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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철의 육상톡톡]마라톤대표팀에 바라는 이명승의 투혼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2분 13초


글쓴이는 한국 마라톤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다. 고 정봉수 감독의 기쁨에 들뜬 목소리다.


1992년 2월 2일의 일이다.

"신 형, (황)영조가 일본 신기록을 세웠어."


황영조는 이날 벳푸·오이타 대회에서 2시간8분47초로 한국 최고 기록을 작성했다. 종전 기록은 1991년 11월 김완기가 춘천 코스에서 열린 제45회 조선일보대회에서 수립한 2시간11분2초였다. 한국 마라톤으로서는 처음으로 2시간 10분대 안쪽으로 들어서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급한 마음에 골인 지점이 있는 운동장 공중전화로 스포츠서울 편집국에 국제전화를 건 정 감독은 황영조의 한국 최고 기록을 일본 최고 기록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6개월여 뒤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프레스 센터. 불과 몇 십분 전 몬주익 언덕에서 심장이 터질 듯한 레이스를 펼친 황영조와 모리시타 고이치가 나란히 앉아 수백 명의 취재진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장 한쪽에 있는 정 감독의 얼굴에는 "이제는 내 할 일(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을 다했다"라는 듯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는 그때 이미 당뇨로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 황영조를 앞세운 한국 마라톤은 이후 김완기와 이봉주, 김이용이 잇따라 2시간10분대 안쪽 기록을 세우면서 '고속화시대'로 접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2000년 이봉주의 한국 최고 기록 2시간7분20초를 기점으로 뒷걸음질만 하고 있다.


27일 개막하는 제13회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나서는 한국 마라톤 대표팀을 이끄는 사령탑은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고 하지만 남자 대표 선수들의 개인 최고 기록은 모두 황 감독에게 뒤진다. 현역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2시간8분대 기록을 갖고 있는 지영준이 부상으로 탈락한 가운데 정진혁(2시간9분28초)과 황준현(2시간10분43초), 김민(2시간13분11초), 이명승(2시간13분25초), 황준석(2시간16분22초) 한국 육상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


그러나 세계 마라톤은 2시간3분대에 진입한 '초고속 시대'이기에 입상권은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은 순위 싸움이 우선이기 때문에 코스와 날씨 등 변수에 따라 뜻밖의 성적이 나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최근 3차례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마라톤 3위 기록은 2시간8분35초(2009년 베를린 대회), 2시간17분25초(2007년 오사카 대회), 2시간11분16초(2005년 헬싱키 대회)였다.


그래도 현실적으로는 메달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공식 집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단체전 성적을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2007년 오사카에서 열린 제11회 대회로 가 보자.


"초반 페이스가 전반적으로 늦었다. 완주하면 단체전(성적)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대표 선수 가운데 그나마 국제 대회 경험이 있는 이명승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이명승은 한국 선수 가운데 가장 늦게 골인했다. 그러나 그가 완주했기에 한국은 8월 24일 열린 남자 마라톤 단체전(월드컵)에서 강호 케냐를 따돌리고 소중한 은메달을 딸 수 있었다. 케냐는 라반 카기카가 2시간37분13초의 케냐 선수라고는 믿기 어려운 기록을 내는 바람에 3위에 그쳤다. 단체전은 출전 선수 가운데 상위 3명의 기록을 더해 순위를 가린다. 이 방식은 대구 대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오사카 대회 남자 마라톤 단체전에서 일본은 6시간54분23초로 1위를 차지했다. 개인전 5위인 오가타 쓰요시(2시간17분42초), 6위인 오사키 사토시(2시간18분6초), 7위인 스와 도시나리(2시간18분35초)의 기록을 더한 것이다. 한국은 7시간12분8초로 2위를 했는데 개인전 15위인 박주영이 2시간21분49초, 24위인 김영춘이 2시간24분25초, 26위인 이명승이 2시간25분54초로 골인했다. 케냐는 8월 오사카의 찌는 듯한 날씨 속에 루크 키베트가 2시간15분59초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윌리엄 키플라갓이 2시간19분21초로 8위로 들어왔지만 라반 카기카가 52위로 처지는 바람에 3위로 밀려났다.


오사카 대회에 앞서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003년 제9회 파리 대회에는 이봉주와 지영준, 김이용, 이명승을 내보내면서 은근히 단체전 입상을 노렸다. 이명승을 뺀 나머지 세 선수의 개인 최고 기록이 2시간7~8분대인 데다 대회 준비가 잘됐기 때문이다. 대회를 한 달 보름여 앞두고 이봉주는 뉴질랜드, 지영준은 홋카이도, 김이용은 지리산에서 컨디션을 조절했다. 앞 대회인 2001년 제8회 에드먼튼 대회에서 한국은 임진수가 22위, 김이용이 54위를 했고 이봉주는 기권했다. 단체전 성적을 매길 수 없었다.


한국은 파리 대회에서 단체전 8위에 오르며 나름대로 성과를 올렸다. 베테랑 이봉주는 2시간10분대 기록으로 제 몫을 했다. 그해 3월 동아서울국제대회에서 2시간8분43초를 기록한 지영준이 큰 대회의 부담을 이기지 못해 2시간20분대 기록을 낸 게 아쉬웠지만 그 역시 역주했다.


대구 대회에서 현실적으로 입상권이 기대되는 종목은 마라톤뿐이다. 기록경기인 육상은 결과가 냉정하다. 그런데 그나마 변수가 있는 게 마라톤이다. 운동경기에서 정신력을 거론하는 건 구시대적이지만 이번 대회에 나서는 남자 마라톤 선수들은 선배 이명승의 말을 가슴에 새길 필요가 있다.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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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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