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전력 24만kW밖에 없었던 15일 막장우화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지난 15일 벌어진 정전 사태는 늑장보고, 허위보고, 위기관리시스템 부재가 빚어낸 총체적 난국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지식경제부는 물론 청와대도 하부기관으로부터 허위보고를 받아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엉뚱한 내용으로 관계자들을 질책하는 일이 빚어졌다.
9.15정전대란의 혼란이 가시지 않았던 16일 오후 6시. 이명박 대통령이 불시에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자리에 앉자마자 크게 화를 내며 "단전에 앞서 매뉴얼은 없느냐. 자기 마음대로 (전력 공급을) 자르고 해도 되는 것이냐"고 말했다.
전날인 15일 전력거래소는 전력사용량이 폭증하자 오후 3시부터 순환정전을 실시했고 1시간 뒤에야 지경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전력거래소는 당시 "15일 오후 3시 예비 전력은 148만㎾까지 떨어졌다"고 했다. 적정선인 400만㎾를 크게 밑돌았다는 얘기다. 정부 매뉴얼대로라면 100만kW 밑으로 떨어지면 순환정전을 실시하지만 워낙 비상상황이라 매뉴얼을 따르지 못했다는 게 전력거래소의 해명이다.
하지만 이틀인 18일 최중경 장관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가 나왔다. 정전사태 당시 전력 공급능력은 7071만kw로 예비전력이 350만kw 내외라고 보고받았으나 실제 예비전력은 24만kw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예비력 24만kW라면 수초사이에 전국적인 대규모 정전, 즉 블랙아웃으로 가는 상황이다. 실제 예비전력은 몇초사이에 100만kw를 왔다갔다 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15일 오후 3시에 전력거래소가 취한 순환정전조치는 순발력있는 아주 적절한 조치다.
만약 전국적인 불랙아웃이 됐다면 발전소를 다시 가동하는 데에만 최소 사나흘이 걸린다. 순환정전사태로 입은 피해와는 비교가 안되는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하다. 미국은 최근 허리케인 아이린이 동부지역을 강타해 400만가구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1주일 이상 전기없이 생활했다. 2003년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주, 멕시코 바하 주 북부 지역일대에 하루동안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해 500만명이 넘는 인근 지역민들이 고통을 당했고 피해액만 60억달러가 넘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한전을 찾아 "매뉴얼대로 하지 않았다"고 질책한 것도 우스꽝스럽게 돼 버렸다. 허위보고에 의해 청와대와 대통령이 상황을 잘못 판단했고, 정확하지 않은 사실에 근거해 대통령이 질책을 한 셈이 됐다. 늑장보고, 허위보고, 총체적인 위기관리시스템 부재가 정부를 두번 웃음거리로 만든 것이다.
2011년 9월 15일 정전은 값싼 전기요금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품질을 갖춘 전기강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져선 안되는 장면이었다. 국가의 총체적인 위기관리 시스템 부재, 여기에 허위보고까지 가세한 아찔하면서도 웃지못할 상황극이었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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