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은희 기자, 조유진 기자]유난히 더운 올여름. 도시엔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사무실에선 빵빵한 에어컨 아래 긴 소매 옷을 입고 외출할 땐 짧은 소매 옷을 입는 '두 벌 족'이 한 가지 부류다. 반면에 도시 쪽방 한켠에선 올여름 유난히 습한 찜통 더위에 생명을 유지하기 버거운 노인들이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한계상황에 처한 독거노인들이 100만명을 넘어섰다. 전문가들은 여름나기 풍경도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며 한 쪽은 여름철 실내 적정온도를 26~27도 수준으로 유지하는 등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또다른 사각지대에 놓인 쪽방촌 독거노인 등 저소득층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생명유지를 돕기 위한 보건위생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편집자>
낮 최고 기온이 33도였던 지난 5일 오후, 서울시 중구에 있는 4층짜리 건물로 들어서니 온 몸을 휘감았던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식는다.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사라지고 살짝 추운 느낌마저 든다. 이 사무실의 에어컨 희망온도는 바깥 온도와 10도가 차이 나는 23도 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 '두(二)벌족'이 눈에 띄었다. 안에는 짧은 소매의 상의를 입고 그 위에 걸칠 수 있는 두툼한 긴 소매 상의를 따로 챙겨 다니는 '두벌족'. 한달 여 넘게 이어진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면서 '두벌족'이 여름철 신(新) 풍속도로 떠올랐다. 내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무실에서 걸칠 수 있는 겉옷을 따로 챙겨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서울시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두벌족' 이모(41)씨는 "푹푹 찌는 바깥과 온도 차이가 많이 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매년 여름이 괴롭다"며 "최근 냉방병 진단을 받은 뒤부터는 꼭 두툼한 상의를 챙겨다닌다"고 말했다. 이씨 의자에는 늦가을에나 걸칠 만한 꽤 두툼한 카디건이 걸려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양모(33)씨도 이씨와 같은 '두벌족'이다. 그는 겉에 걸칠 수 있는 두툼한 옷은 물론이고 아랫배를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무릎 담요까지 챙겨다니는 정통 '두벌족'이다. 양씨는 "처음엔 머리가 아프다가 손발저림이 계속돼 병원을 찾았더니 '냉방병'이라고 했다"며 "그 다음부터는 사무실에서 입을 수 있는 겉옷을 꼭 챙겨다닌다"고 말했다.
사무실에서 '두벌족'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폭염이 시작되면서 사무실 온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이럴 땐 냉방병을 주의하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 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의는 "실내와 바깥 온도 차이가 너무 크면 면역체계에 이상이 올 수밖에 없다"며 "2~3시간에 한 번씩 창문을 열어 5분 이상 환기를 하고, 더위를 느낄 때엔 물을 자주 마셔 체온을 낮추는 등 냉방병 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취업포털 사람인(www.saramin.co.kr)이 지난 1일 직장인 5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3분의 1인 32.7%가 '올 여름 냉방병을 앓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여성 직장인은 남성 직장인 보다 두 배 정도 많은 44.6%가 '냉방병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0.7평짜리 방. 사람 한 명이 눕고나면 발 디딜 틈도 별로 없는 이 곳은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독거노인 박창석(72ㆍ사진)씨의 집이다. 기자가 찾아간 지난 5일 낮 서울의 온도는 32도. 박씨가 앉아있는 방 안의 온도는 무려 28도였다. 지난 6월 구청이 실시한 하수구 정비공사 덕에 최근 서울을 강타한 폭우에서 한 숨 돌렸다는 박씨. 앉아만 있어도 구슬땀이 흘러내리고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더위 속에서 그는 날씨와의 사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높은 온도만이 문제는 아니다. 박씨의 방에는 창문이 없다. 바람이 드나들 수 없는 그의 방은 한여름이면 사우나로 변한다. 먹고살아야 하는 탓에 들여놓은 TV와 전기밥솥은 마치 난로처럼 뜨거운 기운을 내뿜는다. 누워있기도 어렵다. 순식간에 흘러내리는 땀에 등허리가 너무 축축해지기 때문이다. 관절염 탓에 움직이기가 힘든 그에게 무더위는 그야말로 공포이자 고문이다.
박씨는 "봉사도우미들이 가끔씩 찾아와 시원한 은행이나 근처 경로당으로 피해 있으라고 하는데 거동이 불편해서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부축을 받아 이동하는 것은 그렇다치고, 방으로 돌아오는 일이 두렵기 때문이다. 단열과 통풍이 안되는 탓인지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도 잠깐 앉아있으면 두통과 현기증을 호소한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그는 보증금 없이 일세 7000원을 내고 이 곳에서 살고 있다. 올해로 10년째 쪽방살이다. 어쩌다 이 곳에서 살게 됐냐는 질문에 한참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그는 "처자식들한테서 버림받고 오갈 데가 없어 하숙집과 여관을 전전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힘겹게 말했다.
악조건 속에서 박씨의 건강이 좋을 리 없다. 관절염은 갈수록 심해지고, 무더위 속에 방치되면서 갖가지 피부질환을 달고 사는 데다 통풍이 안돼 호흡기 상태도 나쁘다. 약을 네 가지나 복용하고 있다. 이러면서도 술을 놓을 수가 없다. 약을 이렇게 많이 복용하면서 왜 술을 마시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여기에 한 번 들어와서 살아보라"는 말로 설명을 갈음했다. 술기운에 기대지 않으면 버티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박씨는 일일 최고기온이 33도를 넘는 폭염과 열대야가 올해 유달리 많을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 지난 7월에 폭염으로 노인 5명이 사망했다는 보도에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토로했다.
현재 돈의동 쪽방촌에는 박씨 같은 독거노인과 일용노동자 등 소외계층 시민 600여명이 살고 있다. 전국적으로 약 106만명의 독거노인이 열악한 환경에서 무더위와 싸우고 있다는 게 통계청 추산이다.
박은희 기자 lomoreal@
조유진 기자 t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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