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윈위해 싸운다?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결국 누가 유리한 고지에서 협상을 시작할 것인지가 문제다. 법정 분쟁은 두 거대 기업이 앞으로 나타날 불확실성을 없애려 사전 조율하는 성격으로 봐야 한다."
지난 14일 첫 번째 공판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불이 붙은 삼성과 애플의 특허소송을 바라보는 '특허전쟁'의 저자 정우성 변리사의 시각은 이렇다. 법리적 이득을 얻으려는 다툼이 아닌, 시장에서 '윈-윈'하기 위한 대화의 방법으로 소송을 택했다는 얘기다. 팀쿡 애플 CEO의 초청으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의 추도식에 참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행보가 눈길을 끄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특허전쟁'에서 삼성과 애플, 구글, 노키아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이 진행해온 특허소송 이야기를 심도있게 다룬 정 변리사는 1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과 애플의 소송은 결국 앞으로 진행될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이라면서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의 1,2위를 다투는 두 거대 기업은 특허로 인해 닥칠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한 협상의 자리를 마련코자 법정 분쟁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그간 진행된 독일, 네덜란드, 호주 등지에서의 법정 분쟁에서 삼성은 패배해왔다. 대개 판매금지를 구하는 가처분 사건이었지만 '디자인'이 지닌 무게를 간과한 삼성의 준비 소홀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정 변리사는 "상대방이 있는 싸움에서 상대방인 삼성이 잘 대응을 못하고, 이 사안 자체가 판사가 판단하기 쉬운 내용이라면 당연히 애플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누가 봐도 '디자인'이 닮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 납득할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당연한 결과라는 이야기다.
물론 삼성이 보유한 방대한 특허, 특히 무선통신에 관해 표준으로 정해진 특허들에 대해 애플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표준특허의 경우 FRAND(Fair Reasonable And Non Discriminatory terms,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라이선스 부여 규정)조건에 의해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틈이 열려 있다. 삼성 또한 제품이 지닌 유사한 외관만 포기하면 판매금지 같은 제약으로부터 손쉽게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삼성과 애플 모두 결과와 해법이 이미 정해진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양사가 이번 소송전을 토대로 달성하려는 바가 따로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업계 후발주자인 애플은 디자인과 어플리케이션이 보유한 창의성을 강점으로 하더라도 결국 선배 기업들이 쌓아온 기술과 독립적일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특허 관련 분쟁에 대해, 이미 노키아를 비롯해 숱한 특허분쟁에 휘말려온 애플로선 '더 이상 특허에 발목잡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데 발목잡히지 않겠다'고 삼성을 도구삼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 또한 최대고객 중 하나인 애플과 전면전을 벌일 이유가 없다. 합리적인 라이선스 계약만 체결된다면 오히려 애플을 도구삼아 시장에 삼성이 지닌 기술력의 위상을 과시할 기회를 갖는 셈이다. 오히려 소송을 거치면서 향후 스마트 디바이스 시장의 파트너를 갱신할 기회를 맞았다는 것이다. 구글과 손잡고 안드로이드시장에 진출한 삼성이지만 일련의 소송을 거치며 MS와 제휴하게 된 것에 대해 정 변리사는 "이미 보장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파트너를 확보해 경영위험을 분산시킬 다각화된 전략을 세울 기회를 갖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미 전세계를 무대로 법정공방을 벌이며 삼성과 애플이 소모한 소송비용만 해도 수천억원을 향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관과 라이선스에 대한 적절한 협상이 늦어도 2012년까지 이뤄지리라 내다보고 있다. 소모적인 분쟁을 계속하기보단 결국 애플과 삼성 모두 조속히 '외관'과 '라이선스'를 주고 받으며 '동반자'로 재정립하는 계기가 이번 법정 공방의 본모습이라는 게 정 변리사가 내린 결론이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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