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연방은행 총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버냉키 미 연방은행 총재의 손발은 꽁꽁 묶여 있다. 이미 두 차례나 양적완화 카드를 썼고, 제로금리 정책도 2년 더 연장했다. 비판은 넘쳐나는데 남은 정책은 별로 없다.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렇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2일자 기사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상대적으로 약화되기는 했지만, 제2차 양적완화 효과에 대한 비판이 커서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RBS캐피탈의 분석가인 스티븐 슈츠먼은 “버냉키 총재가 추가 유동성 공급에 대해 무언가 시사하기는 하겠지만, 실질적인 정책 보다는 연준이 구사할 수 있는 수단들에 대해 시장의 긍정적 분위기를 유도하려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행동’ 보다는 ‘말’에 중점을 둘 것이라는 전망이다. 골드만삭스도 21일 보고서를 통해 “연방은행의 보유국채 만기기간 연장등의 옵션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버냉키가 이번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우리는 추가 양적완화의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같은 분석은 한편으로는 지난 몇주동안의 금융시장의 패닉이 미국이 핵심원인이라기 보다는 유럽에서 출발한 공포라는 점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미국이 비록 성장률 둔화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아직 결정적으로 불황임을 입증하는 지표는 나오지 않았고, 적어도 그같은 실물경제의 침체가 확인되는 9월말까지는 연준이 구체적인 정책을 취하기는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유럽발 위기가 전세계 금융시장을 냉동상태에 몰아넣고 실물경제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을 간과할 수도 없다. 투자가 빌 그로스는 “지금 금융시장은 연 3% 이상의 성장에 맞춰져 있다”면서 “제로 성장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Fed가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지만, 사실상으로는 유동성을 공급하는 이른바 은밀한 양적완화(Stealth QE3) 정책을 취할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
유럽 은행들이 이처럼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은 장기 유로 국채를 보유하면서 단기 달러 자금을 차입해 운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로 국채의 담보 가치가 급락하자 단기 자금 차입이 급속하게 경색되었고, 이것이 유럽의 주식시장을 폭락에 몰아넣은 주된 원인이 되었다.
이같은 상황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Fed의 다음 행동은 유럽중앙은행과의 대규모 달러 스왑 라인을 여는 것이다. 버냉키 총재에게 남은 옵션은 최소한 지난 두 번째 양적완화(6천억 달러)에 맞먹는 유동성을 시장에 푸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와 사회적 저항 때문에 미국에서 시행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만일 양적완화를 유럽에서 시행한다면 확실히 정치적 부담은 줄어든다. 그것이 유럽이든 미국이든, 전세계 금융시스템에 수천억 달러의 추가 유동성이 공급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미 지난 2007년 말에서 2009년 초 사이에 미국은 유럽계 은행들에 8조 달러에 이르는 달러 스왑 대출을 해줬던 것으로 최근 발표된 Fed 재무제표 감사에서 드러난 바 있다.
그러나 버냉키 총재가 이번 주말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이같은 조처를 발표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는 우선적으로 EU의 문제이며, 여기에 미국 연방은행이 주도권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내에서는 달러 스왑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이다. 따라서 유럽의 ‘요청’에 대한 ‘응답’의 형태가 가장 적절하다.
2008년 이후 지금까지의 Fed의 정책은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신용붕괴)을 화폐의 양을 늘림으로써 해결하려 했다. 중앙은행은 버냉키 자신이 2002년의 논문에서 썼듯이 무한히 돈을 찍어낼 수 있는 권능이 있다. 심지어는 증시안정기금과 같은 증시 직접 부양책도 가능하다고 썼다.
국가 부채 증가로 인한 긴축재정이 전세계적인 유행인 지금, 통화 정책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그 다음이 문제다. 무제한의 화폐가 금융시장 내에서만 맴돌뿐 실물 경제로는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잭슨홀 이후 3분기 경제지표가 나오는 9월말까지가 버냉키가 지탱할 수 있는 ‘현상유지’의 데드라인인 것이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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