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노믹스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MB 압박에 재계 억지춘양 우려
[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지난 7월 중순 대기업 정책의 규제 개혁을 담당하는 국무총리실이 발칵 뒤집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펴낸 '이명박 정부 규제개혁 3년 평가와 향후 과제' 보고서 때문이었다.
보고서는 기업의 규제개혁 체감도 추이가 8.9%(2008년), 27.1%(2009년), 39.1%(2010년)로 상승하다가 34.6%(2011년)로 하락했다고 전했다. 수치 하락은 기업의 만족도가 낮다는 의미다.
전경련 관계자는 “올해 체감도가 떨어진 것으로 조사된 데 대해 총리실은 매우 당황스러워했다”며 “이명박 정부가 표방한 기업 프렌들리 정책에 반하는 결과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 보고서는 언론에 공개되지 않았다. 총리실이 보고서 공개에 난색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재계는 총리실의 반응이 오히려 마뜩찮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총리실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면서 “노무현 정부와 차별을 강조하면서 MB 정부 초기에는 친기업 정책이 적극적으로 펼쳐졌지만 최근 이 같은 기조가 뒤집어졌다”고 토로했다.
재계는 작년을 기점으로 MB 노믹스가 '친기업'에서 '반기업'으로 전환됐다고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이 8·15 축사에서 '공정 사회'를 강조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금산(금융과 산업)분리 완화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MB의 대표적인 친기업 정책들도 잇따라 발목이 잡혔다. MB가 취임 초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그토록 강조했던 정책들이었다.
금산분리 완화는 부산, 삼화 등 저축은행 비리가 줄줄이 터지면서 발이 묶인 형국이다. 그 바람에 지주사로 전환한 대기업 중 금융 자회사를 보유한 SK, CJ, 두산 등은 금융 자회사를 팔거나 과징금 제재를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출총제 폐지도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경제력 집중 문제의 해소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부활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법인세 인하 등 감세 정책과 관련해서도 일감을 몰아 받은 기업에 법인세를 추가 과세하고 대주주의 배당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과세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다.
동반 성장과 관련한 MB 정부의 대기업 압박도 갈수록 격화되는 형국이다. 당장 이 대통령은 31일 30대 그룹 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지난 8·15 경축사에서 밝힌 '공생발전'의 대기업 역할에 대해 주문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기업은 중소 협력사와 동반 성장에 관한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놨지만 이번 회동에서 이 대통령이 추가로 어떤 주문을 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을 정해놓고 대기업의 진입을 가로막고 대기업의 기업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계열사도 분리하는 상황”이라며 “더 이상 추가로 내놓을 것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MB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한꺼풀 벗기면 '규제'와 '개혁'이라는 키워드가 자리잡는다. 바로 이것이 '온탕'에서 '냉탕'으로 넘어가면서 MB 노믹스도 길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 재계의 냉정한 평가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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