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이고 쪼개고.."
기세등등했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 콧대가 꺾였다. 장기화된 서울 부동산 시장 침체에 집 값이 떨어진데다 분양 성공마저 우려되면서 집 규모를 줄이고 나누는 등의 특단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한때 부의 상징이자, 집을 넓힐 수 있는 기회란 믿음을 줬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장기 불황으로 변해버린 주택시장 환경에 맞춰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2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최근 조합원 평형 신청을 받은 서울 강동구 고덕시영아파트는 설계변경을 검토 중이다. 설계변경시 사업인가절차 부터 다시 밟아야 한다는 단점에도 이를 추진하는 것은 평형신청 마감 결과 대다수의 조합원이 중소형을 원했기 때문이다. 당초 427가구를 짓기로 한 전용면적 59㎡를 신청한 조합원은 787명이나 됐다. 이에 반해 102㎡ 이상 중대형의 경우 1076가구 중 15%만 신청했다.
인근 고덕주공4단지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평형신청을 받은 결과 228가구를 공급하는 전용 84㎡를 원한 조합원은 350명이 넘었다.
강남 노른자위 땅인 역삼동에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성보아파트는 아예 59~84㎡ 중소형 주택 411가구로만 구성했다.
이같은 모습은 중대형이 대세였던 기존 강남 주택시장과는 비교된다. 불과 3~4년전만 해도 대다수 조합원들이 85㎡를 초과하는 중대형을 선호하는 바람에 지분이 낮은 조합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소형을 분양받았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 침체 분위기에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중대형을 고집했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중소형 중심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분양가상한제 탓에 일반 분양가를 많이 올릴 수 없다는 점도 중소형을 선호하게 한 원인이다.
임대아파트를 꺼려했던 강남 지역에서 '한지붕 두가족' 형태의 부분임대 설계가 확산되고 있는 점도 달라진 점이다. 부분임대는 전용 85㎡ 이상 아파트의 방 한 칸을 세를 줄 수 있도록 출입문을 따로 내고 화장실 등을 별도로 설치하는 형태로, 그동안 강북 뉴타운 지역 중심으로 적용됐다.
강남지역서 현재 부분임대 설계를 검토하고 있는 곳은 개포지구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개포주공1단지 전용 85㎡ 이상 아파트의 10%(253가구)가 부분임대로 지어진다. 물론 아직 조합원 사이에 부분임대에 대한 찬반의견이 갈리는 상황이다. 하지만 임대아파트 자체에 거부반응을 보였던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부분임대 설계를 고민한다는 점 자체가 파격적이란게 부동산 전문가들 반응이다.
박합수 국민은행 부동산 팀장은 "그동안 주택시장 불황에도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끄떡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졌고 이 과정에서 주택시장이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바뀐 시장 분위기를 맞춰가고 있다는 점 자체는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은정 기자 mybang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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