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헬로비전 지상파 재송신 불허 판결 그 이후
마침내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면에 나섰다. 법원이 CJ헬로비전을 상대로 한 지상파 방송 3사의 간접광고 이행 요구를 받아들여 디지털 신규 가입자 대상의 지상파 재송신을 불허한 지 14일 만이다. ‘재송신’을 둘러싼 케이블과 지상파 진영 간 힘겨루기가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난달 28일, 서울고등법원 제5민사부는 지난 7월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가 CJ헬로비전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등 침해중지 가처분 소송’ 판결에서 원고가 주장한 간접강제 신청을 받아들였다.
판결문 송달 이후 CJ헬로비전은 디지털 신규 가입자에게 지상파 방송을 재송신할 수 없으며, 위반 시 하루 1억 5000만원씩을 지상파 방송사에 지불토록 했다. CJ헬로비전을 비롯, 케이블 진영이 즉각 반발했고 방통위는 급기야 지난 10일 양측에 ‘권고문’ 형태로 엄포를 놓기에 이르렀다.
방통위 “23일까지 타결 안되면 행정조치” 통첩
방통위는 권고문을 통해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유선방송사(SO) 양측에 이달 23일까지 재송신 대가산정 협상을 타결토록 적극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시청자 권익이 침해되는 상황이 올 경우 가능한 모든 법적, 행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했다. 이를 위해 방통위는 이날 예정에 없던 위원 긴급 간담회도 열었다.
양측 합의를 강제하기 위해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사의 방송발전기금 산정 시 기준이 되는 광고 매출액을 재송신료 수입을 포함한 총매출액으로 변경하는 방안 ▲케이블방송에서 지상파 채널 변경 시 지상파 방송사의 동의 절차를 폐지하는 방안 ▲케이블 방송사의 자사 광고 시간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방안 등 다양한 조치를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11월 23일’은 지난 8월부터 3개월 시한으로 방통위와 지상파 방송사, 종합유선방송사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재송신 대가산정 실무협의회’(이하 대가산정협의회) 운영기간 종료일이다. 대가산정협의회는 이날까지 지상파 재전송 중단 등을 유예키로 합의한 바 있다. 지난 3일, 법원 판결 이후 첫 협의회가 열렸지만, 각 주체 간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방통위 브리핑에서 김준상 방송정책국장은 ‘방통위의 법적, 행정적 조치’를 언급한 이유에 대해 “SO나 지상파 양측이 재전송 협상을 하면서 이러한 조치들이 자기들에게 어떤 이익과 손실을 가져다 줄지 미리 계산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오는 23일 타결을 강제하기 위한 방안인 셈이다.
법원 판결 이후 당사자인 CJ헬로비전은 물론, 케이블 진영은 한 목소리로 유감의 뜻을 표했다. CJ헬로비전에 따르면, 이번 법원 판결은 지상파 진영이 기존 간접 강제 범위를 ‘디지털 신규 가입자’로 축소해 업계 1위인 CJ헬로비전을 타깃으로 소송을 건데 따른 결과물이다. 지상파 재전송 관련 지상파 방송사의 저작권 인정 요구는 지난 2008년부터 제기돼 왔던 이슈로, 2심까지 진행된 본안 소송은 현재 대법원 소송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와 관련, CJ헬로비전 관계자는 “이번 CJ에 대한 간접강제 판결은 케이블 업계 전체 문제로 공동 대응에 나설 사안”이라며 “최악의 경우, 범법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규 영업을 안 하든지, 벌금 내면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신규 가입자만 지상파 재전송을 안 하는 기술적 방법을 찾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신규와 기존 가입자의 구분 송출이 어려운 기술적 한계로 기존 가입자도 재송신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법원에도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KCTA)도 당일 “매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당시 협회 관계자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 당장 법원 판결이 강제되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판을 깨지 않겠다’는 대가산정협의회의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협의체 최종일인 이달 23일까지 양측이 최선을 다해 합의점을 마련해달라는 방통위 요구에도 이같은 의중이 담겨 있다.
양 진영 셈법 달라 ‘가이드라인’ 만들기 진통
이러한 지상파 진영의 거듭되는 강공은 올해 초 스카이라이프를 상대로 한 ‘승리’의 연장선이라는 분석이 많다. 당시 MBC와 SBS는 콘텐츠 저작권을 인정하라며 KT 스카이라이프를 상대로 송출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둠으로써 지금까지의 가입자당 요금(CPS: Cost Per Subscriber) 지불 등 요구를 관철시킨 바 있다.
이때 스카이라이프와 MBC-SBS 간 재송신 대가 협상이 결렬되면서 HD방송이 MBC는 6일간, SBS는 48일간 중단됐다. 이로 인해 HD 셋톱박스를 설치한 수도권 가입자 약 45만명이 지상파 방송을 못 보는 사태가 벌어졌다.
케이블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초 스카이라이프를 상대로 협상을 타결 지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다음 타깃을 케이블로 삼은 것”이라며, “케이블 다음에는 IPTV 등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공략이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처럼 케이블-지상파 진영간 시청자를 볼모로 한 이해다툼이 타결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대가산정협의회의 활약 여부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기존 합의에 따라 일단 법원 판결 적용이 유예된 현 상황에서, 협의체가 어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향후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방통위 김준상 국장은 “재판부의 간접강제 인용이라는 상황변화가 있더라도 일단 대가산정협의회가 합의한 23일까지는 재송신 협상, 실무협의회 운영에 적극 참여해 기본적으로 자율 협의를 통해 타결을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지상파 재전송과 관련, 위성방송에 이어 이번 케이블 논란에서도 방통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브리핑을 통한 방통위의 공개적인 권고문 발표 역시 책임회피성 측면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만큼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어 여론의 힘을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실제 이날 방통위 브리핑 직후 양측은 날선 성명서 공방을 펼쳤다. 한국방송협회 방송통신융합특별위원회는 “CJ헬로비전은 국민을 볼모로 한 협박을 중단하고, 재송신료 협상에 성실히 임하라”고 촉구했으며, 이에 KCTA는 “재전송 중단을 요구하는 건 지상파 3사”라며, “지상파측은 이행금 집행 절차를 11월 23일까지 유예하지만, 재송신 대가지급에 상호 합의하지 못할 경우 무효로 하겠다는 대답을 했다”고 주장했다.
케이블 입장에서는 최악의 경우, 광고 송출 중단이나 지상파 재전송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KCTA는 “법원 판결에 근거해 지상파측이 간접강제 집행에 나선다면 재전송 중단 등 필요한 조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못박았다.
방통위는 현재의 대립에도 불구, 낙관적인 기대도 내비쳤다. 양측이 나름대로의 대가를 가지고 논의를 진행 중인 상태로, 이는 케이블 입장에서도 지상파 저작권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게 방통위 설명이다. 김 국장은 “방통위의 강한 권고, 시청자 권리 등이 있어 양측이 23일을 넘겨 파국으로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코노믹 리뷰 박영주 기자 yjpa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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