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
1. 발터 벤야민은 ‘독일 비극의 기원’이라는 글에서 “우울은 영원한 재난에 상응하는 감정”이라고 썼다. 다른 날마다 같은 소식을 전할 바에야 다발로 묶는 편이 낫다. 그렇게 우울한 편지는 씌어졌다.
2. 하필 2일부터 영국쪽에서 유로화의 붕괴를 우려하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까지 그리스의 디폴트의 후폭풍을 유럽계 은행권으로 한정해 걱정하던 것과 비교해 보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유로화가 붕괴되면 영국도 엄청난 타격을 받게될 것이라는 뉴스들이지만, 정작 의도가 이를 빌미로 유로화의 붕괴가 검토되고 있음을 전달하려는 건지, 그 파장이 너무 크니 붕괴를 막아야겠다는 건지 사실 가름하기 힘들다.
3. 블룸버그 통신은 소비자태도 조사를 마친 뒤 한마디로 상황을 요약했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만사에 짜증이 나있다”.
4. 이름부터도 우울한 IceCap이란 펀드의 보고서는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버냉키 의장이 최선을 다하면서 절망적으로 매달리고(hopelessly devoted)있지만 실제 그가 하고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는 그가 할 줄 아는 한 가지 - 돈 찍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보고서는 만일 케인즈가 살아있다면 그는 자신의 이론이 오늘날의 중앙은행장들, 재무장관들, 그리고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폴 크룩만을 비꼬아 표현한 것)에 의해 뒤죽박죽이 되고 있는데 대해 항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너무 억울해 할 것 없다. 이미 140년전에 마르크스는 자신을 제발 ‘마르크스주의자’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하소연했다. 예나 지금이나 2류 해설가들이 원전을 제 맘대로 갖다 쓰기는 마찬가지다. 이 보고서의 현실 판단은 다음 한줄로 요약된다. 정치무대에 해적들이 출현하는 정도면, “말 다했다”.(독일 지방선거에서 해적당이 약진한 것을 빗대 현재 제도정치가 무력하다는 평가)
5. 지난달 30일 공개된 골드만삭스의 아날리스트인덱스가 2009년 8월 이후 처음으로 50선을 하회했다. 즉, 골드만삭스의 분석가들의 과반수 이상이 자신들이 맡고 있는 섹터가 확장국면이 아니라 축소국면에 들어갔다고 대답한 것이다. 이 보고서는 제목부터 불길하다. “대불황(Great Recession)에서 대스태그플레이션(Great Stagflation)으로”.
이 보고서에 따르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현재 환경에서의 스태그플레이션의 확률은 선진 시장에서는 40%에 달한다고 밝혔다. 금융체제의 선봉에 있는 골드만삭스의 보고서가 이 지경이니 가을 햇볕과는 어울리지 않게 우울하다. 골드만의 요즘 주가가 엉망인 이유를 알겠다.
2일 발표된 골드만삭스의 또다른 경기전망 보고서는 “불황의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면서 “불황에 돌입할 경우, 실업률이 12%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6. 시티은행은 내년도 세계경제 전망을 낮추었다. 하도 자주 하향 수정되니 뉴스로 따로 쓰기도 민망하다. 어쨌든 2012년도에는 2.9%(3.7%->3.2%->2.9%)로 낮아졌다. 어차피 별 상관없다. 마야인들에 따르면 내년은 세상 종말의 해가 아닌가!
7. 그동안 고집스럽게 인플레이션이 올거라고 주장했던 이코노미스트 개리 쉴링이 드디어 항복했다. “신용 과잉 공급의 세계를 뻥튀기해서(inflating)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준조차도”. 이 분은 S&P500 지수가 곧 800선으로 내려앉을 거라고 예언한다.
8. 다행히 그리스는 흑해 연안에서 짝을 찾았다.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벨라루스에 이어 구소련 독립국으로서는 두 번째다. 어차피 벨라루스가 어디 붙었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뉴스가 될소냐.
9.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중국이 ‘경착륙’할 거라고 분석했다. 사실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중국 통계는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점쟁이 보다 신뢰도가 높다고 보기도 어렵다.
10. 아일랜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그리스가 ‘축적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구제금융을 받고 있는 아일랜드 중앙은행으로부터 조언을 구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조금 고민했다, 이게 우울한 소식인지, 웃기는 소식인지.
11. UBS는 “유로존 국채 위기가 보다 위험한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했다. 벨기에의 대형 은행인 덱시아의 국유화가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시장에서 평가하고 있다. 덱시아의 자산은 벨기에 국내총생산의 1.8배나 된다. 벨기에가 덱시아를 국유화하는 건지, 덱시아가 벨기에를 민영화하는 건지 잘라 말하기 힘들다.
12. 대표적인 비관론자인 블룸 붐 앤 둠(꽃몽오리 맺히고, 피어나고 떨어지고; Bloom, Boom and Doom)의 마크 파버나,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의 상품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차별성이 없는 것이다. 세상이 망할거라는 얘기는 요즘은 동네 트레이더도 다 한다. BBC 생방송중에 영국의 트레이더가 “유로화는 망했다. 세계는 골드만이 지배하고 있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었다. 그는 일약 유명스타가 됐다. 파버나 루비니가 좀더 분발하지 않으면, 그 자리가 위태로울듯 싶다.
13. 월스트리트의 낙관론자인 골드만삭스의 자산부문 수석 책임자 짐 오닐이 영국의 따사로운 햇볕 아래서 고객들에게 요즘 상황을 평가하는 메모를 보냈다.
제목은 “이제 만사를 걱정하자”(Let's worry about everything). 내용은 별 볼게 없다. 이미 다 나온 뻔한 우울한 소식들이지만, 정작 주목을 끄는 것은 그가 이 메모를 쓴 배경이다.
그는 자신이 ‘아바 헌정 밴드’의 음악을 들으면서, 영국의 모처럼만의 햇살 아래서 샌드위치를 씹으며 이 메모를 쓴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오는 11월달의 G20 정상회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가 듣고 있던 아바의 음악이 무엇인지는 밝히지는 않았지만, 프로이드적인 메스를 가해본다면, 추정은 가능하다. 아마도 ‘워털루’였을 것이다. 앵글로색슨 모델과 대륙(독일) 모델이 충돌하는 11월의 세계 정상회담에서 골드만은 영미쪽에 배팅을 한 것일까?
14.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이 난국을 ‘헤쳐나가기’는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제는 사실을 직면해야 할 때다. 선진국의 민간 가계와 기업, 그리고 정부의 부채는 20조 달러가 넘는다. 과잉부채를 제거하려는 노력들도 전부 실패했고, 연준의 인플레이션을 통한 출구 모색도 헛되이 끝났다.
이 무지막지한 빚더미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국제 공조를 통한 채무재조정밖에 없다. 그 재조정은 금융자산을 소유한 사람들에게서 30%의 일괄 자산세를 징수해 부채를 해결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소유 자산의 30%에 해당하는 세금을 걷어간다고? 이건 세금을 빙자한 재산몰수에 가깝다.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공산주의라고? 어, 보스턴컨설팅그룹이 그런 곳인줄 몰랐다.
15. 지금 유럽을 움직이는 동력은 루머다. 최근의 가장 강력한 루머는 독일이 유로화를 떠나서 마르크화(유로화 이전의 독일 화폐)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가 절대로 유로화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루머의 매력은 식지 않고 있다.
연예계 루머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나고 보면 다 사실로 밝혀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루머를 거짓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실제로는 정부 당국이야 말로 공식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재무장관회의 의장인 장 클로드 융커는 유럽재정안정기금과 관련해 기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가 들통이 나자, “사태가 심각해지면, 거짓말을 해야 한다”(When it becomes serious, you have to lie)고 했다.
80년대에 한국의 최승자 시인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고 썼다. 하기야 데카르트의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승자식으로 말하자면, 유로가 살아있다는 것은 루머에 지나지 않고, 데카르트식으로 말하자면 나는 찍어낸다, 고로 유로는 존재한다(print, therefore exist).
16. 마지막은 우울하지 않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자가 개그 작가가 되기 위해 백악관을 떠났다. 그는 개그작가가 자신의 평생의 꿈이라고 말했다. 개그지망생의 대본을 들고 온세계가 그걸 해석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쓴웃음이라도 지어야하지 않을까?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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