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백화점 수수료 인하 완승 일등공신
[아시아경제 박현준 기자] 8일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기자회견실. 지철호 공정위 기업협력국장이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지 국장은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롯데, 현대, 신세계 등 3개 백화점이 중소납품업체 1054곳의 판매수수료를 10월분부터 소급해 3~7%p 인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두 달여를 끌어온 공정위와 대형 백화점의 판매수수료 인하전쟁이 공정위의 압승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공정위와 3대 백화점간의 갈등은 지난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정위원장이 백화점 업계 사장단을 만난 이후, 백화점업계는 "중소납품업체에게서 받는 판매수수료를 내리겠다"고 발표했다. 지철호 국장은 그러나 "당시 백화점 업계가 들고온 판매수수료 인하안에는 알맹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600~800곳이나 되는 중소납품업체 가운데 단 30곳만 선정해 판매수수료를 내리겠다고 하거나 행동계획을 아예 제출하지 않은 백화점도 있었다. 그 때부터 공정위와 백화점업계간에 판매수수료 인하안을 두고 '내린다''못내린다''좀 더 내려라' 등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다.
급기야 10월초에는 백화점 업계 대표들이 항의 표시로 동시에 해외로 출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공정위는 곧바로 명품업체 판매수수료에 전격 조사에 들어갔다. 명품업체 판매수수료에 대한 조사를 지철호 국장이 진두지휘했다. 이어 지 국장은 백화점들이 중소납품업체의 매출 절반 가량을 직원판촉비와 인테리어비 명목 등의 부당한 방법으로 떼어간다는 내용도 언론에 슬쩍 흘렸다. 역시 백화점업계에 대한 압박용이었다.
결국 백화점 업계는 백기 항복했다. 지 국장은 "판매수수료 인하는 유통분야 동반성장을 위한 첫걸음의 의미가 있다"면서 "즉시 시행하도록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공정위 안팎에서는 "돌쇠가 백화점을 꺾었다"고 표현했다. 우직하게 밀어붙인 지 국장이 유통업계의 공룡 백화점업계의 백기투항을 유도했다는 것이다.
지 국장은 관련 기업들 사이에서는 '저격수'로 통한다. 신세계 이마트가 2006년 월마트 인수를 조건부로 허용한 공정위의 결정에 반발하자, 개인 블로그에 '요구르트 경제학'이란 제목으로 이마트의 가격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며 논전을 펼치기도 했다.
10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교복값 담합 적발, 6600억원의 과징금을 물린 LPG값 담합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들 사이에선 "얼마나 잘 되는지 두고보자"는 협박성 발언도 나오고 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지 국장은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1986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실 단체과에서 첫 근무를 시작한 이래 줄곧 공정거래 업무를 맡고 있다. 이후 기업결합팀장, 독점감시팀장, 대변인, 카르텔 조사국장, 경쟁정책국장 등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치면서 '독과점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 지철호 국장의 과제는 이번 판매수수료 인하를 더욱 내실있게 다지는 것이다. 그는 "가매출(장부상 매출을 부풀려 판매수수료를 더 받아가는 방법)이나 상품권 구입 강요 등 백화점 업계의 불공정행위를 고발하는 '핫라인'을 설치하겠다"면서 "납품업체와 업종별 간담회를 수시로 열겠다"고 말했다.
박현준 기자 hjun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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