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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육상톡톡]‘운동회 기록’으로도 박수 받는 건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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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 23일 파리 생드니 스타디움에서는 제9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첫날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뜻밖에도 여자 100m 예선 3조였다. 아프가니스탄의 리마 아지미는 제대로 된 운동복이 아닌 티셔츠를 입고 달려 18초37로 골인했다. 한 번도 정식 대회에 나선 적이 없는 아지미는 이 기록이 공인 개인 최고 기록이 됐다. 이 기록은 국내 여고생의 체력장 수준이다.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뒤 문을 연 아프가니스탄의 첫 여자 스포츠클럽 소속으로 대회 개막 불과 몇 주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한 아지미는 처음에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출전을 거부했다. 그러나 조국을 대표해 사상 처음으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나선다는 데 뜻을 두고 용기를 냈다. 아지미는 조국의 이름을 걸고 달렸기에 18초대 기록이 결코 창피하지 않았다. 이 대회에서 아프가니스탄의 남자 선수 아사드 아마디는 100m에서 11초99를 기록했다.

1980년대에는 옛 소련과 전쟁, 2000년대 들어서는 미국의 '테러와 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2007년 오사카 대회에서는 왈리드 안와리가 남자 100m에서 11초75, 파티마 모하마디가 여자 100m에서 16초17을 기록했고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는 마수드 아지지가 남자 100m에서 11초79, 로비나 무키비아르가 여자 100m에서 14초24로 골인했다. 여자 기록이 향상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10종 경기에 출전한 육상 선수 출신으로 1952년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이 돼 20년 동안 장기 집권한 에이버리 브런디지(미국)는 아마추어리즘의 지킴이였다. 1950~70년대만 해도 프로 선수들은 올림픽에 나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 무렵까지만 해도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는 올림픽 강령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오늘날 올림픽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제 대회는 상업주의에 물들고 정치에 오염됐으며 나라의 힘을 뽐내는 무대로 바뀐 지 오래다. 고집불통인 브런디지 위원장이 지하에서 땅을 칠 노릇이지만 이건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지만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는 여전히 참가에 의의를 두고 있다. 이는 아마추어 정신의 또 다른 본보기에 가깝다. 2000년 9월 19일 적도 기니의 에릭 모우삼바니는 시드니 올림픽 수영 자유형 남자 100m 예선에 헐렁한 사각 수영복을 입고 출전해 레이스 내내 한 번도 물속에 머리를 넣지 않는 개헤엄을 쳐 1분52초72로 터치패드를 찍었다. 수영을 제대로 배운 선수면 200m를 갈 정도의 시간이다.


수영 후진국을 위해 마련한 와일드카드로 올림픽에 나선 모우삼바니는 정규 코스인 50m 풀은 본 적도 없었다. 올림픽을 8개월여 앞두고 20m 풀에서 훈련했을 뿐이다. 모우삼바니는 4년 뒤를 기약하며 열심히 훈련해 개인 최고 기록을 57초대까지 끌어내렸으나 비자 문제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아지미나 모우삼바니 같은 선수의 기록은 '운동회 기록'으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많은 이들은 두 선수의 역주와 역영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는 202개국 1895명의 선수가 출전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나라와 선수들이 빈손으로 귀국길에 오른다. 직전 대회인 2009년 베를린 대회에서는 에스토니아와 멕시코, 카타르,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터키가 동메달 1개로 메달 테이블에 턱걸이해 손에 메달을 쥐고 귀국한 37개 나라에 들었다. 164개 나라는 빈손이었다.


이번 대구 대회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알바니아 등 선수를 1명만 보낸 나라가 38개국이나 된다. 아프가니스탄 선수는 2009년 베를린 대회 출전했던 마수드 아지지다. 아지지의 개인 최고 기록은 2005년에 세운 11초11이다. 국내 중학교 최고 기록(10초83)에 뒤지고 초등학교 최고 기록(11초71)에 겨우 앞선다. 그러나 아지지는 27일 예선 2조에서 한국의 김국영, 인도네시아의 모하메드 파들린, 홍콩의 치후츠이 등과 달린다. 2003년의 아지미가 그랬듯이 조국의 평화를 기원하며.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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