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현정 기자]유럽중앙은행(ECB)이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를 매입하며 유로존 재정위기 진화를 위해 소방수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수익률이 크게 하락했지만 유럽 주요 증시 주가 하락은 막지 못했다.
9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ECB는 8일 애널리스트 추정 20억 유로 규모의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였다.
이 덕분에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던 두 나라의 국채금리는 5%대로 하락하며 다소 안정을 찾는 듯했다.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전일보다 79.8bp(1P=100bp) 하락한 5.288%를, 스페인의 국채금리도 88.4bp 떨어진 5.156%를 기록했다.
FT는 두 나라의 차입금리가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수준인 6~6.5%까지 치솟았던 점을 감안하면 5%대는 ECB가 국채매입을 통해 국채가격을 지탱할 수 있는 훨씬 유리한 조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FT는 시장개입 정도가 유로존 위기를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다 ECB의 양국 국채매입 규모가 어느정도가 될 지 전혀 알려지지 않아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애널리스트들이 35억~50억유로 정도로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의 채권시장 규모는 발행 채권 기준 1조6000억 유로로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이며 스페인은 그리스와 포르투갈, 아일랜드를 합친 6500억유로 보다도 크다. 이는 ECB가 이전의 국채매입을 진행했던 것과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FT는 강조했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은 ECB의 국채 매입계획이 통화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행위라며 반대하고 있다. 특히 장 클로드 트리셰 ECB총재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국채 매입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이 자본을 확충해 채권매입을 할 수 있을 때까지의 '일시적인 가교'임을 분명히하고 있다는 게 이 계획의 지속성과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걸림돌이다.
아울러 유럽증시 하락을 막지도 못했다.유럽증시는 7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2년래 최저수준으로 추락했다. 영국 FTSE100 지수가 3.39%하락한 것을 비롯, 프랑스(-4.68%) 독일(-5.02%),스페인과 이탈리아(각각 -2.4%)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유럽증시가 지난주에만 9.9% 하락한데 이어 올해 고점 대비 21% 하락했다며 대내외 불확실성에 기댄 베어마켓(약세장) 랠리가 도래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금리 하락한 것에 대해서도 "지난해 5월 ECB가 그리스 국채를 매입한 직후 그리스 국채금리는 468bp까지 하락했지만 연말께 다시 매입 이전수준까지 올랐다"며 두 나라의 금리 하락도 일시적 현상일 수 있음을 각인시켰다.
또 미국 대형 채권펀드 운용업체 핌코의 앤드류 볼스 대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매입은 그리스와 포르트갈 등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면서 "이들 나라의 지불능력 보다 금융시스템을 포함한 잠재적인 유동성 위기가 상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양국가의 재정 정상화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EFSF이 가용할 수 있는 자금 한계인 4400억유로에 3배 가까운 자금이 필요한 데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독일이 EFSF에 대한 추가 출연요청을 거절하면서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고 있다.
크리스토프 슈티그만스 독일 정부 부대변인은 8일 정례브리핑에서 "EFSF는 (기금 규모를) 지금 이대로 유지해야한다"며 자금 증액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U)의 미하엘 마이스터 재정 담당 대변인도 "기금을 확대하는 것은 재정위기 국가들의 문제에 대해 잘못 접근하는 것"이라며 "일종의 자유방임주의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303@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