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지성 기자]"많은 직원들의 노력으로 기술 리더십을 지킬 수 있었지만, 앞으로 더욱 거세질 반도체 업계發 태풍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반도체 업계 태풍' 발언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반도체 차세대 공정에서 경쟁사 대비 한 발 앞서가며 업계 선두 위치를 공고히 한 상태에서 나온 경고라 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상태다.
발언의 표면적인 의미는 반도체 업황이 좋지 않은 만큼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D램 가격은 원가를 밑도는 최저치 행진을 이어가며 글로벌 업체들의 이익 구조를 압박하고 있다. 유럽 등 선진 시장의 재정 위기가 심화되면서 수요와 가격 회복 시기가 늦춰지고 있는 만큼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경쟁력 향상에 힘을 모아달라는 당부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반도체 업계의 본격적인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된다는 발언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미 원가 경쟁력에서 뒤쳐진 파워칩, 난야 등 하위권 업체들의 감산이 시작된 만큼 반도체 산업은 앞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치킨게임이 끝나고 국내 업체들의 독주가 이어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지만 하위권 업체들의 합종연횡을 통한 본격적인 반격도 간과하기 힘들다. 이미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무너진 만큼 과거를 통한 미래 예측도 불투명한 상태다. 아직은 6개월 이상의 격차가 있다지만 일본의 엘피다도 25나노 D램 개발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호언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요소다.
미세 기술이 한계 수준에 도달한 만큼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문일 수도 있다. 삼성전자가 양산에 돌입한 20나노 기술은 머리카락 굵기의 4000분의 1수준의 회로를 반도체에 그려 넣는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최대 10나노 까지 기술이 진화한다고 해도 그 이하로 미세화 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미세기술로 한 단계 진보했지만 마그네틱반도체(M램) 같은 차세대 무기로 시장에 도전해야 할 시기가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장의 주도권은 아직 누구에게도 돌아가지 않았다.
고객사의 위험도 간과하기 힘들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현재 치열한 특허전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사이기도 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애플에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비롯한 플래시 메모리, 액정표시장치(LCD), D램 등을 납품하고 있다. 문제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경쟁이 격해지면서 애플이 탈 삼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이 독점 생산하던 AP는 대만의 반도체 회사인 TSMC가 일부 대처하게 됐다. LCD 역시 일본의 샤프에 일부 이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 질수록 애플로 납품하는 물량이 줄어들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이 회장은 위기에는 투자를, 호기에는 위기를 강조하며 미래를 준비해 왔다. 이 회장은 경영복귀 직후인 지난해 5월 화성 16라인 기공식에서 "세계경제가 불확실하고 경영 여건 변화도 심하다"며 "이러한 시기에 투자를 더 늘리고 인력도 더 많이 뽑아 글로벌 사업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의 승부사 기질이 이번 위기 상황에서는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지성 기자 ji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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