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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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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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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이라는 낙인이 그 어떤 상처보다 깊숙이 생채기를 내던 시기가 있었다. 사복을 입어도 되는 소풍날, ‘NIX’나 ‘292513=STORM’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의 무리가 의기양양하게 놀이공원을 활보하는 동안, 정체불명의 영단어가 쓰인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구석에 김밥을 먹는 아이들이 있었다. 옷과 패션 센스로 갈라지는 학교 안의 카스트. 기안84 작가의 웹툰 <패션왕>은 이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만한, 당시에는 입시만큼이나 절박한 고등학생들의 패션에 대한 욕망, 그리고 서로에 대한 구별 짓기를 담고 있다. “<미스터 초밥왕> 있잖아요. 초밥으로 서로 대결을 하는 콘셉트를 보면서 이걸 패션 대결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기안84 작가의 말처럼 반에서 아무런 존재감 없이 공부만 하던 ‘귀두컷의 통바지 소년’ 우기명이 패션 배틀을 통해 교내 ‘패션왕’에 등극하는 <패션왕> 초반의 에피소드들은 <미스터 초밥왕>의 그것처럼 어딘가 과장된 웃음을 준다. 하지만 옷을 통해 조금이라도 이 작은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옷 얘기만 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하나씩 어떤 주제를 넣으려고 하거든요. 우기명 이야기에서 패션은 껍데기고 집단을 옮기려는 게 본 내용이잖아요. 그런 걸 보고 반응이 좋은 거 같아요.” 우기명이 좋아하는 소녀의 생일 파티에 참석할 수 없는 건 성격 때문도, 학업 성적 때문도 아닌 ‘짝퉁’ 사우스페이스 패딩 때문이다. 물론 주민등록증 검사를 안 하는 술집이라면 들어가는데 물리적인 걸림돌은 없다. 하지만 거기서 노는 아이들의 세계로의 진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패션왕’이 된 우기명이 원호의 전화를 받고 술집 밭두렁에 첫발을 내딛는 건, 그 작은 사회 안에서의 계급 이동이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채색하기에, 학교라는 공간 역시 배제와 무리 짓기의 메커니즘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다양한 개그 코드에도 불구하고 <패션왕>을 보며 마냥 웃을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기안84 작가가 추천해준 귀갓길에 들으면 좋을 노래들은 그래서 이토록 피곤한 세상을 견뎌내는 이들을 위한 응원가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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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1. Justice의 < Justice >
“저스티스의 ‘D.A,N.C.E.’는 진짜... 와... 굉장히 신나는 곡이죠.” 현재 <패션왕>에 들어가는 BGM 작업을 도맡는 일렉트로닉 뮤지션 쿠아구아와도 친분이 있는 기안84는 첫 번째 추천곡으로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듀오 저스티스의 ‘D.A,N.C.E.’를 골랐다. “저스티스랑 비슷한 다프트 펑크 같은 팀도 전에는 되게 좋아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니까 지금은 왠지 안 좋아하게 되는 거 같아요”라는 기안84의 말대로 이 듀오는 역시 프랑스의 듀오인 다프트 펑크를 연상케 하는데 <패션왕>에서도 나왔던 클럽의 신나는 분위기에는 저스티스가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요컨대, 그들의 음악은 추천곡 제목 그대로 춤을 추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특히 마이클 잭슨의 곡을 조금씩 섞은 ‘D.A,N.C.E.’는 과거의 댄스킹에 대한 오마주로서도 흥미로운 넘버다.


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2. 비스트(Beast)의 < Fiction And Fact >
최근 <패션왕>에는 누가 봐도 비스트의 윤두준을 모델로 한 ‘체대 옴므’ 김두치가 등장한다. 그래서 기안84 작가의 최근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 “살짝 악역”을 맡게 될 김두치 때문에 혹 팬들의 원성을 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비스트의 ‘Fiction’을 추천하는 건 결코 그에 대한 조공 같은 건 아니다. “옛날에는 아이돌 되게 안 좋아했거든요. 계속 반복되는 후크송도 별로 안 좋아하고. 그러다 최근에 아이돌 노래 음원들을 좀 많이 다운받아 들어봤는데 비스트의 ‘Fiction’은 확실히 좋더라고요. 좋은 작곡가를 써서 그런지.” 실제로 ‘Fiction’의 작곡가인 신사동 호랭이도 자신의 최고작으로 ‘Fiction’을 꼽을 정도로 차곡차곡 소리를 쌓아가며 분위기를 고조하는 진행이 범상치 않은 곡이다.

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3. Ruben Studdard의 < Soulful >
“78년생이라고요? 나이가 50은 된 줄 알았는데”라고 기안84가 놀라며 소개해준 뮤지션은 미국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2 우승자 루벤 스터다드다. 사실 우승자임에도 이후 활동에선 준우승자인 클레이 에이킨에게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지만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엄청난 성량과 가스펠로 다져진 흑인 특유의 소울 보이스는 당대의 R&B 거장들 못지않은 울림을 준다. 기안84의 추천곡은 그의 데뷔 앨범 < Soulful >에 실린 그의 대표곡 ‘Superstar’로, 이젠 고인이 된 거장 루더 밴드로스의 동명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원곡이 좀 더 굵고 허스키한 느낌이라면 루벤 스터다드의 ‘Superstar’는 좀 더 매끈한 미성을 들려준다.


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4. 김사랑의 <나는 18살이다>
“김사랑 1집을 듣고 정말 얘는 천재다 싶었어요. 진짜 그때는 김사랑이 모든 판도를 다 뒤집어엎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반응이 사라져서... 요즘 다시 나온 모습을 봤는데 예전 같은 포스는 안 보여서 좀 아쉽더라고요.” 기안84의 극찬처럼 기타를 든 꽃미남 십대 뮤지션의 등장은 당시 상당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데뷔 앨범인 <나는 18살이다>는 그의 강한 자신감이 잘 드러나는 제목. 추천곡인 연주곡 ‘Chaos’는 드럼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소용돌이가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곡으로 제목처럼 어딘가 불안하게 떨리는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인 연주곡이다. 같은 앨범에 실린 ‘Mind Control’이나 ‘Go’ 같은 다른 연주곡들과 마찬가지로 분열적인 사운드가 전성기 나인 인치 네일스를 연상시킨다.


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5. 카라(Kara)의 <루팡 (Lupin)>
“제가 카라의 한승연 씨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지면을 통해 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라며 추천한 마지막 곡은 카라의 ‘루팡’이다. 물론 “카라 곡 좋잖아요”라는 공정한 이유와 함께. 사실 ‘루팡’이 카라의 알파인 ‘Rock you’나 그들을 메이저 걸그룹으로 만들어준 ‘미스터’만큼 흥미로운 댄스곡은 아닐지 모른다. 귀를 잡아끄는 후크가 없고, 듣는 이를 춤추게 만들 만한 흥겨운 리듬 라인도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곡들과 ‘Wanna’ 등에서 만들어진 귀여운 소녀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곡이었다고 본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만한 선택이다. 특히 성숙한 느낌의 목소리의 코러스로 채운 후반부는 과거의 카라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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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안84│일상을 마치고 귀가할 때 들으면 좋을 노래

‘간지 폭풍’을 강렬하게 담아냈던 프롤로그부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패션왕>은 우기명의 패션왕 등극이 초반 3회 만에 이뤄지면서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작품이 되어가고 있다. “우기명이 계급사회에서 이동하면서 그 이야기가 끝났는데... 왜 그랬지?”라고 작가 스스로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덕분에 <패션왕>은 주인공이 조금씩 패션을 업그레이드하며 결국 왕좌에 오르는 그런 빤하고 무협지처럼 비현실적인 이야기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오히려 우기명은 빠른 속도로 밭두렁에 발을 디뎠고 여기서 무리한 농담을 던졌다가 패션으로 한껏 올라갔던 자신감을 뚝 떨어뜨린다. 이후 등장한 김두치 등과의 대립각은 학교 내 계급 이동 이후에도 사실 그들에게, 혹은 우리에게 허락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정말 궁금하다. 이 작품이 ‘패션왕’ 우기명의 패왕의 역사가 될지, 비루한 청춘의 기록이 될지. 어느 방향을 택하느냐에 따라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순간 역시 오겠지만, 어떤가. 다음 주가 너무너무 궁금한 웹툰을 만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즐거운 경험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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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위근우 기자 eight@
10 아시아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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