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野心'은 딴데 있다..야권통합 챙길 호기로
[아시아경제 김달중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대한 민주당의 입장이 '갈지자'다.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시절과 야당이 된 민주당 시절과 큰 차이를 보이고 있고, 야당 시절에서조차 당론은 꾸준히 변경됐다. 전략이 바뀌다보니 전술도 뒤엉켜버렸다.
18대 총선 직전인 대통합민주신당 간판을 달았던 민주당의 한미 FTA에 대한 뚜렷한 당론은 없었다. 정세균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서야 '선(先) 대책, 후(後) 비준'으로 정리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피해산업에 대한 대책마련이 충분하면 비준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 재협상을 완료하자 "이익의 균형이 깨졌다"며 비준 거부로 돌아섰다. '9+2' 선결조건을 내세우며 재재협상을 요구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 선결조건에 지금 논란이 된 투자자-국가소송제(ISD)가 해소되어야 할 독소조항으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밤늦게까지 이뤄진 여야 원내대표 합의에서 민주당이 요구해온 FTA 대책안 가운데 상당수를 한나라당이 수용했다. 남은 쟁점은 ISD에 대한 문제뿐이다. 민주당은 점심을 거른 채 진행된 의원총회에서 한미 FTA 발효 후 3개월 내에 ISD 부분을 다시 협상한다는 내용의 여야 원내대표 합의안을 거부키로 했다. 협상안이 타결된 지 반나절 만에 여야 원내대표의 서명이 들어간 종이는 휴지통으로 직행했다.
정동영 최고위원은 "참여정부에서 FTA를 체결한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면서 "외교통상부 통상관료들이 대통령과 여당을 속이고 나라를 사실상 팔아넘겼다"고 주장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김동철 의원은 "2007년에는 ISD 전문가가 없어서 잘 몰랐다"고 해명했다. ISD 도입은 이명박 정부가 아닌 참여정부에서 했다는 점에서 책임 논란을 비껴가기 위한 '고육직책'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당의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참여정부에서 FTA를 체결할 때 논란이 됐던 부분이 ISD 제도였다. 17대 국회 당시 열린우리당이 주도했던 한미 FTA 체결대책특위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뿐만 아니라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 등은 ISD에 대해 "'주권침해'가 우려된다"면서 체결 전 이 조항의 삭제를 요구했었다. 2006년 6월에 첫 회의를 열었던 특위는 다음해 12월 대선 직전까지 28차례에 걸쳐 매번 회의에 ISD가 언급될 정도로 핵심 쟁점사안이었다. 정부 관계자를 비롯해 각계 변호사와 통상 전문가들이 FTA특위에 참고인으로 나왔다. 전문가가 없거나 정보가 불충분했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어 보인다.
참여정부도 이같은 정치권의 우려에 2006년 8월 말 전문가들로 구성된 테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고 ISD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ISD가 우리 정부의 부동산 및 조세 정책에 미국 투자자들의 제소가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참여정부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ISD를 도입했음에도 1건도 피소되지 않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 이후 13년간 중재판정부에 의한 '간접수용'이 인정된 사례는 멕시코정부의 불합리한 규제로 인한 '메탈클래드 사건' 1건에 불과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한미 FTA 체결 직후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ISD에 대해 "양국정부가 상대방 투자자를 자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해 주기로 약속해 놓고도 상대방 투자자를 차별할 경우 등에 대비해 투자자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한 합리적인 제도"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마치 한미 FTA를 체결하면서 국가가 독소조항을 삽입한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진보정당과 한미 FTA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일축하기도 했다.
민주당 내에서는 "ISD 문제를 고집하다보니 전 정부의 외교부 책임으로 돌리게 되는데, 결국 이는 청와대와 대통령 책임과 무관치 않다"며 현실적인 타협론이 나오고 있다. 대책마련이 충분하다면 무조건 거부보다 적절한 타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ISD를 17ㆍ18대 국회에서 꾸준히 지적해왔다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참여정부 체결 당시 국무위원 출신들이 지도부에 포진해 있어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김달중 기자 d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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