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김구라의 오른쪽 자리가 비었다. 벌써 두 번째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에서 신정환의 빈자리를 채웠던 막내 MC 김희철이 “외모까지 겸비해 (내 자리를) 넘보기 힘들 것”이라 못 박은 지 6개월 만인 오는 9월 1일, 덜컥 입대를 하게 된 것이다. 매주 “다음 주에 만나요, 제발~”을 외치던 토크쇼가 200회를 맞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전해진 비보, 혹은 누군가에겐 희소식이 될 이 사태로 또다시 예능계는 술렁이고 있다. 그래서 <10 아시아>에서는 일명 ‘독이 든 성배’라 불리는 ‘라스’의 새 MC 자리에 어울릴 만한 후보 다섯 명을 추려보았다. 남자만, 예능인만 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은 일단 넣어두도록 하자.
고품격 싼티아나 MC, 쉐끼루 붐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고 하죠. 2년 전만 해도 ‘10년째 예능기대주’로 출연해 저희에게 온갖 공격과 멸시를 받았던 후배였습니다. 하지만 이젠 입장이 달라졌습니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톱스타가 됐네요. ‘붐느님’, 저희가 좀 경솔했습니다. 고품격 싼티아나 MC, 쉐끼루 붐~
“월화수목금토일 녹화장 5분 거리, 항상 붐이가 있어.” 2년 전 ‘라스’에서 영턱스클럽의 ‘타인’을 개사해 애절한 목소리로 어필 송을 불렀지만, 그 때도 이미 MC로서 붐의 자질은 충분했다. MBC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의 ‘붐의 친구는 뉴규?’와 SBS <강심장>의 ‘붐 아카데미’처럼 예능 프로그램의 브릿지 코너를 만들고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 인터뷰이에게 손수 과자를 먹여줄 만큼 넉살좋은 리포터로 활동한 덕분에 분위기를 띄우는 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인 아이돌 그룹이 어설픈 개인기를 선보일 때, 연결고리가 전혀 없는 게스트들이 함께 나와 숨 막히게 어색할 때마다 붐의 성실한 리액션과 탁월한 친화력이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SBS <호기심천국>에서 실험맨으로 고생했던 무명시절은 ‘무릎 팍 도사’의 긴 편성시간에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 자체를 웃음의 소재로 활용하는 ‘라스’의 마이너 정서와도 잘 들어맞는다. 갓 제대한 육군 병장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와 “군에서 아이디어를 1000개 준비했다”는 천상 예능인으로서의 야심은 이제 궤도에 오른 ‘라스’에 최적화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붐의 ‘라스’ 정복의 시작은 2년 전 양 손을 들고 “준코! 준코!”를 외쳤던 김구라를 향한 통쾌한 복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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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촤하하하 MC, 집적남 고영욱
이런 속담이 있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최소 3년은 지나야 뭐라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그런데 ‘라스’ 게스트 고작 세 번하고 고정 MC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고앵욱, 이 ‘양애취’야!! 이왕 왔으니 제발 온 힘을 쏟아주시길 바랍니다. 고품격 촤하하하 MC, 집적남 고영욱~
고영욱은 ‘라스’ MC들의 성향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후보다. 이미 ‘라스’에 세 번이나 출연했고, Mnet <비틀즈 코드>에서는 1년 가까이 윤종신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프로그램을 전체적으로 진행하진 않지만 메인 MC 옆에서 깐족대거나 깨알 같은 애드리브를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점에서 <비틀즈 코드>의 고 매카트니 역할과 ‘라스’의 새 MC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현재 활동 중인 유일한 룰라 멤버로서 연습생 시절 멤버들과 구멍가게에서 먹을 것을 훔쳤던 찌질한 에피소드와 황금기 시절 헬기를 타고 이동했을 만큼 화려한 과거를 함께 언급할 수 있는 고영욱은 ‘추억 코디네이터’라는 전문 영역을 가진 방송인이다. 무엇보다, 어쩌다보니 전설이 되어버린 전 MC 신정환과 절친한 사이인 고영욱은 신정환의 장기이기도 한 ‘실없이 막 던지는 애드리브’를 가장 편안하게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 ‘라스’에 나와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 온 힘을 쏟겠다”고 선언한 바 있지만 그가 ‘라스’의 러브콜을 외면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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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번호표 MC, 하이에나 신영일
사람들은 보통 오후 4시에 뭘 할까요? 학생이라면 수업을 받고 있을 테고, 직장인이라면 2시간 남은 퇴근시간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겠죠. 하지만 이 남자, 부엌에서 라디오 들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을 겁니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준비도 하고 있겠죠. tvN <코리아 갓 탤런트>가 곧 끝나니 백수가 됩니다. 고품격 번호표 MC, 하이에나 신영일~
신영일이 MBC <명랑 히어로>에 출연했을 때 김구라는 말했다. “역시 매니저가 없으니까 헝그리야.” KBS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로 전환한 지 4년, 신영일이 칠순잔치부터 비전선포식까지 다종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면서 얻은 건 위기대처능력, 야생정신, 그리고 절박함이다. 그래서 ‘라스’에 김성주, 김범수 전 아나운서와 함께 나왔을 때도 토크의 중심은 단연 신영일이었다. MC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조금이라도 지루해한다 싶으면 재빨리 다른 카드를 꺼내들고, 과거 젠틀했던 이미지를 내팽개치면서까지 ‘선 딩동, 후 출발’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온갖 애드리브와 공격이 난무하는 가운데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라스’ 스타일과 잘 맞는다고 할 수 있다. 김구라가 ‘배신의 아이콘’이라 놀릴 때마다 자신의 캐릭터를 희화화하며 잡초같이 살아남는다면 밥벌이의 비루함에 공감하는 직장인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직에서 쓴맛과 단맛을 다 보고, 독립 후 여러모로 쓴맛을 본 생활인인 데다 이성과 야성을 동시에 갖춘 MC는 분명 귀한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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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진공청소기 MC, 박복 김신영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진다고 하죠. 저희 셋, 지금 많이 떨립니다. 배고프다고 잡아먹진 않겠죠? 어리다고 저희 앞에서 어리광 부리진 않겠죠? 유세윤 만큼 웃기고 정준하 만큼 많이 먹는 고품격 진공청소기 MC, 박복 김신영~
남성 집단, 그 중에서도 아저씨 정서가 강한 ‘라스’의 특성상 여성 MC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김신영이 나타나면 어떨까. 앞머리를 올려 이왕표 선수 닮은 외모를 뽐내고, 이계인의 ‘모팔모’ 성대모사를 가장 잘하는 사람, SBS <웃찾사> ‘행님아’ 코너를 시작으로 까칠한 남자 김태현과 호흡을 맞춰온 김신영 앞에 성별,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대본 없이 1인 다역으로 상황극을 소화할 수 있는 연기력과 순발력, 자판기처럼 누르면 자동으로 나오는 불꽃 애드리브, 상대방의 특징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관찰력 등 김신영은 일당백의 MC다. KBS <백점만점>을 비롯해 아이돌과의 방송 경험도 많은 데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출연하는 MBC <세바퀴>의 고정 패널로 활약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게스트와도 친해질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김신영의 MC 신고식으로는 ‘내가 제일 잘 나가’를 패러디한 ‘내가 제일 잘 먹어’를 추천하는 바이다. 누가 봐도 내가 좀 먹어주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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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리얼리티 MC, 주진우 기자
돌이켜보면 저희는 늘 막 던졌던 것 같습니다. 잘못 들은 얘기면 어떻습니까, 아님 마는 거죠. 썩은 애드리브면 어떻습니까, 웃고 넘기면 끝이죠. 하지만 이젠 그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팩트가 아니면 절대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무서운 분이 오셨습니다. 부끄럽네요... 고품격 리얼리티 MC, 주진우 기자~
시사주간지 <시사IN> 기자이자 딴지일보 인터넷 라디오 방송 ‘김어준의 나는 꼼수다’의 스타 MC인 주진우 기자는 말 그대로 다크호스다. 탐사보도전문기자로 무수한 특종을 잡아낸 ‘디테일의 신’으로서 그의 무기는 김구라를 능가하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다. 특히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로 시작해 종종 “아님 말고”로 꼬리를 내리는 김구라에 비해 수차례 소송에 걸리는 것도 불사하며 확보한 주진우 기자의 팩트 앞에 어지간한 루머나 스캔들은 낱낱이 까발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형교회의 비리를 추적하기 위해 수개월간 교회에 다니고, ‘가카’가 머리 심는 시술을 한 병원이 서울 어디에 있는지까지 꿰고 있는 집요함과 전문성은 가히 < PD 수첩 >을 뛰어넘는다. 송새벽을 연상케 하는 어눌한 충청도 말투로 상대의 무장을 해제시킨 뒤 허를 찌르는 능력, “아이, 저한테 왜 그러세요~”, “부끄럽네요...” 등 순수를 가장한 그의 멘트들 역시 ‘라스’의 재미를 극대화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라스’의 다른 MC들이 취약점인 여성 게스트와의 친화력이다. “100명 이상의 기자들이 에리카 김을 만나려고 했는데, 저만! 만났어요”라는 고백과 함께 종종 시도하는 에리카 김 성대모사의 중독성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김구라의 턱을 악수하듯이 잡고 흔든 이경실을 비롯해 ‘센 누나’들이라도 이 수줍고 참신한 중년을 냉대할 리 없다. 우리 누나도요, 저하고만 얘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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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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