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경훈 기자]'최동원' 당신의 이름을 알게된 건 27년전인 지난 1984년. 제 나이 11살때입니다.
그해 당신이 몸담고 있던 롯데 자이언츠는 첫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다들 삼성이 우승할 거라고 했습니다. 삼성은 껄끄러운 상대인 OB베어스를 피하기 위해 시즌 막판 약체인 롯데와의 경기에서 일부러 져주기까지 하면서 한국시리즈 상대로 만만한 당신의 팀을 선택했습니다.
당신이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했던 것 처럼 당시 삼성은 열번을 싸우면 아홉 번 지고 한번을 이길까 말까한 강한 상대였습니다. 그런 삼성은 롯데를 얕잡아 봤지만 롯데에는 당신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1984년 정규시즌에서 27승을 거둔 최다승 투수였습니다. 후반기에만 18승을 따내면서 혼자 힘으로 팀을 한국시리즈에 밀어올렸습니다. 결국 당신은 1차전 완봉승, 3차전 완투승, 6차전 구원승, 7차전 완투승으로 혼자 4승을 거두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만들어내면서 기어이 롯데에 우승을 안겨주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에도 당신의 질주는 계속됐습니다.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 당시 강남에 아파트를 사고도 남는 1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았습니다.
남들 같았으면 인기와 부에 취해 세상살이에 요령을 피울 법도한데 당신은 조금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운동선수들에겐 개념도 없던 선수협의회 결성을 추진한 것입니다. 당신은 돈이 많았지만 불의의 사고나 은퇴로 생계가 어려워진 선수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가혹했습니다. 선수협의회 추진을 노동조합 결성으로 여긴 구단은 부산에서 태어나 경남고등학교를 나온 롯데자이언츠의 간판인 당신을 쫒아냈습니다.
롯데가 아닌 다른팀의 유니폼을 입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당신은 새로운 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곧 마운드를 떠났습니다. 어떤 경기에서든 이를 악물고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지는 당신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었습니다.
은퇴 뒤에도 야구인으로 살고 싶었지만 당신을 받아주는 구단은 없었고 그렇게 잊혀져간 당신은 얼마전 경남고와 군산상고의 레전드 매치에 수척해진 모습으로 참석해 당신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먼길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당신을 외면했던 롯데는 어제 당신의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한다고 밝혔습니다.
홈런을 맞더라도 피해가는 법이 없었던 배짱을,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부조리에 맞서던 모습을, 모든 것을 불태우고 스스로를 불살랐던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무리는 역시 대가가 있게 마련이더라. 그러나 후회한 적은 없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난 1차전부터 7차전까지 던질 거다. 왜냐? 그게 최동원이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최동원, 나의 영웅입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경훈 기자 styxx@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