(Nightwish)처럼 핀란드 메탈 밴드들은 전통 음악을 재해석해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코피클라니는 그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중세 농민의 이미지까지 차용하는 밴드다. ‘Vodka’를 비롯해 당장 중세의 마을 축제에서 사용해도 좋을 것 같은 곡들이 많다. “재미있는 가사도 좋지만 주체가 안 되는 에너지를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편곡과 보컬이 일품입니다. 정작 저는 술 한 잔만 마셔도 기진맥진해서 쓰러지지만요.”
3. Michael Kiske의 < Readiness To Sacrific >
“힘을 쏟아내는 류의 음악은 아니지만 긍정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곡”이라고 추천한 세 번째 곡은 ‘Watch Your Blue’다. “힘들고 지치지만 그래도 다시 펜을 잡을 때의 기분이 음악으로 표현된다면 이른 느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문제는 이 곡의 가사 내용은 전혀 모르고 듣고 있다는 점인데 그냥 좋은 내용이었으면 좋겠네요. 헬로윈(Helloween)의 보컬이었던 마이클 키스케가 불렀습니다. 굉장한 실력에 비해 국내에선 아는 분이 드무네요.” 이현민 작가는 아는 이가 드물다고 했지만 아마 헬로윈의 ‘A Tale That Wasn't Right’의 그 부분 ‘In My Heart, In My Soul’의 고음 파트는 거의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그 노래를 심지어 십대에 소화했던 게 바로 마이클 키스케다.
4. Helloween의 <7 Sinners>
이현민 작가는 열혈이란 주제에 맞게 록킹한 넘버들을 많이 추천해줬는데 이 곡 헬로윈의 ‘Are You Metal’은 코피클라니의 곡과 함께 대놓고 두들기는 헤비메탈 넘버다. “금속성 느낌의 강렬한 키보드와 거친 보컬의 음색이 매력적인 곡입니다. 가사는 뭔가 좀 웃기네요. ‘너 메탈이니? 너 메탈이니? 너 그러니?’ 이게 무슨 소린가 싶지만 어차피 영어니까 접어두고 음악에만 집중합니다.” 앞서 마이클 키스케를 추천하기도 했지만 키스케가 탈퇴하던 시기의 헬로윈은 원년 멤버이자 리더였던 기타리스트 카이 한센(Kai Hansen)도 탈퇴한 상태라 굉장한 위기였다. 그럼에도 헬로윈은 현재의 보컬 앤디 데리스(Andi Deris)와 함께 과거의 헬로윈과는 또 다른 색깔로 여전히 짱짱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 곡 ‘Are You Metal’에서 지금 헬로윈의 심포닉하면서도 거친 사운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5. 드렁큰타이거의 <하나하면 너와나 (One Is Not A Lonely Word)>
“열혈이라기보다 슬픈 음악이지만 ‘열혈 개그’의 한 장면으로 친다면 이보다 적합한 노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5000원을 향한 절규가 가슴을 찢어버리죠.” 마지막 곡은 드렁큰타이거의 ‘가수지망생 1. (5000원)’이다. 돈이라고는 주머니에 든 5000원이 전부인데 1500원짜리 담배를 사고 500원밖에 거슬러 받지 못한 가수지망생의 이야기를 담은 이 곡은, 가사 그대로 가슴 찢어지는 사연을 담은 곡이지만 이현민 작가의 말대로 ‘열혈 개그’에 속할 만한, 웃지도 울지도 못할 페이소스 넘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5000원’을 절규하며 무한 반복하는 파트에서 느껴지는 미련과 집착은 <하이킥 3> 같은 시트콤에서 활용해도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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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질풍기획’이 일부 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만 어필하는 만화가 되었다 해도 그것이 한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분들을 대변해주고 그분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면 그 필드에서는 최고의 만화로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깔끔한 작화와 때론 황당무계할 정도의 개그로 이미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질풍기획’이지만, 역시 가장 힘을 얻을 때는 ‘집으로!’ 에피소드처럼 일과 사생활에서 갈등하며 결국 자신의 업무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뚝심 있게 그려낼 때다. 만약 의도된 개그보다 그 공감의 진폭에 울고 웃는 이들이라면 이현민 작가의 다음과 같은 포부는 너무나 반가울 것이다. “‘질풍기획’은 일부러 사회적인 비판을 최대한 피하고 있어요. 가벼운 분위기의 만화니까요. 하지만 다음엔 좀 더 필사적이고 좀 더 오버하고 좀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새로운 질풍,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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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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