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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딸깍발이]아저씨와 위대한 '타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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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남산딸깍발이]아저씨와 위대한 '타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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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앞산에 고단하고도 우울한 소나무 세그루가 서 있다. 내 고향마을은 차령정맥의 배면이 성벽처럼 동남서로 길게 둘러져 있다. 또 정맥에서 물방울처럼 튕겨져 이어질 듯 말듯 떨어져 나온 산 하나가 있다. 해발 290m로 지도상에도 표시되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조차 없는 산이다. 금대산. 그저 앞산으로 불렸다. 차령은 앞산을 기준으로 보면 동편 봉화산과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의 가야산으로 이어지고 다시 서편의 홍성, 해미로 치달으며 '내포'를 이룬다.


앞산에선 아스란히 대산과 외목, 대호방조제, 가로림만과 리아스식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봉우리는 쪼개진 큰 바위 몇개로 이뤄져 있으며 서편 능선은 완만하게 흘러내리다가 곱등처럼 봉곳히 솟은 자리를 하나 만들고 푹 꺼졌다. 거기엔 금잔디 덮힌 무덤과 수백년된 낙락장송 세그루가 옹위하고 있다. 아름드리 장송은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 자태란 ? 언제나 마을을 굽어보며 그윽한 눈길을 흩날리고 있다. 마치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 중생들을 바라보는 것처럼...그래서 언제나 허허로왔다. 그 허허로움, 어린 마음에도 늘 사무쳤다. 사무친데는 고즈넉한 소나무의 자태때문만이 아니다. 희안하게도 잊을만 하면 사람들이 그 장송에 가서 목을 맸다. 다른 나무도 아니고... 늘 그 소나무였다. 그래서 몹시 궁금했다. 왜 목 매는 사람들은 꼭 그 나무여야할까 ? 마을 사람들은 왜 소나무를 베지 않는 걸까 ?


우리 조무래기들은 서쪽 능선으로 하산할 때마다 소나무밑을 우사인 볼트만큼이나 빠르게 내달렸다. 굵은 가지에서 새끼줄이 내려와 목을 감아채기라도 할 듯...소나무는 그저 죽으려는 자의 친구였다.서녁바다의 붉은 노을만이 가끔씩 다가왔다. 내가 어느덧 마을을 떠난 후에도 한동안 그곳에서 사람들이 목을 맸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의 인생이란 아슬아슬하게 소나무 주위를 서성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추수가 끝나고 나서 쌀값을 쥐고 노름판을 기웃거리거나 우시장에서 야바위꾼에게 붙들렸던 이웃 아저씨들이 그랬다.
  
끝내 소나무에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은 대개 도박에 손댄 사람이거나 그의 아낙였다. 죽음은 도처에 널려 있었다. 하물며 상갓집마저도 그랬다. 예전엔 마을 유지가 죽으면 그 상갓집을 소위 '타짜'들이 지켰다. 초저녁부터 곳곳에서 도박꾼들이 몰려 들었다. 도박이 금지됐지만 상가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이들은 애초부터 문상에는 관심 없다. 상주 또한 이들과 일면식이 없다쳐도 누군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상주는 문상을 마친 따짜들을 적당한 판으로 안내하고, 술과 음식을 내줬다.


그렇다고 따짜들도 그냥 자리에 앉는게 아니다. 부조 액수에 따라 자리 위치가 달랐다. 대체로 사랑방이 가장 큰 판였다. 일단 자리를 차지한 타짜들은 간단하게 술과 음식을 들고 판들을 탐색했다. 사랑방에는 이미 판이 여러개 형성돼 있다. 이런 판들은 사랑방에만 있지 않았다. 마당 앞 텃밭에 지어진 비닐 하우스에서 마을 사람들이 푼돈 걸고 하는 윷놀이, 섰다판까지 상갓집의 도박판은 다양했다.


아는 사람들끼리 작은 판을 벌이거나 모르는 사람들이래도 빈자리를 찾아들어 '선수' 입장하면 그만였다. 새벽녘 상갓집엔 밤샘할 사람과 도박꾼들만 남았다. 잔챙이들이 흩어지고 타짜들이 말하는 '끗발' 볼 시기다. 실질적인 승부처다. 이 시간을 장악하는 사람이 그날의 승자다. 그래서 타짜들은 모든 정신력이 집중했다. 초반엔 판세와 실력을 탐색하고 중반엔 페이스를 조절하고, 후반에 혈전을 벌이게 된다.


그새 상주는 사랑방으로 몇차례 술과 음식을 내줬다. '하우스'(도박장)를 개장한 상주로서 부조를 받은 댓가다. 도박판에도 별도의 갤러리들이 있다. 이들중에는 담배, 술 심부름을 하면서 소위 '고리'라고 약간의 수고비를 뜯는 경우도 있었다.


최후의 승부처에는 처음부터 사랑방에 모여든 타짜들만 참여하는 건 아니다. 마당에서 끝판을 잡은 이들도 갤러리로 왔다가 그새 빈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왔다. 그이는 정말 큰 판을 경험하지 못한 선수들일 수도 있고, 순진한 척 동네사람으로 가장하고 있다가 새벽녘 끝판을 겨냥하고 숨어든 사람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 방안의 타짜들과 한 패일 수도 있다. 어쨌든간에 작은 판을 평정한 사람들은 판돈을 싹슬이하고 더 큰 판으로 진출했다.


이렇게 이웃아저씨 한분이 비닐하우스에서 심심풀이 섰다판을 평정하고 주머니를 적당히 불려 드디어 큰 판으로 나섰다. 아저씨는 사랑방의 타짜들과 몇순배 만에 손을 들었다. 그런데 아저씨는 그냥 손을 빼면 될 걸 열받았다고 집문서를 가져왔다. 사랑방에는 이런 아저씨들의 집문서를 잡아주는 이가 있다.


대체로 시세의 절반을 꺾고 돈을 내줬다. 아니면 타짜들이 판돈 대신 잡아주기도 했다. 그리곤 마지막 판이 벌어졌다. 타짜와 아저씨의 눈초리가 빛나고, 갤러리들도 숨죽인다. 아저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좋은 패를 쥔 것이다. 그가 패를 열고 판돈을 쓸어가려할 때 무표정한 타짜 하나가 촌놈의 저지하고 나선다. 마침내 타짜의 패가 펼쳐진다. 그리곤 아저씨가 머리까락을 쥐어 뜯으며 쓰러진다.


상갓집의 판돈과 집문서 몇개가 타짜 한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고서야 끝이 났다. 타짜들과 갤러리들이 흩어졌다. 그러나 알고 보니 타짜들 모두 한통속였다. 타짜들은 타짜의 주머니를 노리는게 아니라 어수룩한 이들을 노리게 마련이다. 늘 아저씨들만 당한다. 그들은 숱한 경험과 기술을 지녔다. 당초 당할 재간이 없는 싸움인 셈이다. 그리고 아저씨들은 무엇이 어떻게 이 황망한 판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사람이 당하고, 어두운 밤 앞산 자락 소나무에서 목을 매는 것이었다. 얼마 후 아저씨네 가족이 앞산 비탈길 너머로 사라져가던 그 풍경이란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렇게 작은 세상 하나가 무너져 갔다.


세그루 소나무는 앞산에만 있지 않다. 세상엔 더 큰 도박판이 있고 어느 도박판이든 죽음의 어둔 그림자가 스멀거리는 곳에 소나무가 자란다. 또한 아저씨들의 호주머니를 노리는 타짜가 우글거린다. 증권거래소라는 작은 도박판이 있다면 '월가'라는 거대한 판도 있다. 정치가들은 판을 만들어주는 상주에 지나지 않는다. 또 어떤 세상이 무너질지 알 수 없다.


월가의 타짜가 옥수수 선물거래로 수백만달러를 벌었다면 아프리카 어린이 수만명이 한달 이상을 굶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건 언제나 숱한 목숨을 담보로 한다. 탐욕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망할 지경여도 위대한 타짜(?)들은 수억달러의 수익을 얻는다. 그들만 배부르면 되는 그들의 세상인 셈이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이 지금 삶의 위기, 굶주림, 불평등, 전쟁과 환경 파괴 등으로 신음한다. 그야말로 '1%의 시대'다. 99%의 행진도 시작됐다. 또한 우리에게도 수많은 행진의 전조와 경고가 난무한다.






이규성 기자 peac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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