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업계, 생산중단 후폭풍…원자재값 올라 실적악화에도 가격인상 보류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영업이익이 반토막으로 줄었는데도 가격은 올리지 못해 앞으로의 경영상황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라면업계가 '신라면 블랙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초 2~7% 가량의 가격인하를 단행했던 라면업체들은 그동안 신선식품 및 밀가루 등의 국제원자재 값이 올라 실적이 악화됨에 따라 라면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출시부터 높은 가격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농심의 '신라면 블랙'이 최근 생산 중단을 선언함에 따라 업체들은 당초 추석 이후로 내정됐던 가격 인상안을 전면 보류했다. 이에 따라 악화된 영업이익을 회복할 길이 없어진 업체들은 현재 한숨만을 내쉬며 정부 눈치만을 보고 있다.
6일 금융감독원 공시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라면업체들의 지난해 및 올해 상반기 실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라면업계 1위인 농심의 올 상반기 매출은 9974억원으로 지난해 9466억원보다 5% 가량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지난해 866억에서 25.7% 줄어든 643억원에 그쳤다.
2위인 삼양식품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2월 최대 6.7%의 가격을 내린 이후 매출은 2009년 2985억원에서 2010년 2726억원으로 줄었고 심지어 영업이익은 252억원에서 126억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57억원으로 단순 계산으로만 따질 경우 올 한해 실적은 지난해에 비해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뚜기의 매출액은 2008년 1조2517억원에서 2009년 1조3639억원, 지난해 1조3729억원으로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711억원, 652억원, 550억원으로 매년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44억원으로 전년 609억원에 비해 10.67% 줄었다.
최근 '꼬꼬면 열풍'을 불러일으킨 한국야쿠르트의 경우 라면스낵사업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3억4900만원에 그쳐 2009년 28억9700만원에서 대폭 감소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철퇴를 맞은 농심이 '신라면 블랙'의 생산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리자 이로 인한 후폭풍이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과장 광고 혐의로 인한 과징금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가격을 내리라는 정부의 강한 압박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공정위는 '물가기관'임을 천명하고 정부의 물가잡기 총력전의 선두에 서왔다.
'신라면 블랙'은 지난 6월 1억5500만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이후 '거품 가격' 논란에 휩싸이며 이미지가 크게 훼손됐고 이후 매출은 7월 25억원, 8월은 20억원으로 급감, 결국 생산이 중단됐다.
이렇다보니 업계에서는 그동안 검토했던 가격 인상안을 전면 보류하기에 이르렀다.
한 라면업체 관계자는 "원재료 값 상승에 따른 가격인상분을 제품에 반영하지 못해 실적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올 추석 이후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신라면 블랙의 생산 중단으로 말조차 꺼내기 힘든 상황이 됐다"고 토로했다.
한편, 라면의 주원료로 사용되는 강력1급, 전용5호 등의 밀가루 가격은 지난해 kg당 780.94원, 775.45원에서 올 상반기 각각 791.11원, 786.70원으로 올랐다. 변성전분은 1204.03원에서 1270.90원으로, 팜유는 1095.91원에서 1471.58원으로 상승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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